인간은 한계가 있다
사실 '조언'이란 글을 쓰고 있었고, 그 글에 참조하기 위해서 내가 예전에 썼던 '위로'란 제목의 글을 봤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문득 결혼이라는 것은 서로의 이해관계를 엮기 위한 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링크)라는 글에서도 썼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엮여있지 않다면 상대방이 처한 아픔을, 고통을 알 수가 없다. 내 경험상 그렇더라. 내가 정말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나와 관계가 애매한 사람들은 쉽게 '힘내라'라던지 '잘될 거야'라고 말했지만 반복된 실패를 옆에서 봐 온 사람들은 오히려 어떤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고, 내가 경험하는 아픔과 고통을 그들은 알 수가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도, 어느 누구도 내 아픔과 고통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을 나도 알았고 그래서 그렇게 침묵으로, 어깨를 토닥임으로 위로해주는 지인들이 고마웠다.
그런데 그중에 유일하게 나와 같이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올 때 같이 기뻐하고 안도의 한숨을 쉰 사람들이 있었다. 그건 내 가족이었다. 어머니, 아버지, 동생은 그 과정에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해 줬다. 물론 그 표현 방법이 세련되지는 않아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를 혼내듯이 말씀하곤 하셨고,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알고 보면 날 위해 기도하고 있었더라.
그러고 보면 결혼은, 가정을 꾸리는 것은 어쩌면 '더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측면도 있지만 '덜 힘들기 위해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에서 덜 힘들단 것은 두 사람이 같이 살아서 더 잘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해관계가 엮임으로써 상대방이 아픈 것을 나도 똑같이 아파하게 되고, 내가 아플 때 상대방이 아프게 됨으로써 서로 아픔을 반으로 나누게 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까?
결혼해서 고통이 배가되는 이유
물론 모든 가정에서 아픔과 고통이 반드시 반으로 나눠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그런지를 살펴보면 분명한 이유가 나온다. 이는 대부분의 경우 두 사람이 하나의 가정을 꾸렸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목돈을 쓰거나 두 사람 인생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건에 대해서 둘 중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결혼 후에 두 사람의 아픔과 고통은 반으로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으로 인해 그 아픔과 고통이 더해지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결혼하는 것에 반대하지만 사실 그건 결혼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두 사람이 결혼과 가정에 대해 갖고 있는 잘못된 관념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다. 결혼을 할 때 두 사람은 본인이 내리는 결정들이 상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반드시 함께 상의해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 과정은 분명 피곤하고, 귀찮으며, 힘들 것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 두 사람이 맞춰가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두 사람이 본인의 결정이 상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지하고 노력을 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 말이다. 그래서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건 사실 '할지 여부'가 아니라 '어떤 사람과 하는지'가 핵심이 된다. 이는 결혼은 어떤 사람과 하는지에 따라 그 경험이, 삶이 완전히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완전히 다르다 함은 최악의 경우에는 혼자 사는 것보다 2배 이상의 고통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지만, 최선의 경우에는 서로의 고통을 나눠짐으로써 그 무게를 1/2 이하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감능력이 중요한 이유
그래서 사실 가정을 누구와 꾸릴지를 고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능력이다. 이는 상대가 내가 왜 아파하고 힘든지를 이해할 수 있는, 그리고 함께 기뻐하거나 함께 힘들어 할 수 있는 사람인지가 가장 중요하단 것을 의미한다. 상대도 인간이고, 상대도 실수를 하며, 상대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사람의 실수나 잘못을 지적하고 상대의 실수와 잘못으로 인해 본인에게 발생하는 피해, 그리고 본인이 경험해야 하는 고통을 상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같이 아파함으로써 아픔의, 힘듬의 시간을 줄여줄 수 있는 사람. 그러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결혼을 잘하는 방법이 아닐까?
인간의 한계를 고려했을 때 사람이 그러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상대의 이해관계가 나의 이해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두 사람은 상대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계속 부정적으로만 설명했지만 그건 아마 지금 내 상황에서 좋은 일보다는 힘든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고, 사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엮이게 되면 상대의 기쁨도 내 기쁨이 되기 때문에 두 사람은 기쁠 수 있는 일이 두 배가 되기도 한다. 너무 현실적인 예시일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이 맞벌이라면 상대의 수입이 늘어나면 나도 생활이 조금은 여유로워질 것이 아닌가?
결혼은, 가정은 그러한 영역이어야 한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엮여서 기쁨은 두 배가 되고 아픔은 반으로 줄어드는. 그리고 그것이 연애와 결혼의 차이일 것이다. 물론 특정한 가정이 그러할 수 있는지 여부는 어디까지나 두 사람이 상대를, 가정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가정 안에서의 의사결정을, 자금적인 부분을 어떻게 할 지는 그러한 전제를 깔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