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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Feb 06. 2018

사랑의 기본기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

사랑하는데 보편적으로 필요한 덕목

기본기란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을 의미한다. 사실 사랑에, 연애에, 결혼에 그런 게 어디 있나 싶은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애는, 결혼은 결국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능력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여기에서 기본기라 함은 연애와 결혼에 대한 기본기라기보다는 사랑에 대한 기본기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연애를 하는 연인이 되고, 형식적인 측면에서 부부가 되어 결혼을 해도 그 실질에 있어서는 연인이 아니라 한 사람이 상대를 소유하거나, 두 사람이 서로 상대를 소유하려 들 수도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사귀기로 했다고 해서 두 사람 사이에 반드시 진짜 사랑이 없을 수도 있고, 두 사람이 결혼을 했다고 해서 두 사람 사이에 반드시 사랑이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물론 두 사람이 착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욕구, 욕망이 사랑의 감정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브런치에서 반복해서 설명했듯이 사랑은 상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상대를 나 자신을 아끼는 만큼 아끼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두 사람이 연인일 때, 부부일 때 그러한 사랑을 하는 것을 전제로 얘기를 진행하려고 한다. 


나를 사랑하는 능력

그러한 '사랑의 기본기' 중에 가장 기본은 자신을, 스스로를 사랑하는 능력이다. '자신이라고 사랑하는 능력'이라는 표현은 마치 사람들이 자신은 완벽하다고 착각하면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떠올리게 할 수 있지만, 그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오히려 자신 안에 있는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서 겉으로 더 과장되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을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와 단점을 건강하게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다. 누군가 자신의 부족한 면을 지적하더라도 그에 발끈하기보다는 담담하고 건강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 그러면서 자신이 어떤 면에서 장점과 함계를 갖는지를 분명하게 아는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알게 된다. 이는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와 단점을 건강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이 사랑의 기본기인 이유는, 브런치에서 수차례 언급했듯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알기 마련이다. 자신의 단점과 한계를 건강하게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한계와 단점을 마찬가지로 수용해 줄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것은 그처럼 상대의 단점과 한계를 인정해 주는데서 시작된다. 또 자신의 매력과 장점을 아는 사람은 상대의 장점과 매력 역시 볼 줄 알고, 그것을 부각시켜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노력을 하는 능력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서도 답답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게 내 단점인데 인간은 완벽하지 않잖아. 어쩔 수 없는 거지 뭐'라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을 만났을 경우에도 그의 단점과 한계가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면 이는 사실 두 사람의 관계에 크게 문제가 될 게 없다. 하지만 만약 상대가 나의 부족한 면을 불편해한다면, 그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부족한 면을 보충하기 위한 노력을 할 줄은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사랑은 나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과 나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니 말이다. 


사실 위에서 그럴듯하게 '사랑의 가장 기본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자신을 그렇게까지 건강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없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무의식 중에 열등감을 갖고 있거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사랑에 있어서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기본기는 '노력을 하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지금 부족한 게 있어도, 지금 완벽하지 않아도 어떠한 방법으로든 노력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은 사람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을 할 줄 아는 사람과의 관계는 티가 나지 않더라도 조금씩 나아질 확률이 높은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그렇게 노력을 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문제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모든 면이 완벽하게 맞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결혼한 이후에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는 부부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부부는 모든 면이 완벽하게 맞아서 싸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은 다름으로 존중하고 그 독립된 영역을 인정하면서도 서로에게 맞추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작은 면들에서 계속해서 맞춰나가기 위한 노력을 할 줄 안다면, 그 관계가 지겨워질 일이 없지 않겠나?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이 완벽하게 맞춰질 일은 절대 없으니 말이다. 두 사람이 맞춰야 할 영역은 계속 발견될 테니.^^


다만, 그렇게 노력하는 능력은 상대에게만 있어서 되는 것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어느 일방만 계속해서 노력하는 관계는 장기적으로 절대로 건강할 수가 없다. 일방적으로 노력만 해대는 사람이 언젠가는 반드시 지치게 되어있기에. 아 물론 그러한 노력의 '수준' 역시 최대한 비슷한 수준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어느 일방이 과도하게 노력하는 것 역시 두 사람의 관계에 갈등의 시작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기에...


언어구사 능력

그런데 그런 노력을 하는 능력도 '제대로 된 방향'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 엄청난 노력을 '잘못된 방향'으로 하면 그 관계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휴가에는 정말로 늘어져서 쉬고 싶은데 연인이 엄청나게 열심히 일정을 짜서 10분도 앉아서 쉴 틈이 없는 휴가 일정을 짜서 같이 떠난다고 해보자. 그 관계가 제대로,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에는, 연애에는, 결혼생활에는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하며 이는 언어구사능력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다.


그렇다면 언어구사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사랑도, 연애도, 결혼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언어구사 능력은 물론 표현하는 방법, 받아들이는 방법, 상대의 말을 이해할 줄 아는 방법이 모두 다르다. 그것을 꼭 '수준이나 능력의 차이'라고 하기보다는 '다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언어구사 능력이라고 표현되는 능력은 사실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지금 당장은 표현의 차이로 인해 갈등이 있어도 본인의 표현방식과 상대의 표현방식이 다르다면 상대의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면 언어적 차이로 인한 두 사람의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서도 줄어들게 되어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과 나의 표현방식이 다를 수 있다'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 물론 세상에는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달라서 그 간극을 절대로 좁힐 수가 없는 사람이 있고, 상대가 어떻게 말하든지 내가 그걸 사랑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공격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표현방식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갖게 되는 지를 스스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걸 아는 건 상대를 찾는데 도움이 되지는 못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상대를 배제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대화방식도 '처음부터 완전히 맞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눈치가 조금 더 빨라서 추상적으로 돌려서 말해도 상대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잘 파악해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나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적응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나 역시 상대의 특징을 고려해서 그에 맞춰주기 위한 노력도 같이 병행하는 것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과의 '언어적 측면'에서 필요한 '노력'일 것이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어느 일방이 모든 것을 맞추도록 강요하는 관계는 결코 그 끝이 좋을 수가 없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능력

그런데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 있어서 드러나는 차이는 순수하게 언어적인 차이에서도 나타나지만, 두 사람이 처해 있는 환경의 차이로 인해서 나타나기도 한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속한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자신이 있는 환경에 필요한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가?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각자의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예를 들면 컨설팅 회사나 법무법인에서 일하는 사람은 업무로 인해 평일에는 데이트를 할 수 없을 가능성이 거의 100%에 가깝고, 주말에도 최소한 반나절 이상은 집에 뻗어 있을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러다 보면 데이트를 할 때도 그 피로가 대화방식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래서 사랑에, 연애에, 부부관계에 가장 중요한 능력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능력'이다. 한 인터뷰에서 한 배우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면 내 일을 더 잘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것을 봤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능력'에 있다. 아무리 같은 직종에 있어도, 심지어는 같은 회사, 또는 같은 팀에 있어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의 마음과 그 상황으로 인해 하게 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한 팀에서 팀장과 과장이 사귄다고 해보자. 조직에서 명령을 위치에 있는 사람과 팀 중간에서 조율을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다른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똑같은 업종에 있더라도 (그러면 안되지만 현실에서는) 남자와 여자는 단순히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완전히 다른 상황에 처할 때도 있지 않나? 


그래서 사실 '같은 직종'에 있는 것이 어쩌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가능성을 조금은 더 높일지는 몰라도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능력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능력은 첫 번째로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며, 두 번째로 상황을 놓고 상상을 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과 '많은 대화'를 할 때 완벽하게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도, 상황을 상상하는 것도 쉽게 하는 성향의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많은 대화'를 하는 데 있다. 


가정을 꾸린 모습이 정말 부러웠던 고등학교 동기 부부가 있는데, 내가 그 부부를 부러워했던 가장 큰 이유는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의 영역을 너무 잘 안다는 데 있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가 안 되었는데, 파리에서 살고 있던 그 부부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그 비결을 알게 됐다. 그 부부는 잠들기 전에 같이 성경을 한 장 같이 읽고 그 날의 기도제목을 나눴는데, 그 기도제목을 나누는 과정에서 서로의 일상이 조금씩 조금씩 공유되더라. 그렇게 조금씩 공유되는 일상이 쌓이다 보니 그 부부는 완전히 다른 삶의 영역에서 하루를 보내도 서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연인과 부부에게 있어서 대화가 중요한 것은 완전히 다른 일상을 지내도 두 사람의 삶이 대화를 통해서 공유될 수 있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두 사람 간에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많은 경우에 각자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되기 때문인데, 그렇게 일상의 작은 것들을 평상시에 공유해왔다면, 그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낮아지지 않을까? 


책임감

마지막으로 사랑에 있어서, 연인과 부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책임감이다. 여기에서 책임감이란 '내가 모든 것을 다 해낼 거야'라고 혼자서 짐을 진다는 측면에서의 책임감이 아니라,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기로 한 약속에 대한 책임감을 의미한다. 불륜에 대한 기사나 글에서 사람들이 '불륜이 무슨 사랑이냐'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사실 불륜에서 태어난 사랑이 왜 사랑이 아니겠나? 그 안에도 여러 가지 감정과 경험이 공유되어 있고 그것도 사랑은 사랑일 것이다. 하지만 불륜에서 만들어진 사랑은 그 뿌리를 두 사람 중에 최소한 한 명은 자신이 누군가와 평생 함께 하기로 한 약속에 대한 무책임함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뿌리에 최소한 한 사람의 무책임함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랑보다 다시 깨질 확률도 높을 것이며, 그러한 무책임함으로 인해 한 사람을 비참하고 힘들게 만들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없을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연인이 된다는 것은 사실 두 사람이 서로를 다른 사람과 달리 특별하게 대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은 본인의 가족, 지인,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앞으로 두 사람이 상대만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면서 서로 의지하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인이 된 사람은, 부부가 된 사람은 상대에 대해서 그러한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 맞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유치원 때 배우는 인간의 기본적인 사회적 도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연인관계, 부부관계에서는 상대에 대한 감정과 함께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책임감도 두 사람이 모두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본인의 마음이 돌이켜지지 않을 정도로 돌아섰다면, 상대와 계속 같이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완전히 증발해버렸다면,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기 전에 그 사실을 상대에게 정직하게 공유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사실 이렇게 거룩한 얘기들을 나열했다고 해서 내가 그걸 다 완벽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아마 이 세상 누구도 위 내용을 완전히 실천해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완전한 존재는 세상에 없다. 하지만 이상이라는 것은 그것이 달성될 수 없다고 해도 우리가 노력할 방향을 제시해주기 때문에 의미가 있듯이, 사랑의 기본기라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데 있어서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방향성을 제시해준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 방향성을 최소한 아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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