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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Sep 09. 2023

내가 쓴 책을 중고로 팔았다

책들의 두 번째 서점, 알라딘 중고책방 (종로점)

독립출간 작가의 내 책 찾아 떠나는 책방 탐험기 아홉 번째 종착지, '알라딘(Aladdin Bookstore)'



순전한 궁금증이었다. 알라딘에서 내 책이 유통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점에서 내 책이 팔린다는 사실과 서점이 내 책을 중고로 매입해 주는 건 별개의 문제다. 알라딘에 책을 꽤 많이 팔아 본 나이기에 그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알라딘은 대부분의 책을 중고로 매입하지만, 동시에 대부분의 책을 매입하지 않는다. 매입 불가의 기준은 책의 상태와도 관련이 없다. 상태가 멀쩡한 책들도 거절당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중고 책 시장은 자신들만의 엄격한 규칙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처음에는 중고로 판매 가능한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보나 마나 판매가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대형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들도 줄줄이 거절되는데, 영세하디 영세한 독립출간 서적이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출간하고도 몇 달이 넘도록 난 집에 쌓여 있는 다른 책들의 바코드만 불이 나게 찍어 댔다.      


* 막간 상식 (너무 유명해서 적기도 민망한 막간 상식)

: 알라딘 어플에는 중고 책 판매 가능 여부와 가격을 알려주는 기능이 있다. 휴대폰 카메라로 책의 바코드를 찍으면 해당 책을 중고로 판매할 수 있는지, 책의 상태에 따라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난 중고 판매에 중독된 책 되팔기 덕후라서, 이 기능을 매우 자주 이용한다. (미니멀리즘을 이상한 쪽으로 실천하는 중입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마침 내 책이 옆에 있어서 생긴 궁금증이었다. ‘혹시?’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에이.’라는 추임새가 나왔다. ‘그래도?’라는 궁금증이 들었지만,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고 생각했다. 그랬다. 내 안의 자아들이 사우는 소리였다. (싸운다는 표현은 너무 격하기 때문에, 아옹다옹 다투는 모양새에 걸맞게 사우다라는 말을 사용하겠습니다.)      



내적 ‘사움’은 언제나 그렇듯, 호기심 자아의 승리로 끝났다. 책을 집어 들어 바코드를 찍었고, 동시에 ‘어엇?’했다. 이게 무슨 일이람. 알라딘은 내 책을 중고로 매입하고 있었다.      


이 서점, 제정신인가 싶었다. 분명 다른 책들보다 잘 팔리지 않을 게 분명한 책이었다. 어쩌면 재고로 평생 지고 가야 할 수도 있는, 유명한 이름 하나 없는 그런 책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눈물겨운 봉사 정신에, 냅다 감동하진 않았다. (문장이 어딘가 이상하죠? 예, 맞습니다. 이상하라고 적은 문장이에요.) 어쨌든 대형 서점이니 이윤이 남지 않는 장사를 할 리는 없었다. 그래도 감사했다. 이 책이 뭐라고 중고로 매입까지 하냐는 생각에 조금 감동을 먹었다.      



중고로 책을 판매할 수 있다는 사실이 뭐 그리 기쁘냐고 물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자신이 만든 창작물인데, 그걸 중고로 판매할 수 있다는 사실이 뭐 그리 좋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중고라는 어감이 불쾌할 것이다. 과거 우연히 마주했던 한 영상이 아니었더라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오래전 예방 주사 같은 영상을 보았고, 그 장면은 중고 책에 대한 나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김영하 작가의 헌책방 탐방기였다. 영상에서 작가는 부산의 헌책방 골목을 돌아다니며 책과 독자의 미래에 대해 논했다. 그러면서 헌책방에서 우연히 만나는 자신의 책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가는 헌책방에서 자신의 책을 보아도 하나도 불쾌하지 않다고 했다. 헌책방은 증명된 작가들만 입장할 수 있는 곳이니 그러한 곳에서 자신의 책을 보면 오히려 기쁘다고 했다.      


김영하 작가의 ‘헌책방 증명론’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헌책방 주인에게 책은 판매 상품이기에, 그들은 함부로 책을 들이지 않는다. 판매 가능성과 작가의 이름, 책의 가치를 충분히 저울질한 후, 되팔 수 있는 책들만 선별해 가게를 채운다. 그러다 보니 증명된 작가와 작품만이 헌책방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그러지 않은 책들은 가치가 부족한 상품이기 때문이다.      


언어에 능숙한 작가가 들려주는 말들은 굉장히 설득적이었다. 본래부터도 중고에 큰 편견이 없던 나였지만, 그날 이후 내 안에서 중고 책에 대한 정의는 완전히 새로 쓰였다. 책을 만들면서 버킷리스트에 ‘내 책을 중고 책으로 팔기’를 넣을 정도였다. 내 책이 중고로 판매된다는 건, 결국 나의 책이 그런 정도(?)의 가치로 인정받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유명인의 말이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내 책을 중고로 판매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을 때, 상당히 기뻤다. 첫 책이었고, 난 아무것도 아닌 글 쓰는 찌끄레기(...)였기 때문에, 내 책이 중고로 거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한 것만으로도 가치를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물론, 알라딘 중고 책 매입이 헌책방을 대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좋았다. 내 책을 받아주는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했다.      



그래서 나는 내 책을 파는 첫 고객이 되기로 했다. (그때까지 알라딘에 내 책을 중고로 판매한 사람은 없었다.) 마침 내게는 이런 특수한 상황(?)을 대비해 집에 구비해 둔 여분의 책들이 있었고, 나는 책을 들고 알라딘으로 직행했다.      


내가 방문한 서점은 알라딘 중고 책방 1호, 알라딘 종로점이었다. 종로점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첫 책이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책이니 첫 번째 알라딘 책방에서 파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방문할 서점을 결정하자 걱정이 밀려왔다. 알라딘이 너무 평범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의 ‘평범’은 보편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익숙하다는 의미다. 대형 서점에 한 번쯤 방문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모두가 다 아는 모습을 촬영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더군다나 대형 서점에는 동네 책방에 있는 감성과 개성이 없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특별한 이야기들이 없다. 그래서 솔직히 뭘 찍어야 하나 고민했다. 어차피 다 아는 풍경일 텐데, 지점은 달라도 알라딘 책방은 어차피 다 같은 모습일 텐데, 지루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방문한 알라딘 서점은 내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알라딘이 어느 날 갑자기 뒤바뀌어 버린 건 아니었다. 문제는 내 빈약한 관찰력이었다. 알라딘 서점을 그렇게 오갔으면서도 난 알라딘을 이번만큼 자세하게 뜯어 본 적이 없었다. 카메라를 들고 당도한 서점에는 예상 밖의 요소들이 많았다.      


먼저, 알라딘은 남다른 방식으로 책을 분류했다. ‘소설, 시, 경영, 사회과학’과 같이 딱딱한 단어로 책을 가르는 다른 서점들과 달리, 이곳의 책들은 키워드 중심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고전문학의 이해, 두뇌계발, 성공학, 행복론, 인간관계, 포브스 100대 기업’ 등, 흔히 볼 수 없는 이름표들이 책장 상단에 붙어 있었다. 덕분에 ‘오늘 들어온 책’이나 ‘알라딘 MD가 선택한 책’ 등, 다른 서점에서는 눈에 띄는 코너들이 오히려 평범해 보였다.     


책장 이름 중 독보적으로 눈에 띄었던 건 중고 책들의 중고 책을 모아 놓은 공간이었다. 이름하여 ‘버리기 아까워 싸게 파는 책’. 내가 잘못 봤나 싶었다. 대형 서점 책 분류법이라고 하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고 직관적인 이름. 책장에 있는 책들은 중고의 중고 책들이라 다른 책들에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짠하게만 볼 수도 있는 책장이었지만, 난 오히려 그 책장에서 책에 대한 책방의 애정을 보았다. 낡고 오래된 책이거나 오랫동안 아무도 찾지 않는 책일지라도. 함부로 폐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지속가능한 생명력을 불어넣겠다는, 서점의 의지를 보았다.     



알라딘에서 책은 책방 내부를 가꾸는 콘텐츠로도 소비되었다. ‘책 읽는 개’만 입장 가능하다는 입구의 우스개소리부터. 품절 절판 도서의 긴 코너 이름인 ‘광활한 우주에서 이미 사라진 책을 읽는다는 것’. 그리고 서점 중앙 벽면에 커다랗게 붙어 있는 ‘책 중독자 테스트’까지. 알라딘에서 책은 판매해야 하는 물질로서의 상품, 그 이상이었다. 책은 공간을 꾸미는 콘텐츠, 함께 읽고 즐길 수 있는 인테리어가 되어 공간에 재미를 더하고 있었다.     


알라딘이 중고 서점이라는 사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었다. 헌책방과 중고 서점은 그곳만이 갖는 본연의 매력이 있다. 똑같은 책들이 즐비한 대형 서점들과는 달리, 중고 서점의 책들은 함부로 짐작할 수 없다. 신간은 거의 없으며, 그마저도 화려한 사진이나 홍보 문구와 함께 주어지지 않는다. 한 권의 책을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을 들여 책더미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원하는 책을 발견했다면, 지체하지 말고 쟁취해야 한다. 중고 서점에서는 모두가 적극적인 독자가 되어야 한다. 그건 중고 서점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다. 대형 서점 중에서는 오직 알라딘에만 느낄 수 있는 특수한 매력이다.     


고유한 매력을 가진 공간.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책장을 하나씩 뜯어 보며, 문득 내가 왜 그토록 알라딘을 고집하는지를 깨달았다. 내 책이 알라딘에서 유통되기 한참 전부터 나는 10년 넘게 알라딘을 애용해 온 장기 고객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책 가격이 저렴하다는 게 이유였지만, 모든 서점의 책 가격이 엇비슷해진 후에도 난 알라딘만을 고수했다. 다른 서점은 오프라인 매장은 잘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알라딘 중고 책방이 보이면 괜히 한 번 들어가 훑어보았다. 단순히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점을 찬찬히 뜯어 보며, 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알라딘은 의외로 동네 책방 같은 구석이 있는 서점이었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책을 분류하고 이해하며, 친근함과 개성 넘치는 위트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좀 덩치 큰 동네 책방이었다.     



그런 책방에 난 내 책을 팔았다. 책을 팔기가 무섭게 또 다른 책을 구매했다. 새로 산 책이 방금 판 책보다 세 배는 더 비쌌지만, 후회는 없었다. 책방은 원래 그런 곳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주머니가 얇아지고, 팔과 가방이 묵직해지는. 좀 슬프지만 뿌듯한. 그런 이상한 곳이다.     


난 약간 무거워진 가방과 2,200원이라는 약소한 수확과 함께 책방을 나섰다. 그리고 고민거리를 하나 얻었다. ‘2,200원이라는 깃털처럼 가볍지만 묵직한 돈. 이 돈으로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소박하고 즐거운 고민. 나의 소중한 이천이백 원. 쉽게 흘려 버리지는 못할 것 같다. 이 돈으로 대체 뭘 해야 할지, 이제부터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 당부의 말 : 걱정 요정 자아가 쓰는 걱정걱정 글    


  그러실 분이 없으리라 믿지만. 제 글이 그렇게까지 영향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제 안에 있는 걱정 요정 자아가 하도 설쳐 대서 추가로 적습니다.

  혹시라도 위 글을 벤치마킹하여, 미판매 서적의 재고 정리용으로 알라딘을 이용하려고 생각하신 분이 있다면, 그러지 말기를 바랍니다. 저는 알라딘에 총 두 권의 책을 팔았고(오프라인 한 권, 온라인 한 권), 앞으로는 더 판매할 계획은 없습니다. 그마저도 책의 중고 매입이 정말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참고로 둘 다 가능했습니다.)

  알라딘은 안 팔리는 책 땡처리하는 곳이 아닙니다. 책이 판매되길 기다리는 것이 인고와 고행의 시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힘들여 만든 소중한 책입니다. 내 책에 대한 마지막 품위를 지켜 주세요.



알라딘 종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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