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상대도 개인임을 기억하자
개인주의자 선언
나는 철저한 개인주의자다. 이 문장을 읽은 사람들 중에 '어떻게 대놓고 본인이 이기적이라고 선언을 할 수가 있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구분하고 계시지 못한 것인데, 이기주의는 '나 자신'만을 위하고 모든 것이 본인 중심인 사람을 의미하고 개인주의는 '모든 개인'이 중요하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비슷하지도 않은 개념이다. 따라서 개인주의자는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개인으로서 존중하며, 이것은 개인주의자는 본인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된다면 개인으로서 다른 사람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그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개인주의가 된다는 것이 공동체나 사회를 무시하는 행위의 동의어는 아니다. 이는 우리가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같이 사회가 느슨하게 형성되어 있는 상태에 살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개인이 잘되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도 잘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주의자가 국가경제를 걱정하고, 취업률을 의식하면서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것은 국가가 잘되기를 원하기 때문이 아니다. 개인주의자는 그러한 긍정적인 지표들이 결국 그 사회 구성원들 삶 전반을 낫게 만들 것이라고 믿고, 그렇게 되면 본인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그러한 긍정적인 지표들을 원한다.
연애도 개인주의적이어야 한다
이는 연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연애에서도 개인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은 '그래, 그러니까 나에게 더 잘 해줘야지'라고 받아들이는데, 그건 이기주의지 개인주의가 아니다. 개인주의적인 연애는 자신의 행복만큼이나 상대의 행복과 안위가 중요하다. 따라서 개인주의적인 사람은 상대의 영역을 배려하고, 상대의 사랑 표현 방식을 존중한다. 물론 그렇게 존중하는 것의 한계는 본인의 희생이다. 개인주의자는 본인이 행복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배려를 한다. 그리고 상대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작년에 내가 소개팅으로 만난 정말 괜찮은 분은 천주교 신자셨다. 몇 번을 만나면서 분위기가 좋았고 우리는 만나서 대화를 할 때마다 웃음이 끊이지를 않았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까워질수록 내 안에서는 무의식 중에 '이 사람이랑 신앙적인 얘기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교회를 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게 있어서 신앙과 종교는 내 가치관의 기초가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난 그것을 연인은 물론 누구에게도 강요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런데 그분을 만날 때마다 그 생각이 들었고, 그분께 그 생각을 솔직하게 말씀드렸으며, 우리는 더 이상 만남을 이어가지 않았다.
내 행복을 위했다면, 난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을 참고 관계를 더 끌어간 이후에 어느 순간서부터 '교회에 가자'는 말을 했을 것이다. 만약 그분을 만나는 초기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가 어느 순간서부턴가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그렇게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닌척하면서 관계를 일단 만들고 나서 상대가 끊기 힘들 때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은, 개인주의자인 내 입장에선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친한 사람들은 나의 이런 패턴을 알기 때문에 갑갑하다고 하지만 연인 간에는 최대한 솔직한 게 좋다고 생각하고, 더군다나 이제는 만남 초기부터 결혼에 대한 생각을 아예 안 할 수는 없는 나이가 된 상황에서는 '본인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미리 공유하는 게 예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그것이 상대의 행복을 저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연애를 해도 개인의 공간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연애에도 개인의 공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올해 소개팅을 통해서 몇 번 봤던 만났던 분과의 관계의 경우, 교사였던 그분은 만남이 진행될수록 퇴근 시간 이후에는 계속해서 카톡 메시지를 보내셨다. 심지어 내가 확인을 하지 않은 경우에도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면서. 그분은 그게 관심의 표현이고 사랑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난 지금도 그건 '이기적인 관심'이지 '개인주의적인 관심'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건 본인이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지, 상대가 그런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물어보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해도 개인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그 개인성은 그 사람이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하다. 이는 그 개인이 존중되어야 그 사람도 자신이 누군가의 부속물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의 다름은 그 다름대로 존중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다름을 서로 존중하지 못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두 사람은 헤어지는 것이다. 그게 사람들이 말하는 '자신의 스타일'의 의미다. 주부들이 결혼 후에 우울증을 겪는 것도 자신이 하는 일이 자신의 남편과 아이의 뒤치다꺼리라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며, 그래서 주부들도 자신의 자신 다움을 느낄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꼭 가사 밖의 일일 필요는 없다. 예를 들면 빨래하는 방법, 옷을 정리하는 방법, 그 날의 메뉴를 정하는 방법에 대한 권한을 주부가 다 갖고 그 영역에 대해서는 가족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면 그 영역에서도 주부는 자신 다움을 존중받는 것일 테니.
연인이나 부부간의 관계에서의 문제는 대부분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로 인해 발생하고, 그 관계에서 모든 것이 본인 탓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은 보통 과도한 이타주의적인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연애에서는 상대도, 본인도 동등하게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되어 있고 상대에게 영향을 미칠 것들에 대해서는 서로 공유해야 하겠지만, 연인이나 부부라고 해서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영역 또한 서로 존중되어야 할 것이며, 사실 그런 문제는 두 사람 간의 신뢰가 깊어질수록 공유하지 않는 영역이 줄어들게 되어있는 것이지 그걸 연인이나 부부의 의무처럼 강요할 것은 아니다. 서로의 취향 역시 마찬가지.
그래서 건강한 연인과 부부는 상대를 '나의 연인'이나 '나의 것' 또는 '나의 소유'가 아닌 그 개인으로서도 존중해주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일방향이 아니라 상호 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