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살 이유. 13화.
프리랜서로 사는 것을 계획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 평생 프리랜서로 살 계획도 없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원의 아들로 태어나고 자란 나는 항상 조직에 기대고, 의지해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노력했고, 나는 평생 프리랜서로 살 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프리랜서로 살고 있고, 현재만 놓고 봤을 때는 충분히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나는 아직 일이 나를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을 찾아가야 하는, 지금 하는 일들이 끝난 후에는 당장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가 막막한 프리랜서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현재에 만족하는 것은 내게 프리랜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우연히, 계획하지도 않고 프리랜서가 되어버렸는데 돌이켜보면 내가 프리랜서로 먹고살 수 있었던 것은 실패하더라도 내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었다. 20대 초반이었을 때 한 형이 '너는 뭘 해도 먹고는 살 놈'이라고 했는데, 그때는 그 말이 이해가 안 되었지만 지금은 그게 현실이 되었고 이제는 그 말을 왜 했는지도 이해한다. 그건 내가 특별한 재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형이 보기에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뭘 해도 그 일을 해내기 위해 더 집착하고, 독하게,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눈에 띄는 것은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해야 돼?'라며 불평하며 지금 당장 편하기 위해서, 지금 내가 받는 만큼만 일하려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반드시 눈에 띄게 되어있다.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부당한 일을 겪은 후에도 일단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면 그걸 알아보는 사람은 반드시 생긴다. 그런 사람을 누군가는 조금 일찍 만나고, 누군가는 조금 늦게 만날 수는 있지만 삶의 태도가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그런 사람을 만난다. 그 기다림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는 있지만 그 '한 번'은 그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럴 가치가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강사로 지원도 했고, 연구원에도 지원했지만 여러 가지 상황과 이유로 지원하는 것들은 모두 잘 안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내게 여기, 저기에서 일을 해달라는 얘기를 해주는 지인들이 있었고, 나는 정말 먹고살기 위해서 그 일을 하다 보니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 그 일들을 준 사람들도 다양했다. 학부시절 동아리 선배, 학부시절에 했던 대외활동에서 만났던 동생, 회사 동기에 박사학위논문 지도교수님까지.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을 들으면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일들을 하냐'라고 하는데, 돌이켜보면 내게 그런 일들이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는 그 사람들이 내게 일을 줄 이유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원의 아들로 살았고 회사를 다녀 봤기에 그 끝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 중에 한 가지는 내 시야가 좁아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회사가 그것을 의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에서 개인은 기본적으로 주어진 일들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해야 하다 보니 회사에 오래 다니다 보면 사람들은 생각하는 근육 중 상당 부분이 퇴보할 수밖에 없는데 나는 그걸 2년 차가 되어서부터 느꼈고, 그런 내 모습이 싫었던 것이 회사를 그만두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회사를 오래 다니면 그렇게 된다는 것은 대기업에 다니다 정년퇴직하신 아버지를 보면서도 느낀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시절까지 감수성이 풍부한 문학소년이셨고, 지금도 감수성이 풍부하시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잊으신 듯한데 그건 아마도 회사 안에서 거의 반평생을 보내셨기 때문일 듯하다. 야생(?)에 나와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보다 회사 안에서의 삶은 변수도 적고, 생각할 문제도 적다. 회사는 [회사의 매출, 연봉과 승진]으로 프레임 만들고 그 변수들만 생각을 하게 만들다 보니 회사원이 그 밖으로 사고의 폭을 확장시키기는 힘든 것이 현실 아닌가? 그런 환경에 있다 보면 시야와 사고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10년 정도 직업군인으로 지내다 전역한 사람들도 이른 아침에 눈이 떠지는데 30년 정도를 회사원으로 사신 아버지께서 회사생활에 필요한 습관과 패턴이 생기신 것을 바꾸는 건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게 너무나도 이해가 된다.
그와 달리 프리랜서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고 항상 다른 형태의 두려움을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는 심지어 패턴도 없다. 그게 반복되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버티고, 버티다 보면 그 안에서 단단해지고 기반과 기초가 형성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고,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내가 가진 것은 다 소진하고 살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두렵고 힘든 과정을 겪어야만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나는 지금의 삶에 충분히 만족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프리랜서로 살 수밖에 없었던 상태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내가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의 현실을 그렇게 볼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되면서 내가 현재를 감사하고 만족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틀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사람을 맞추는 회사에만 다니는 사람은 그 안에서 자신을 절대로 발견할 수 없다. 이는 회사는 그런 고민할 틈을 주지 않고, 회사에 내가 맞춰야 그 안에서 버티면서 승진하고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도 우리 안에는 근육이 생기지만, 그건 회사가 필요하고 회사에 남는데 필요한 근육이지 자신을 알아가는데 필요한 근육이 아니다.
그런 근육은 몸으로 따지면 헬스로 예쁘게 잘 만들어진 그럴듯한 근육과 같아서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실에서 힘을 쓸 때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헬스는 특정 근육을 특정한 모양으로 만드는 데 중점을 두다 보니 근육의 모양을 다듬을 수 있도록 고립운동을 하다 보니 여러 근육을 함께 쓰는 게 필요할 때는 근육을 연결해서 같이 쓰는 고리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회사생활을 하면 회사 안에서 기능적으로 필요한 능력은 길러지지만 그 능력을 조합해서 현실에서 사용하는 힘은 길러지지 않는다. 현실에서 힘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잘 쓰는 근육은 헬스가 아니라 노동이나 복합운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근육을 쓰면서 여러 근육을 함께 쓸 수 있게 되기 때문인데, 일과 관련해서 이런 근육은 회사의 틀 밖에서만 길러진다.
'사회생활'에 대해서 혹자는 '요즘 사람들은 힘든 것을 너무 못 참아'라고 말하고, 혹자는 '일한 것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해 줘야지'라고 말한다. 둘 다 틀린 말임과 동시에 맞는 말이다. 요즘 사람들이 힘든 것을 기성세대보다 참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항상 틀린 것은 아니다. 누군가 어느 정도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은 하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닌가? 기성세대의 경우 다른 대안이 없거나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할 줄 몰라서 힘들어도 참고 그 일을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런 관습을 요즘 세대들도 그대로 이어가라는 건 착취 사회를 만드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힘든 것을 참지 않는 것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다. 이는 위의 전제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다면'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경우 신입사원이 보통 3년 정도는 실질적인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는 힘든 게 현실이다. 이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으로 책임을 지고 하는 일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탁월한 사람이어도 사회생활을 전혀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정도 책임을 감당할 기초가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도 아직 1인분의 몫을 하지 못하는 시기에 받는 임금은 사실 회사가 그 사람을 키우기 위해 내부에서 '투자'를 하는 기간이다. 그리고 그 기간에 힘든 것은 정말 일이 말도 안 되게 많아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아직 본인이 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경험하게 되는 '성장통'인 경우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부당하겠지만 후자의 경우 그 성장통은 자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다. 우리가 운동해서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상의 강도로 반복을 하면서 힘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1인분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근육'과 '감정적 근육'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는 힘든 시간을 거칠 수밖에 없다. 정말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회사가 아니라면 일단 3년은 버티라고 하는 것은 통계적으로 봤을 때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근육이 만들어지는 기간이 3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그 안에서 배우는 게 있다면 최소한 3년은 버티는 게 본인을 위해서 좋은데 문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이 그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여전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볼 줄 모르다 보니 너무 빨리 그만둔다는 데 있다. 그런데 수영 1년, 태권도 1년, 격투기 1년, 헬스 1년을 하고 나면 각각의 운동을 조금씩은 할 줄 알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빨리 옮기고 그만두는 패턴을 가지게 되면 그 사람의 일하는 근육도 애매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거나 회사에서 배우는 거 전혀 없고, 인간으로 존중받지도 못하는 환경만 아니라면 본인이 그 환경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가 될 때까지는 있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힘들지 않고 이뤄지는 성장은 없기 때문에.
프리랜서로 사는 과정에서도 이런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당장 다음 달 벌이가 걱정되고,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는 시기가 있고, 나도 그 과정을 거쳤다. 그런 상태에 적응하고 괜찮아지는데도 첫 사회생활과 마찬가지로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더라. 당시에는 몰랐는데 3년 넘게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 나서 돌아보면 그 모든 시간이 내게는 훈련의 시간이었고, 도움이 되었더라.
이 시리즈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얘기는 사실 우리네 삶은 언제, 어디에서나 어느 정도는 힘들 수밖에 없고, 그 힘듦이 투자가 될 수 있단 것이다. 그런데 그 힘듦은 가만히 있어도 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해내는지에 따라 투자가 될 수도 있고 인생의 낭비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사실 본인이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고, 나는 그게 '프리랜서로서의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어떤 형태로 돈을 받고 일하는지와 무관하게 프리랜서로서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대한다면 그 사람 앞에는 어떤 형태로든 먹고사는데 필요한 일은 주어지더라. 그 사람이 꼭 탁월해서가 아니라 그런 사고방식과 태도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세상을 보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우리 사회에도 긍정적인 기운이 넘치지 않을까? 그런 이상적인 생각과 희망을 가지고 이 시리즈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