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on de Cyrene Oct 20. 2017

결혼하라는 부모님의 말씀 1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아직 남자니까 괜찮다고, 초혼 연령이 많이 올라갔다고, 내 나이가 지금 딱 초혼 평균이라고들 말한다. 뭐 지금 내 나이가 지금 딱 초혼 평균이라면 결국 나는 평균보다는 조금, 또는 많이 늦게 결혼하게 되겠단 결론이 내려지는 게 아이러니한 얘기다. 사실 그런 말들은 나름 괜찮다고, 위로해준다는 차원에서 내게 하는 말들일뿐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내가 그걸 아는 것은 20대 후반,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빨리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라던 사람들의 말이 그렇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실 1-2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얘기가 듣기 싫었다. 그리고 명절에 가족끼리 모이면 친척들이 내게 한 마디를 하고 싶어 하는 걸 참는 게 보였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다만 지금 내가 학위논문을 쓰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자연스럽게 그 얘기가 물 밑으로 내려간 느낌이 다를 뿐이다. 학위를 받고 다시 일을 시작하면 또 그 문제는 수면 위로 올라오겠지. 교회 다니고, 멀쩡한 학교 나온 애가 도대체 왜 결혼을 못하면서 말이다. 항상 말하는 그 '멀쩡한' 학교의 기준이 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실 하루, 이틀 얘기는 아니지 않나? 명절만 되면 결혼 얘기는 금기사항이라는 얘기를 기자들은 재탕에 삼탕을 해 온 지가 벌써 10년은 된 느낌이다. 내가 회사를 다닐 때도 이미 몇 년째 명절에는 그런 기사가 나가서 그 때 이미 식상하게 느껴졌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사실 결혼하라는 얘기가 어떤 느낌을 주는지, 어떤 의미를 하는지 등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건 이제 정말 클리셰 할 정도로 자주 논의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문득, 부모님께서 그런 얘기를 하시는 배경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것과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그 사람을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으로 그러는 경우가 드문 것과 달리 말이다. 부모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결혼하라고 재촉하는 많은 경우에는 그 사람에 대한 평가, 판단이 섞여 있고 다른 사람들이 사는 대로 좀 살라는 '꼰대스러운' 경향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사람들의 얘기까지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부모님의 마음은 조금 다르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 동생과 나의 관계에서 부모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힌트가 되어서 깨달은 사실이다. 


내 동생은 나이 차이가 나와 좀 많이 나서 내가 진짜로 등에 업고 다니고는 할 정도였다. 그런데 외동이었던 애가 동생이 생기고, 관심이 온통 그쪽으로 가니 내가 질투가 났었는지 내가 지금 돌아봐도 못됐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동생을 잡았었다. 부모님께서 나를 혼내시던 대로 내가 동생을 혼냈고, 그렇게 동생과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관계를 보고 부모님께서는 항상 두 분이 돌아가시면 둘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며 한숨을 쉬고는 하셨다. 


여러 과정을 통해서 이제는 그래도 서로의 소소한 일상도 나누고 관계가 많이 회복된 형제관계를 보며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쉬신다.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는 형제 사이의 비밀이 있는 것을 보시면서 섭섭해하시기보다 다행이라고 하시더라. 그렇게, 부모님께서는 정말로 본인들이 세상을 뜬 이후 자식들의 삶을 걱정하신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깨달았다. 부모니께서 결혼 얘기를 계속하시는 것도 같은 맥락에 서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살아보니 결국에는 그나마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은 가족이던데, 아무리 좋은 친구여도 자신의 가정을 꾸리면 남이 되는데, 이 험한 세상 속에서 혼자 남아서 버티기 힘들 텐데, 내가 있을 때는 그래도 어떻게 같이 있지만 내가 세상을 떠나면 외롭고 힘들게 살게 되지 않을지에 대한 걱정이 부모님께서 결혼 얘기를 반복해서 꺼내게 되시는 이유였다. 


그리고 결혼하라는 얘기를 안 하시는 부모님도 또 본인의 결혼과 삶의 경험에 비춰서 조언을 해주시는 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그런 얘기를 어떤 부모님은 하시고, 어떤 분은 안 하시는 게 랜덤 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사랑의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인 것 같더라. 본인이나 부모님의 결혼 생활이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들기만 해서가 아니라면, 아니 그런 경우에도 부모님들은 마음속 어딘가에는 '내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이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야, 아니 최소한 서로 의지하면서 버팀목이 되어 줄 사람은 있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듯했다. 


자식이 없는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게 부모님의 마음인 듯하다. 우리는 항상 코 앞에 닥친 문제에 매몰되어서, 지금 당장 듣고 싶지 않은 말에 감정적으로 분노하기도 하지만 본인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자식들의 삶을 걱정하는 것이 말이다. 본인들의 몸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고, 기력이 떨어지면서도 본인 걱정보다도 앞으로 살 날이 더 많다는 이유로 자식 걱정부터 하는 것이 말이다. 


부모가 되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마음이리라. 



이전 25화 결혼은 서로의 이해관계를 엮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