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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Dec 10. 2018

연애할 이유

우리는 모두 '내 편'이 필요하다

연애보다 중요한 것

개인에게 연애는 가장 중요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내 글을 지금까지 어느 정도 이상 읽으신 분들이라면 '그렇게 연애가 중요하다고 일 년 반이 넘게 써왔으면서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이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연애, 그리고 결혼은 인간에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나는 여전히 생각하지만 우리 인생에 연애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직업, 직장, 연봉 같은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개인에게 연애보다 명확하게 더 중요해야 하는 대표적인 것은 자신의 행복이다. 따라서 본인이 지금 당장 연애를 하는 것보다 일할 때 훨씬 행복하다면, 연애보다 다른 것을 하는 게 더 행복하다면 난 그 사람은 연애보다 그 일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지금 당장' 뿐 아니라 중기적, 중장기적, 그리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그 행복이 얼마나 지속될지, 또는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고민을 우리는 계속할 필요가 있다. 그 답은 우리보다 세상을 더 산 사람들, 또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대충 나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당장 우리가 잘 나가고 있고 행복하더라도 그게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역시 염두에 둬야 한다. 


나 역시 그런 고민들을 해왔고, 또 하고 있다. 사실 여러 가지 개인 신상에 변화가 생긴 후에 소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들을 잡지 않고 있는 것은, 지금 당장 연애를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보다 내가 하고 있는 일과 현재의 것들에 집중하는 게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마음이 내키지 않는 상황에서 억지로 나간 소개팅에서 좋은 결과가 있기는 어차피 힘들더라. 하지만 난 이 행복감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며, 기회가 있으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다만 지금 내 상황에서 '소개팅'과 같은 계약관계 같은 만남은 지금 내 에너지 레벨에서는 행복감을 확연히 저하시킬 것이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을 뿐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연애하자

이렇게 속 편한 척 얘기하고는 있지만, 내 나이의 남자들도 잘 맞는 여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실 신경이 꽤나 쓰이는 편이긴 하다. 다만 내 다음 연애 선택의 기준은 분명하다. 그 사람과 만났을 때 그 사람도, 나도 서로를 만나지 않았을 때보다는 행복해야 한단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연애가 어떻게 무조건 행복하냐?'라고 물을 것이고, 그 지적은 타당하다. 내가 여기에서 행복하단 것은 '항상 공중에 떠다니는 것처럼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그리고 평균적으로 봤을 때 혼자일 때보다 두 사람이 함께 일 때 두 사람이 모두 행복해야 한단 것이다. 이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해도 힘들긴 하지만, 그걸 상쇄할 만한 행복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난 두 사람이 만남을 지속할 때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면, 불행하고 힘들다면, 혼자일 때가 더 행복할 때가 분명하고 계속 혼자 있고 싶다면 두 사람은 헤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한 번 사는 인생, 행복하게 살기에도 짧은데 뭐 그리 불행한 만남을 일부로 유지한단 말인가? 어떤 이들은 '이제 헤어지면 다시 누군가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아'라고 말하는데, 우선 첫 번째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 다시 누군가를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경우를 최소한 나는 아직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고 두 번째로 그 말은 연애 또는 결혼 자체를 나의 행복보다 우선순위에서 위로 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이상한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떻게 행복해지는가?

그렇다면 만남을 통해서 더 행복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선 연애를 할 정도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현시점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내가 받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그 사람과 만났을 때 감정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설렘이 될 수도 있고, 안정감이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부모, 형재, 친구와 만났을 때 느낄 수 없는 무엇인가를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껴야 한단 것이다. 


그게 무엇일지, 어떤 것일지는 사람마다, 그리고 관계마다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 내게 그것은 설렘과 상대에 대한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되는 호르몬 작용이 관계를 진전시키고 싶단 마음을 들게 했다면, 나이가 들수록 그런 감정들도 있어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상대와 있을 때의 안정감, 편안함 등이 더 중요하게 다가오더라. 


그렇다면 연인이라는 관계 속에서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나는 그것은 '온전히 내 편인 사람'과 함께함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사실 생각해 보면 부모님은 우리 편이기도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이 한창때였던 시대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때 형성된 세계관을 가지고 자녀들을 대하기 때문에 그 관계에서 부모님이 '온전히' 자녀의 편이 되기는 매우 힘들다. 그리고 설사 그런 부모님을 두고 있다 하더라도, 부모님은 자녀보다 먼저 세상을 뜰 것이기 때문에 그런 관계는 부모-자식 외에 다른 관계에서도 형성될 현실적인 필요가 있다. 그런데 친구들의 경우 고등학교, 조금 더 길게 보면 대학교 때까지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비슷해서 서로의 편이거나 삶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라 누군가가 상대의 편이 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사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편이 필요하다. 자신이 하는 일과 선택을 응원하고 지지하면서도 때로는 쓴소리를 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본인이 흔들릴 때 옆에서 잡아주고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이는 아무리 악덕한 사람도 자신의 가족에게만큼은 사랑받고 싶어 하고, 자신의 가족만큼은 본인을 이해해줬으면 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 편'이 되어준다는 것이 무조건 내가 옳다고 말해준다는 것은 아니다. 그건 내 생각이 어디에서 오는지 이해해주면서도 다른 시선도 던져주며, 그 이후에 개인의 선택은 존중하고 받아들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난 연애는 '이 사람은 내 편이겠구나'라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연애를 할 이유라고 생각한다. 난 연인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지팡이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지팡이만 갖고 걸을 수는 없지만, 내 발로 걷는 중에 힘들 때 지팡이를 짚는 것이 조금 더 편하게 걷게 되지 않나? 마찬가지로 연인은 내가 기본적으로 내 인생을 끌고 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쓰러질 것 같을 때 내가 잠시 의지할 수 있는 존재이다. 나는 최소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여기에서 '의지'한다는 것은 감정적인 영역을 주로 의미하지만 꼭 거기에 국한된 표현은 아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그런 존재를 필요로 한다. 연애를 함으로써 생기는 에너지, 시간 등의 소모를 고려해보면, 그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연애를 할 가장 큰 이유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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