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출발지 2. #포르투갈순례길 #까미노포르투게스
프랑스 순례길이 시작되는 생장피에드포르는 피레네 산맥 기슭에 갇혀 있어 접근이 힘들다. 여름 언저리에는 프랑스 순례길이 지나가는 스페인 북부 중소도시 팜플로나에서 곧장 가는 버스가 운행해 왕래에 전혀 지장이 없지만 눈 내리기 시작하는 겨울이 가까워 오면 마을은 금방 고립된다. 인근 대도시인 바욘에서 간선기차를 타면 생장피에드포르 역까지 1시간이면 닿지만 둘러둘러 가야하는만큼 길은 멀어진다.
그에 비해 포르투갈 순례를 시작하는 방법은 훨씬 수월하다.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 아니면 포르투갈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휴양 도시 포르투에서 시작한다. 포르투갈 순례길을 걷다 만난 유럽 순례자들은 산티아고에서 순례가 끝나면 다시 버스를 타고 포르투로 내려가곤 했다. 포르투에서 유럽 각지를 잇는 저가항공이 많이 운항하고 있고 가격 역시 훨씬 저렴하기 때문. 도시에 따라 서울-부산간 KTX보다 저렴한 가격에 자기 나라에서 포르투에 도착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리스본으로 가는 직항편이 생겼다. 포르투갈 순례길을 걷겠다면 정말 쉽게 가고올 수 있는 한가지 옵션이 더 생긴 셈이다. 어차피 유럽까지는 비행기 아니면 갈 도리가 없으니 포르투갈까지 항공편 예약에 대한 내용은 스킵하자.
1. 리스본 Lisbon 출발
2019년 현재 포르투갈 순례 공식 출발지는 리스본이다. 리스본 아닌 곳에서 걸으면 순례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수도 리스본에서부터 산티아고까지를 잇는 까미노 구간이 정비를 마치며 이 구간을 걷는 순례자가 부쩍 많아졌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포르투갈순례길'은 포르토-산티아고 구간으로 여겼다. 까미노 루트임을 알리는 노란 화살표가 잘 설치되어 있고, 하루치 걷기에 적절한 지점에 공식 알베르게도 마련되어 있어 편했기 때문. 그러면서 덧붙인 얘기들이 '시멘트 투성이 리스본 길에 비해 훨씬 예뻐'였다.
포르투갈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나 평가를 처음 들은 건 4년 전, 프랑스 순례가 끝난 직후 산티아고에서 만난 어떤 일본인 할머니를 통해서였는데 70대 초반 그녀는 그때 이미 리스본에서부터 걸어 포르투갈 순례를 완주한 참이었다. 리스본에서 포르토까지 구간에는 까미노 표식도 부족하고 루트가 정비되지 않아 일반 국도나 주택가 등 거리를 따라 걷는 곳이 많다고, 만약 포르투갈 순례를 계획중이라면 포르토에서 시작하기를 추천했었다.
그때만 해도 내 인생에 순례는 단 한번 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막 프랑스 순례를 끝난 감격에 그런 얘기들이 그리 의미 있게 다가오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막연히 까미노가 그리워지기 시작했고, 한국인들로 넘쳐난다는 프랑스길 대신 포르투갈을 걷기로 결심하고 까미노 유럽 커뮤니티를 검색했더니 길에 대한 평가는 4년 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듯도 했다. 그리고 막상 걸어보니... 예전 포르투갈 루트가 어땠는 지는 모르겠지만 리스본에서부터도 걷기에는 그리 무리가 없었다. 스페인 갈리시아 지역처럼 500미터 마다 꼬박꼬박 까미노 표식이 서 있는 친절함은 없었으나 길을 잃지 않을 만큼 화살표가 구간을 잇고 있었다. 대신 리스본에서부터 이틀간은 숲과 들길 대신 도심으로, 고속도로와 국도변 옆길로 걸어야 해 다소 삭막하기는 하다.
> 포르투갈 순례가 시작되는 곳, 세 Se 대성당
리스본에서 순례를 시작하려면 구도심에서도 중간에 서 있는 Se로 일단 가야 한다.
세 Se 대성당에서 포르투갈 순례길이 오피셜하게 시작된다. 순례 오피스도 성당 내부에 있다. 성당 1층 뒷편에 기념품을 판매하는 작은 공간이 순례 오피스를 겸하는데 이곳에서 순례자 증서인 크레덴시알(2유로)과 포르투갈 순례길 가이드북도 살 수 있다.
문제는 성당은 9시에 문을 여는데 순례 오피스는 그보다 1시간 늦은 10시부터 시작한다는 점. 포르투갈 순례를 리스본에서 시작하려고 4월말 출국했는데... 이때 포르투갈은 이미 더웠다. 한낮의 뜨거운 포르투갈 태양을 받으며 걸을 자신이 없어 동 트기 전 숙소를 나섰는데 당연히 성당이 잠겨 있었다. 황금같은 아침 3시간을 허비해야 하나, 그냥 지나칠까도 생각했으나 왠지 리스본 대성당에서 스탬프를 받아야 공식적으로 순례가 시작되는 기분일 것 같았다. 9시에 연다는 인근 상인들 귀띔에 주위를 산책하다 9시에 오니 관광객들은 이미 성당에 입장하기 시작했으나, 순례자 오피스는 비어 있었다. 다시 한시간을 기다리니 그제서야 담당자가 왔는데 크레덴시알을 구입하고, 스탬프를 받고나니 10시 30분. 성당 정문을 나서니 리스본은 이미 끓기 시작하고 있었다.
리스본에서부터 포르투갈 순례를 계획하고 있다면 순례 당일까지 기다리지 말고, 미리 크레덴시알을 구입하고 대성당 스탬프를 받아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혹시 성당이 닫혀 있으면 리스본 투어리즘 오피스에서도 크레덴시알을 판매하고 스탬프를 갖고 있으니 투어리즘 오피스에서 리스본 일정을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대성당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발견한 노란 화살표. 대성당 정문을 바라봤을 때, 오른쪽 벽 하단에 그려져 있다. 성당을 돌아나가 골목을 걸어 리스본 구도심을 빠져나가도록 안내하고 있으니... 아마도 이 화살표가 포르투갈길 노란 화살표 1호인 셈일 것이다.
참, 리스본에는 아직 공식 알베르게가 없다. 호텔이나 호스텔을 이용해야 한다. 포르투갈 순례자 협회에서 준비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정확하게 언제인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추세라면 포르투갈을 찾는 관광자 뿐 아니라 순례자 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오픈하지 않을까 싶긴 하다. 혹시 포르투갈 순례를 생각중이라면 프랑스 순례길처럼 한국인지 스페인인지 구분되지 않을 만큼 혼잡해지기 전, 조금이라도 더 여유를 즐기며 걷기를 권한다.
2. 포르투 Porto 출발
4년 만에 찾아도 여전히 아름다운 포르투는 그야말로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물론이고 순례자도 넘쳐났다. 포르투 공영 알베르게가 도심에서 20-30분쯤 떨어진 외곽에 위치한 터라 포르투에 닿았을 땐 일반 호스텔에 묵었는데 그 넓은 곳에 순례자는 나 혼자인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날, 포르토를 벗어나 하루 코스에 있는 빌라리뇨Vilarinho 라는 작은 산골마을 수도원 개조 알베르게는 순례자들로 가득했다. 넓은 포르토 곳곳에 섞여 보이지 않던 순례자들이 하루만에 알베르게로 모여든 것이다.
더군다나 포르투에서는 해안선을 따라 걷는 바닷길, 까미노 다 코스타Camino da Costa 그리고 포르투갈 내륙을 관통하는 센트럴 웨이Camio Central로 나뉘는 터라 리스본-포르토 구간에서 만났던 순례자들 외에 뉴 페이스도 부쩍 많아진다. 뉴페이스 순례자들의 특징은 그 전 구간에서 만난 순례자들에 비해 나이가 훨씬 어리다는 점. 유럽 곳곳에서 포르토까지 직항하는 저가 항공이 많은 터라 특히 20대 순례자들이 정말 많다. 포르투갈길에 한참 익숙져 있다가, 포르투를 지나면서는 뭔가 리프레시되는 기분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정체가 여기 있었나보다.
> 포르투에서도 세 Se 대성당에서 순례가 시작된다
리스본 세 대성당에서와 마찬가지로 성당은 9시에 문을 연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성당 본당 바로 옆건물에 있는 순례자 오피스도 9시에 일과를 시작한다.
순례 오피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서 있는 순례자들. 확실히 수가 많아졌다. 포르토에서도 리스본에서와 마찬가지로 미리 크레덴시알을 구입하고, 미리 스탬프를 받아두기를 권한다. 만약 순례 오피스가 열리기까지 기다리기 싫거나, 기다릴 수 없는 형편이라면 성당 3분 거리. 계단 몇 칸만 내려가면 있는 포르토 투어리즘 오피스로 가면 된다.
서 있는 이정표 중 가장 아래가 포르투 시티 투어리즘 오피스를 알리는 사인이다. 그 아래 바닥에 화살표가 두 방향으로 나 있는데 계단 아래를 가리키는, 바다 쪽으로 걸음을 이끄는 노란 화살표는 까미노 루트를 알리는 까미노 공식 마크이고, 반대편을 가리키는 파란색 화살표는 포르투갈의 민족 성지인 파티마까지 이어진다. 포르투갈 어느 곳에서도 노란색은 산티아고, 파란색은 파티마를 알리는 화살표라는 것을 알아두자.
포르투 시티 투어리즘 오피스에서는 크레덴시알 구입이나 스탬프 말고도 포르토 관광에 대한 정보까지 한번에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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