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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un 26. 2017

연애는 나에게서 시작된다.

남 탓은 조금 덜하는 건 어떨까

남녀 간의 갈등이 생길 때

사람들은 연애를 함에 있어서 갈등이 생기면 상대의 잘못을 잡아내는 경향이 많이 있다. 이는 연인 간의 관계에서 두 사람은 보통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대하지 않는 것을 상대에게 기대하고, 상대가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이다. 그리고 그런 반응이 정당할 때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이 일어날 때 반사적으로 상대에 대해서 부정적인 피드백이 나가기 전에 우리는 먼저 브레이크를 잡고 그 갈등의 시작이 어디였는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누가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을까? 사실 두 사람 간의 갈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누가 원인을 제공한 것을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이 폭발할 때는 두 사람 모두에게 어느 정도의 과실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실비율은 현저히 다를 수도 있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곰곰이 따지다 보면 항상 내려지는 결론은 결국 그 연애도 '나'에게서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상대방이 먼저 고백을 했을 수도 있고, 내가 했을 수도 있지만 일단 연인이라는 관계에 골인을 하게 된 것은 어떤 형태로든 나와 상대방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 아닌가?


그리고 연애는 관계이기 때문에 연애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도 사실은 나에게서 시작이 된다. A가 같은 행동을 B와 C에게 할 경우 B와 C가 보이는 반응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A가 무엇인가를 하거나 뭐라고 말할 때 내가 특정한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은 A가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그걸 내가 특정한 방법으로 받아들이게 된데서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상대가 나에게 맞춰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는데,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상대가 본인에게 그렇게 똑같이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A가 B에게 특정 행동이나 말을 한 것에 B가 화가 나거나 속상했지만 C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면 A는 B에게 C처럼 반응해 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는데, 그 요구는 B가 'A가 나한테 맞춰줄 수 있는 것 아니냐'라는 것과 다른 게 뭐가 있을까?


연인들은 이런 갈등들을 그 유형과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해결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 일어나는 갈등은 이후에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아마 지금 잘 안 맞춰지는 것은 나중에도 잘 맞춰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상대의 과실도 있지만 나의 성향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나'에 집중해보자

사실 연애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 혹은 소개팅을 계속하고 내가 호감을 느끼는 상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연애를 못하는 상황의 원인은 사실 나에게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본인이 잘못되었거나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라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내 성향이 상대의 성향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이고, 기회는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내가 연애를 하지 못하는 원인은 본인에게 있을 가능성이 높단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연인과의 갈등이 있을 때 흥분하고 상대 탓을 무조건 하기보다 조금 더 근본적으로 이 갈등이 왜 생겨나는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갈등을 야기하는 나의 성향을 내가 수정할 수 있는지, (갈등은 어쨌든 두 사람 모두가 어느 정도는 원인제공을 하니까) 그 갈등을 야기하는 상대의 성향이 변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고민 끝에 두 사람이 서로 변하기 힘든 부분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으며 상대의 성향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계속해서 같은 문제로 부딪히는 것보다는 헤어지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물론 지금 두 사람 간의 갈등이 일어나는 포인트가 시간이 지나면서 맞춰질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성향을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품어줄 수 있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 '만약 나중에라도 그렇게 변하면 과거에 그 사람을 놓친 게 아쉬울 수 있지 않나?'라고 반론할 수도 있는데,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래서 인연이라는 것은 결국 타이밍이 아닐는지. 정말 인연이라면 아쉬운 시점에 다시 찾아갔을 때 다시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애를 하지 못하는 사람 나는 '만인의 연인은 아니지만 마니아층은 있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본인이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어도 연애를 못하는 것은 보편적이지는 않은 본인 특유의 성향이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다면 그 사람의 그런 특유의 성향이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그만큼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다 (이런 것은 보통 주위에서 본인과 아주 친하지는 않은, 적당히 애매하게 친한 사람들이 알 가능성이 높은 듯하다. 정말 친한 사람들은 비슷한 성향을 가진 경우가 많기에...). 그렇다고 또 그런 성향을 바꾸라는 것은 아니고, 그것을 받아들인 순간 그 성향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 본인이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본인의 짝을 만나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을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그 사람이 나타나길 기대하며 기다리면 되고, 그렇게 기다릴 자신이 없다면 본인이 변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본인의 '독특함'을 누그러뜨리고 양보하고 상대에게 맞추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면 말이다.


결국, 그 모든 고민도 본인이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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