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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Oct 23. 2017

결혼하라는 부모님의 말씀 2

만나는 상대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

부모님의 조건

외국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결혼 상대의 조건을 따지는 건 우리나라 만의 문제는 아니다. 본인이 그러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모님이 간섭하는 것도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들 볼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가 듣는 '쿨한' 외국 부모님의 이야기가 모든 가족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란 것이다. 외국의 경우에도 특정 직업, 배경 등을 가진 사람과의 결혼에 부모가 반대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이 일어나는 듯하다. 물론 그 정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실 그것도 누가 객관적으로 측정을 해 본 것이 아니니 '우리나라가 가장 심하다'고 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쿨한 부모님들이 계시는 것도 사실 아닌가?


그렇게 상대의 조건을 따지는 건 우리 부모님, 특히 어머니도 마찬가지셨다. 그래서 연애를 해도 티를 내지 않았고,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도 거짓말로 다른 친구의 이름을 대면서 약속이 있다고 했었다. 그 덕분에 어머니께서는 20대 중후반까지 내가 연애를 전혀 안 해본 줄 아셨었고 말이다. @_@ 다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했을 때 만나기 시작한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게 우리 부모님에게도, 내가 만나던 친구에게도 예의일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설명을 드린 적이 있을 뿐이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반응이 참 다양하게 나타나셨다. 사진을 보고 그렇게 이쁘지는 않다고 하셨으면서 헤어지고 나니 사실 그 아이가 참 괜찮아 보였다고 하실 때도 있었고, 반대로 만나던 친구 가정환경에 대해서 미리 말씀드릴 필요가 있을 듯해서 둘이 진지한 얘기를 하기 시작할 때 설명을 드렸던 경우에는 헤어졌다고 하지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하셨었다. 예전에는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왜 저렇게 조건을 따지시는 거지? 사람이 훨씬 중요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고, 심할 때는 어머니께서 너무 속물 근성이 강하신 듯하단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확률의 문제

그런데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를 몇 번은 하면서 우리 어머니께서 겉으로 봤을 때 '조건'을 따지시는 듯했던 이면에 다른 게 있단 것을 깨닫게 됐다. 어머니께서 조건으로 설명하신 것들 이면에는 '경험'과 '확률'적인 면에서 나와 좋은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내게 좋은 배우자가 될 것 같은 사람인지에 대한 판단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결혼과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해서 어머니와 조금 더 많은 대화를 하고, 깊은 얘기를 하다 보면 그게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어머니께서 상대의 '조건'을 따지는 것으로 보시는 건 알고 보니 상대에 대한 고려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의 성질머리, 나의 배경, 내 성향에 비춰봤을 때 잘 맞을 것 같은지에 대해서 어머니께서는 다 고민을 하고 계셨더라. 그렇게 표현을 하지 않으셨을 뿐. 그런 대화를 하던 중에 내가 이전 포스팅에서 얘기한 '헤어진 것을 후회하는 유일한 전 여자 친구'가 어머니께서 그렇게 마음에 들어하셨던 친구라는 것이 그것을 입증하는 듯하단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내게 누군가를 잘 소개시키지 않으신다. 교회에서 소개를 시켜주자고 하셔도 말이다. 상대방의 집안, 그에 따른 상대의 성향을 보시고 '너랑 만나기에는 너무 순해'라던지 '너의 이런저런 면이 그 친구 어머니나 아버지랑 부딪힐 것 같아'라는 이유로... 그렇게 어머니께서는 참 많은 것을 따지고 보신다. 상대방 집안의 상황도 우리 집안과 비슷했으면 좋겠고, 두 사람의 학력, 집안 분위기, 기대 수익까지 말이다. 그런데 그 조건의 기준은 항상 분명하다. '가능하면 모든 게 비슷한 사람.'  비슷해야 부딪히는 게 적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 어머니의 기준이셨던 것이다. 그래야 '부딪히지 않을 확률'이 높아질 테니. 그리고 그래야 내가 '행복할 확률'이 높아지고 말이다.


부모님이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결혼 후에 고부간의 갈등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딸 같은 며느리는 있기가 힘들다는 말도 말이다. 사실 그런 문제의 이면에는 '내 자식에 대한 사랑'과 '내 자식이 행복했으면'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접근법은 틀린 것이고, 그에 따라 나도 이미 한 5-6년부터 지금까지 어머니께 '결혼하면 용돈은 양가에 똑같이, 우리 집 비밀번호는 절대 알려드리지 않는 거로, 어머니 아버지 뵈러 한 번 오면 처가에도 한 번 가는 거로' 등의 원칙들을 '지금 얘기해야 그게 내 아내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내 생각인 거니까' 지금부터 분명하게 하기 위한다는 얘기를 반복하지만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최소한 알아드리는 것은 맞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상대의 조건을 따지는 부모님의 마음 역시 마찬가지. 부모님들은 자식의 배우자를 찾는 데 있어서 중요시하는 조건이 대부분 다른데 그것 역시 부모님의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본인의 성장 환경, 배우자와의 관계, 본인 친구들의 결혼생활 등 통계를 잡을 수 있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해서 나오는 것이 부모님이 내놓는 조건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정말 찢어지게 가난하셨던 분들 중에서도 배우자와 정말 행복했던 분들은 좋은 사람을 만나면 경제적인 문제는 넘어설 수 있다고 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고, 그 가난에 사무쳐서 돈을 잘 버는 사람과 만나라고 하시는 분이 계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조건은 완전히 상반되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조건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건 부모님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에. 


부모님에 대한 접근 전략

그렇다고 해서 '그런 부모님의 조건을 충족시키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단순히 부모님께서 반대하신다는 이유로 헤어지는게 가장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부모님의 조건을 듣고 부모님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에 대해서는 되새김질을 하고 본인의 상황에 그걸 맞춰 볼 필요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이 내세우는 조건을 그대로 맞추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결혼을 고민할 나이 정도가 되면 아무리 부모님이라고 해도 본인의 자녀에 대해 모르는 것이 정말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부모님께서 생각하시는 '내가 만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의 기준이 더 맞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게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도 꽤나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하물며 내가 결혼을 생각하는 상대에 대해서는 부모님께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전혀 모르시지 않는가?


그래서 부모님께서 말씀하시는 조건을 들어보고,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지만 거기에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고민을 해봐도 본인이 만나는 사람에 대한 확신이 있는데 부모님께서 반대를 하신다면, 본인이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고민해봤음을 직간접적으로 어필하며 (예를 들면 '어머니께서 다 나를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알고 그래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어요...'로 시작하는 말로...) 본인이 그 사람과 왜 함께 하면 행복할 것 같은지를 진지하게 대화를 통해 설명하는 건 어떨까? 


물론 어떤 부모님은 그런 대화 자체를 거부하기도 하시더라. 내가 아는 동생의 경우에는 부모님께서 1년 반 동안 반대를 하시고, 어머니는 대화도 하기 싫어서 편도 티켓을 끊어서 미국 친척 집에 가시는 걸 본 적도 있으니까. 그런데 모든 면에서 보수적인 그 동생은 결혼을 하기 위해서 아기를 가졌고, 결국 차마 아기를 버리라고 하실 수 없었던 그 친구 부모님께서는 결혼식을 서둘러서 잡으셨다. 지금 그 친구가 어떻게 사느냐고? 너무나도 행복하게, 그리고 부모님의 이쁨을 받으면서 잘 살고 있다. 


그렇게 결혼을 반대하시던 부모님께서 결혼하고 나서는 사위나 며느리에게 엄청나게 잘해주는 게 이해가 안 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여러 케이스들을 들여다보면서 깨달았다. 부모님께서 그런 조건을 내세우신 것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본인의 자녀가 행복하길 원하셨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때 반대했어도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부모님께서는 반대했던 이유가 사라지는 게 되시는 듯했다. '상대의 조건이 아니라 <본인의 딸이나 아들의 행복>이 반대했던 진짜 이유'였기에...


우리가 그런 부모님의 마음은 최소한 알아드리는 게, 그런 배려를 가지고 부모님께 지혜로운 방법으로 말씀을 드리고 설득하는 것이 자식으로서 부모님에게서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길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가 부모님께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는, 행복하게 사는 것일 것이다. 


http://m.podbbang.com/audiobook/channel?id=177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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