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막연하게 30세에는 결혼을 하고 싶었다. 어머니께서도 아들이 30이 넘어서까지 미혼일 줄은 모르셨단다. 그리고 결혼, 그리고 가정생활에 대한 내 개인적인 생각은 사실 만으로 30살에 나름(?)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고 그 이후에 그에 대한 큰 변화는 없었다. 지금도 그때까지 일찍 결혼한 친구들, 결혼한 형, 누나들에게 들었던 얘기들로 정리해 놨던 생각들은 거의 유지되고 있다. 아주 가끔씩 누군가와 결혼, 그리고 가정생활에 대해서 얘기하게 될 때면 떠올리는 나의 살아있는 주관들을 돌아보면 그렇다.
하지만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할지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여전히. 여러 가지 생각을 했고, 꼭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도 있었고, 절대 양보하지 못한다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다. 정말 그 폭을 좁게 볼 때는 나와 같은 학교를 나온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이미 20대에 깨달았다. 같은 학교를 나온, 서로의 모교를 비슷한 수준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 이후에 말이다. 또 비슷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좋겠단 생각도 했었지만, 그런 생각을 갖고 만나는 관계는 남자 또는 사람 000, 그리고 여자 또는 사람 000가 아니라 일의 연장선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만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해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과 만나게 되면 나의 연애도 마치 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라서, 그 관계가 힘들었고 그 관계에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사실 연애도 아니고 결혼을 한다는 것은 평생 한 사람과 함께 살겠다고 스스로, 그리고 지인들에게, 또 사회적으로 약속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배우자감을 직장동료나 회사 직원을 뽑듯이 따진다. 키는 몇이고, 학력은 어떻고, 직종은 이랬으면 좋겠고, 집안은 이렇고 등등등. 물론 그런 것들이 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걸 깐깐하게 따지는 사람들은, 아니 조금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그런 조건들을 깐깐하게 따졌을 시절에 '그 조건을 가진 사람은 어떻더라'는 이유로 조건들을 따졌던 것 같진 않다. 그 조건 자체가 내겐 중요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주위를 보면,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게 분명해 보인다.
그나마 비슷한 직종의 사람을 찾는 건 성격이 다른 듯 보이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는 '내가 편하게 이해받고 싶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숨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같은 직종에 있다고 해서 상대가 내 삶을, 인생을 더 잘 이해해 줄까? 물론 연애 초기에는 비슷한 직종에 있는 사람이 내 삶의 패턴 정도를 얕은 수준에서는 다른 직종의 사람보다 잘, 그리고 빨리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은 사실다. 하지만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들도 그 안에서 본인의 삶을 살아낼 뿐이다. 나이, 전공, 성별, 과거 경험, 본인이 속한 집단의 사람들에 따라서 직종만 같을 뿐 사실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래서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이 본인의 삶과 인생을 더 '정확하게'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어느 직종에서나 사람들이 깊게 들어가서 하게 되는 고민의 성격과 내용은 비슷하기 때문에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직종과 상관없이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게 되는 질문, 문제, 갈등에 대해서 같이 이해하고, 고민하고 공감해 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공감능력이지 직종이 아니다.
그래서 사실 길게 보면 상대가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지 여부보다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노력을 할 줄 아는 사람인지가 훨씬 중요하다. 진심으로 상대의 삶 자체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들여다보기 위한 노력을 할 줄 아는 것은 매우,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연애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관계에서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머리로 특정 직종이나 상대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상대를 읽을 줄 아는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그런 마음의 훈련을 잘 시켜주지를 않기 때문에, 아니 그런 훈련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놓지 않기 때문에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특히 남자들의 경우, 남자들의 세계가 공감이 아닌 경쟁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더욱 적다.
그런 고민을 하다 보면 내리게 되는 결론은 (진부하게도) 결국 <편한 사람>을 만나야 한단 것이다. 왜 편한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있으면 편한 사람 말이다 (사실 여기에서 핵심은 '왜 편한지는 모르겠지만'에 있다. 그런 작용은 자연스럽게, 무의식 중에 이뤄지는 것이고, 우리가 왜 편한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오히려 상대가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안심을 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혼을 하는 것은 새로운 직장동료를 뽑는 게 아니지 않나?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치열한 전쟁터에서 빠져나와 숨을 쉬고 안식을 취할 쉼터를 마련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결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와 있을 때 내가 편하고, 쉬는 느낌을 받는지인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우리는 어쩌면 너무 치열한 경쟁에 익숙해져 있어서 결혼마저도 그렇게 접근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분명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결혼에서만큼은 꼭 생각해야 하는 한 가지는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모두 돌아가신 이후에 이 사람과 사는 것이 상상이 되는지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 아버지 중 한 분 혹은 두 분을 모두 먼저 하늘로 보내신 분들도 있을 텐데, 그러한 경우에는 어쨌든 가족이 없는 상황에서 이 사람과 단 둘이 사는 것을 상상해 보면 이 사람과 가정을 꾸려도 될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혹자는 너무 잔인한 상상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결혼하고 두 사람의 가정을 꾸리는 건 사실 그런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의 품을 떠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두 분이 돌아가신 후에 내 옆 자리를 지켜 줄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결혼이다. 물론 어머니,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먼저 세상을 뜰 수도 있지만, 그건 어머니, 아버지만 생각해도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기에...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과 그 이후의 삶이 어떨지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이기에... 그런 경우를 상정하고 싶지는 않다. 아니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하면 그런 상황은 상정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에 부모님이 항상 옆에 계신 것이 아닌가?
어떤 사람은 왜 그렇게 극단까지 가냐고, 거기까지 생각해야 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너무 시니컬하고 심각한 게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사실 내 브런치에서 연애와 결혼에 대한 글들이 심각하고 진지한데, 그건 내가 개인적으로 사랑이, 연애가, 결혼이 그만큼 사람들의 인생에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은 그렇다고 쳐도 연애가 무슨'이라고 할지 모르나, 사람들이 결혼이라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데 그 사람의 연애 경험이 영향을 준다는 것을 감안하면 연애의 중요성도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어렸을 때 연애는 상관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 어렸을 때의 연애가 또 나이 들어서의 연애에 영향을 주기에...)
지금의 고민, 성찰, 선택이 내 인생의 중후반을 결정짓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선택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이에 대해서 '그렇게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어떻게 <편안함>이란 기분 혹은 감정으로 결정을 내리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본능, 감각은 우리의 머리보다 많은 것을 감지해 내는 감각기관 인지도 모른다. 머리로는 계산되지 않는 게 감각적으로 맞을 때가 생각보다 많지 않나? 심리학자나 정신의학자들은 그것을 무의식의 작용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말이다. 때로는 우리의 의식보다 우리의 무의식 세계가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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