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할 때 따지는 조건에 대한 생각들

사랑학개론. 13화

by Simon de Cyrene

어렸을 때 교회 누나들은 '배우자 기도'라는 걸 하라고 했다. 그래야 하나님이 들어주신다고.


결론부터 말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 말을 해준 누나들이 악의가 없었단 것은 안다. 그들도 샤머니즘이 결합된 한국식 기독교에 세뇌된 피해자였을 뿐, 그들 자체가 나쁘거나 이상했던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기독교는, 성경은 어디에도 '네가 달라는 건 무조건 줄게'라고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고, 이는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배우자 기도를 목록을 쓰면서 주문 외우듯이 말해야 한다는 게 잘못되었다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성경은, 기독교는, 예수님은 '세상과 다른 기준'으로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렇게 조건을 나열하는 건 성경을, 하나님을,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누구나 하는 것 아닌가? 이상형을 말하라고 하고, 상대의 조건을 나열하는 건 인간의 역사가 기록된 속에서 계속 이뤄져 왔던 일이다. 이와 달리 성경에서는 누구도 배우자를 그렇게 따지고 찾지 않았다. 이것만 봐도 '배우자 기도'를 목록을 써서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고 비기독교적이며 반성경적인 행위인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상형을 말하고, 조건을 따지는 게 현실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건 소개팅을 부탁할 때 외에는 큰 의미가 없는 행위다. 이는 연애와 사랑과 결혼의 '시작'은 어디까지 '감정'이어야 하는데 그런 조건을 갖춘 상대가 나타났다고 해서 감정이 생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연애와 사랑과 결혼에 있어서 감정이 시작점이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는 인간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그런 감정이 생겨야만 그러한 자기 중심성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의 조건을 머리로 따져서 만나고, 그것을 넘어서 결혼까지 한다면 우리는 '자기 중심성'을 벗어날 수 없다. 적지 않은 정략결혼들이 파국을 맞이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조건을 따지는 게 아예 의미가 없단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또 통계적으로 우리가 상대를 소유하고 싶다는 '좋아하는 마음'이 특정한 조건이나 외모를 가진 사람에게 끌린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두 사람이 공유하는 경험이나 배경이 많으면 서로 공감하면서 편하게 맞춰질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소개를 받을 때 조건을 말하지 않으면 사람이 추려질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형이나 조건을 따지는 건 그런 범주 안에서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통계적으로 확률을 높이는 정도다. 상대의 조건을 따지는 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생각해보자. 당신은 항상 이상형으로 '생각'하고 따진 조건에 맞는 사람과 연애를 했나? 했다면 그 연애는 항상 해피엔딩이었나? 이상형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완벽하게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아니다. 우리는 상대가 '이상형과는 완전히 달랐다'는 이야기도 꽤나 자주 듣고, '이상형이어서 만났는데 힘들고 괴로웠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왜 그런 일이 생길까? 그런 일이 생기는 건 우리가 '이상형'이라고 꼽는 조건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고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것들의 영향을 받아서 인격과 세계관과 가치관과 습관들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100가지 조건을 따져서 그 조건을 가진 두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은 완전히 똑같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 두 사람이 타고난 성향도 다를 것이고, 같이 갖추거나 경험한 조건의 영향도 다른 수준과 방법으로 받았을 것이며, 그 100가지 조건 외에 다른 요소의 영향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대에 대한 감정이나 느낌을 신뢰하는 건 위험한 일일까? 감정과 느낌'만' 신뢰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 이 시리즈 앞의 글들에서 설명했듯이 우리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받은 영향과 상처들로 인해 건강하지 못한 사람에게 끌릴 수 있게 때문에 감정과 느낌만을 신뢰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성으로 그런 요소들을 필터링한 후, 자신에게 맞지 않거나 위험할 수 있는 요소들의 부재를 확인한 후에는 오히려 상대의 조건을 따져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보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신뢰하는 게 더 안전하고 맞을 수도 있다. 이는 우리는 본능적으로, 느낌적으로 상대와 있을 때의 화학작용을 통해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채기 때문이다. 상대가 어떻게 살아왔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몰라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상대가 내게 위험이 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상대방의 결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고 상대의 조건을 세고 따지는 것보다는 그 느낌이 정확할 때도 많다.


사실 생각해보면 만나는 사람의 조건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측면이 있다. 그런 조건을 따지는 것은 인간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우리는 현실에서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가? 대부분 사람들은 제한적으로만 이성적이고, 제한적으로만 합리적이다. 우리가 상대의 외모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고 안 봐지지 않지 않나? 그리고 우리는 때때로 예상하지 못한 외모의 사람에게 매력을 느낄 때도 있다.


관계를 이어가고, 이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분명 이성적일 필요가 있다. 누군가와 연인이 되기로 하는 약속을 할 때도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어느 정도는' 이성적일 필요도 분명 있다. 하지만 최소한 연애를 시작할 때, 연인이 될 때만큼은 그보다 감정을 조금 더 신뢰할 필요가 있다. 이는 때로는 우리가 본능적으로 받는 감정과 느낌이 우리가 의식하는 이성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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