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랑에 대하여. 1화
난 내가 힘들다고, 아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평생 연봉 1, 2위를 다투는 회사는 아니어도 사람들이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회사에 다니셨고, 무역회사에서 근무하셨다 보니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전부터 해외에 살면서 외국인 학교를 다녔으니까. 우리 집은 엄청나게 부자는 아니었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빚에 시달리면서 산 적도 없다.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는 없었지만 국내여행을 다니는 건 부담스러웠던 적은 없다. 사춘기를 미국식 교육시스템에서 보냈다 보니 한국에 들어오면 적응하기 힘들게 뻔함에도 불구하고 학비 문제 때문에 한국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고등학교 1학년 때 한국에 들어왔지만, 그 정도로 힘들게 살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이 정도의 환경에서 자란 나는 물리적으로, 물질적으로 고통스럽거나 힘들지 않았고, 나는 항상 좋은 환경에서 사는 편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렇다 보니 난 내가 힘들지도, 아프지도 않고, 멀쩡하며, 나 자신을 잘 아는 편이라고 생각해 왔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를 경험하기 전까지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며 나는 과거의 일들을 갖고 종종 분노를 폭발시켰고, 부모님과 동생은 '왜 지나간 일을 끄집어내서 집안을 뒤집어 놓냐? 나잇값을 해라!'는 요지의 말들을 내게 쏟아냈다. 아팠다. 그렇다고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조차도 내가 그렇게 상처 덩어리인 줄 모르고 살았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곪고, 곪아 있다가 스스로 누르고 있을 힘이 없을 때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일 뿐, 나는 그 상처들을 항상 안에 품고 있었고, '나는 그렇게 힘들면 안 돼'란 마음으로 그것을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상처는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 부모님은 모두 양가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셨으나 모두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대학을 졸업하셨다. 그리고 두 분은 모두 굉장히 보수적이고, 엄격하셨으며, 현실적이셨다. 거기다 난 장남이었다 보니 항상 강할 것을 요구받았다. 어렸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와 '피노키오' 이야기였는데, 이는 내가 자주 울고 거짓말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내가 거짓말을 자주한 것은 사실 너무 자주, 크게 혼났기 때문이었다. 외국인학교에 다닐 때 중학교 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는 얘기에 어머니께 처음 들은 것은 축하도, 포옹도 아니고 "여러 나라 애들 있는데 학생회장 됐으면 성적도 잘 받아야 돼"였다는 것은 나의 성장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것은, 두 분이 나쁜 뿐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란 것이다. 두 분은 양가에서 항상 기둥과 같은 역할을, 엄청난 기대를 받으며 자라셨으나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셨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두 분은 본인들도 부모가 처음이다 보니 자신을 채찍질하던 방식으로 나를 채찍질하셨을 뿐이고, 두 분은 그게 사랑이라고 믿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두 분은 자라면서 가족 안에서 포옹을 하는 등의 스킨십을 경험하지도, 칭찬을 듣지도 못하셨기 때문에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해주시는 법을 모르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안에 상처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야단만 맞고 칭찬은 받지 못하다 보니 항상 위축되어 있고, 그렇다 보니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으로 가득 차 있는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도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두 분은 내가 갑자기 어린애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으셨겠지만, 내가 과거의 상처를 드러내며 분노를 폭발시킨 것은 사실 내 상처가 아물 때까지 "난 그렇게 나쁜 애가 아니라고!"라면서 방어막을 치는 행위였다. 그런 와중에 나의 연이은 실패들로 인해 집안 분위기가 힘들어지니 두 분은 "너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잖아. 너 제대로 준비하기는 하는 거냐"라고 하셨고, 난 그에 대해서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내 안에 그렇게 상처가 많이, 깊게 쌓여 있는 줄 몰랐다. 그런데 그 양은 엄청나서 우리 집은 나로 인해 전쟁 같은 몇 년을 보냈고, 지금은 과거보단 훨씬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내 안의 상처들도 다 아물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어쩌면 나의 가장 큰 치부라고 할 수도 있는, 이 과거를 "사람과 사랑"이라는 주제의 시리즈 가장 앞에 내놓는 것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모른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나만 그럴까? 아니다. 이는 사실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생에 공식이 있는 것처럼 전제하고 그것을 강요하는 문화가 만연해 있다. 공부는 무조건 잘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야 한다는 문화. 좋은 대학을 가야만 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전제하는 문화. 그 안에서 개인은 존중받지 못하고,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고민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 채 초등학교, 아니 요즘에는 유치원 때부터 경주마처럼 달릴 것을 요구받는다. 다른 것은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도록 눈가리개로 시선을 차단하고 채찍질하면서. 그런 아이들은 더 이상 달리지 못하는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그 과정에서 본인 안에 생기는 것들을 인지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대부분 그런 상태로 성인이 되고, 그렇게 살아간다.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처음으로 나 자신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도록 강제되기 전까지.
사랑과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 오가는 얘기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얘기들은 모두,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주장과 부정적인 주장 모두 [나]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고 이뤄진다는 점에서 한계와 문제가 있다.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주장들은 막연하게 '살아보면 괜찮아져'라던지 '혼자 사는 것보다 낫지'라고 말하지만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우리는 그런 얘기를 순진하게 받아들이기에는 결혼하지 않은 게 차라리 나았을 삶을 너무 많이 본다. 반면에 부정적인 주장들은 경제적인 부분이나 결혼생활의 불행한 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전제 없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고 이뤄진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이 시리즈의 제목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고민 끝에 [사람과 사랑에 대하여]로 잡은 것은 결국은 연애, 결혼에 대한 얘기를 하겠지만 그 얘기를 사람과 사랑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이뤄져 온 연애와 결혼에 대한 얘기는 대부분 너무 연애와 결혼 그 자체만 놓고 이뤄져 와서 그 본질까지 들어가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나는 이 시리즈에서 연애와 결혼이라는 주제를 조금 우회하면서도 본질에 가까운 얘기들을 중심으로 그 주제를 건드리는 글을 쓰고자 한다.
그러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내가 나를 모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시리즈를 읽으시는 분이라면, 지금 본인 안에 연애와 결혼에 대한 어떤 결론을 갖고 있든지 '나는 나를 잘 모른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나의 면과 필요가 내 안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읽으면서 고민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이는 그것을 전제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깊은, 본질에서 시작되는 고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을 이미 내놓고 시작하면 모든 것이 그 프레임에 맞춰질 것이 아닌가?
그렇게 전제하고 고민하실 생각이 없다면, 이 시리즈를 읽지 않으시길 권한다. 이 시리즈는 최소 10개 이상의 글로 구성될 텐데, 그 글들을 읽으면서 짜증내고, 비판하고, 반박하실 시간에 다른 걸 하는 것이 본인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시간 사용을 위해서도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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