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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Apr 20. 2017

사랑은 커피와 같은 것.

사랑의 모양과 맛은 다 다르다.

학부시절 초기에는 커피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생 기자단으로 뽑혀서 유럽에 한 달간 머물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탈리아에 머물며 현지 사람들을 취재하면 그 사람들은 대화가 5분만 이어지면 카페로 들어가 에스프레소를 마시자고 했다. 그러다 보니 심할 때는 하루에 에스프레소만 10잔을 마시고는 했다. 커피 맛도 모르던 내가. 취재는, 인터뷰는 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귀국하여 얼마나 지났을까? 그 기자단 모임이 있었고, 나는 그렇게 쓰기만 하던 에스프레소를 추억에 빠져서 주문했다. 돌아보면 그게 나의 커피에 대한 사랑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학생이었기에 학교 밖에서 커피를 사 마시지는 못했다. 돈이 아까워서. 아니 정확히는 그럴 돈이 없으니까. 그저 학교 안에서 파는 저렴한 커피를 사 마셨을 뿐. 그것도 에스프레소로 커피 맛을 들이기 시작해서인지 아메리카노만 마셨다. 계속 그래 왔다. 까미노에서 cafe con leche를 마시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커피에 맛을 들인 것은 회사에 다니면서부터였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드립을 맛보기 시작했고, 주말에 시간도 있으니 맛있다는 커피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부암동에 있는 클럽 에스프레소가 그 시작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변하기 시작한 게 싫어서 찾지 않은 지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변하지 않는 것들이 좋지만 세상은 그렇게 변하지 않나.


그리고 대학원에 오면서 커피값을 아끼기 위해 큰 마음을 먹고 네스프레소 기계를 샀고, 그때부터 수년째 혼자 드립을 해 마신다. 사람들은 커피 클래스를 듣지만, 워낙 틀에 박힌 걸 싫어하는 나는 그저 주전자로 물을 부으며 마시기 시작했었고, 그러다 보니 이젠 주전자로 물줄기를 조절할 줄 아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커피에 대해서 읊조린 것은 아침에 원두를 갈기도, 드립을 하기도 귀찮아서 네스프레소로 한잔 내려마시면서 '그래, 커피는 서로 맛이 다른 거지 더 맛있고 맛없는 게 어디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더치, 에스프레소, 핸드드립, 콜드 브루 등 이런저런 말을 붙이며 커피에도 유행이 돌지만 사실 더 맛있고 덜 맛있는 커피는 없다. 아니 물론 나쁜 원두를 쓴 커피는 맛이 없지만 그마저도 드립을 잘하면 사실 어느 정도는 살려낼 수 있다. 커피는 추출하는 방식에 따라 맛이 다르고 그 맛에 대한 취향이 다를 뿐이다.


사랑도, 연애도 마찬가지다. 남의 사랑이, 연애가 더 좋아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막상 내가 그런 사랑, 그런 연애를 하려고 들자면 그게 나에게는 잘 맞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만나고 있는 그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건 어쩌면 그저 그 사람의 다른 면을 발견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에게서도 더치, 에스프레소, 핸드드립, 콜드브루적인 모습이 모두 존재하지 않겠는가? 같은 커피라도 그 날의 물의 온도, 습도, 내리는 방식에 따라 맛이 달라지지 않는가? 그리고 그날 나의 기분에 따라 다른 커피가 당기듯, 그날 나의 기분에 따라 상대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지 않겠는가?


사랑도, 연애도 각자의 색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남의 연애도, 사랑도 평가하고 판단할 수 없으며, 아니 그래서는 안되며 우리 또한 다른 사람의 사랑과 연애를 부러워하며 내 연인을 괴롭게 할 필요가 없다. 그 사람에게는, 그리고 당신의 연애에도 그 고유한 향과 맛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같은 커피를 내리더라도 내리는 방식에 따라 커피의 맛과 향이 달라지듯 연애도, 사랑도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그 향과 맛이 달라지게 되어 있다.


사랑은, 연애는 그렇게 커피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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