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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Oct 05. 2019

'결혼할 준비'에 대하여

'결혼할 준비'와 경제적 상황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준비가 된 시점'을 기준으로 결혼할 준비가 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야 경제적으로 결혼할 준비가 것인가? 내가 다닐 때는 평균 연봉이 5위 안에 들었고, 지금도 10위 안에서 유지되고 있는 회사에 12년째 다니고 있는 내 회사 동기들 중에서도 빚 없이 집을 산 사람은 없다. 그리고 상당수는 아직도 본인 집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는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회사원이 집을 마련할 정도의 재원을 갖고 모아서 결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 년에 1천만 원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까? 부모님과 같이 살아서 생활비가 절약이 되는 편이라면 몰라도 자취를 하는 싱글이라면 1년에 1천만 원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는 10년을 일해도 1억을 모을 수 있는 싱글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보면 싱글로 둘이 지내는 것보다 둘이 살림을 합쳐서 돈을 모을 때 더 빨리 모은다. 그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대출을 받아서 두 사람이 살림을 차리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두 사람이 돈을 빨리 모으는 방법일 수 있다. 두 사람이 함께 가정을 꾸릴 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만 있다면 말이다.


물론, 두 사람이 전혀 수입이 없거나 앞으로 어떤 일을 해서 어느 정도 시점에 어느 정도 수입을 올릴 수 있을지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가정을 꾸리는 것은 무책임한 결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은 있지만 그 방향성과 기초가 있다면 사실 그 이상의 '경제적인 준비'의 기준은 나이가 들수록 올라가거나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는 말에 경제적인 부분이 차지하는 비율이 아주 커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두 사람이 만약 가정을 꾸릴 수 있을 정도로 서로를 신뢰한다면, 경제적인 면에서도 사실 두 사람이 빨리 결혼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 낫다.


진짜 중요한 '준비'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상호 간에 신뢰가 얼마나 형성되었나?'일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거나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을 갖고 '준비'의 수준을 따지는데,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두 사람 간의 '신뢰'야 말로 결혼하는데 가장 중요한 준비임이 분명하다. 이는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알았는지와 무관하게 가정을 꾸리고 나면 서로 몰랐던 면을 발견하면서 상호 간의 신뢰를 일부 잃게 되는 일들이 분명 발생할 텐데, 결혼할 때 두 사람 간의 신뢰가 분명히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면 그 관계는 무너질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관계적인 면이나 상대보다도 '나 자신'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가정을 꾸릴 준비가 되어 있는 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결혼과 가정은 결국 '관계'이며, 나는 그 안에서 무려 절반을 차지할 뿐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서 상대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내가 결혼할 준비가 된 사람인가?'의 문제는 '나는 정직한 사람인가?'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내가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면, 상대와 내 사이에 형성된 신뢰는 거짓일 수밖에 없고 그런 거짓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거짓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은 거짓을 진실로 포장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한 영역에 거짓을 계속 쌓을 수밖에 없고, 그러한 거짓들이 쌓이다 보면 그 거짓의 총합의 무게가 어마어마해져서 진실이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정직인 상대와의 관계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중요하다. 사람들은 많은 영역에서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한데, 그러한 대표적인 예로는 건강하지 못한 자아를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괜찮다고 착각하는 사람을 들 수 있다.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누군가가 지적을 하면, 그 사람은 그걸 공격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는 데 있다. 반면에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들은 그런 내용을 들으면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한 걸음 물러날 줄 안다. 그리고 그 판단이 정확하다면 기꺼이 받아들인다.


자신에게 약점이 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일단 자신에게 정직하지 않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약점이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사람은 아마도 자신의 약점, 한계와 단점을 객관적으로 알고, 받아들이면서도 그로 인해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결혼에 '양보'는 필수다

그런데 개인, 또는 내면 영역에서 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상대에게 맞출 수 있는 능력과 준비'일 것이다. 이는 결혼생활 또는 가정을 꾸리는 것은 필연적으로 상대와 나의 다른 면을 맞춰가는 과정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만난 두 사람의 그러한 '다름'은 의외로 잘 변하지도, 맞춰지지도 않는다. 예를 들면 우리 집에서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고 나서 대충 쌓아놔도 어차피 그릇은 마르게 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적당히 정리를 해서 놓으시는 반면, 아버지는 그렇게 하면 잘 마르지 않는다며 공기가 지나갈 공간을 예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시는 편이다. 두 분이 40년을 함께 사셨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처럼 사람은 잘 바뀌거나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맞춰나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야 말로 '결혼하기 위한 준비' 목록에 반드시 들어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상대와 내가 함께 가정을 꾸리고 평생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이전에는 사실 내가 어떤 영역에 대해서는 절대로 양보나 맞추는 게 불가능하고, 어느 영역에서는 어느 정도 수준은 맞추면서 살 수 있는 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는 그와 같은 기준이 성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서 '그건 맞추면 될 거야'라고 생각하고 일단 결혼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지점이 정말 맞춰지는 성격의 것이었다면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갈라서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어떤 이들은 이처럼 '맞추는 것'이 피곤해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우린 혼자 사면 맞출 필요가 없나? 우린 부모님과, 친구와, 직장동료나 일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맞춰나가고 양보해야 한다. 인간의 삶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자신과 이질적인 것과 공존하는 법을 배운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불편하고 힘들어하며 이질적으로 여기는 것과 타협하는 과정으로 가득 차 있다.


핵심은 상대에게 내가 맞출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한 지점에 상대에게 있는지 여부에 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결혼을 잘 못하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유연성이 없어지는 영역이 확장되기 때문인데, 사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경직되어가는 영역과 함께 유연 해지는 영역도 생긴다. 그 영역을 잘 파악하고, 유연해질 수 있는 영역이 최대한 확장되어 있는 것이 어쩌면 '결혼할 준비'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오해는 하지 말자. 난 그게 안된다면, 그걸 확장하는 것보다 혼자 살거나 적당히 연애만 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면 그렇게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기에. 물론 그 과정에서 확률과 지속가능성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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