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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Aug 26. 2023

2막이 기대되는 강아지 책방

강아지와 사람이 한껏 살을 맞대고 부비는, 우리책방

독립출간 작가의 내 책 찾아 떠나는 책방 탐험기 여덟 번째 종착지, '우리책방(Woori Bookstore)'



이것은 현재는 사라진, 한 책방에 대한 기록이다.      


슬픈 얘기는 아니다. 단지 이사를 앞두고 있었을 뿐. 모든 점포들처럼, 책방도 가끔 자리를 옮긴다. ‘우리책방’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비록 우리책방의 이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두 번째 우리책방은 머지않아 곧 문을 열 것이다.      



첫 번째 우리책방은 해방촌에 있었다. (두 번째 우리책방도 아마 해방촌에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난 그렇다고 들었다.) 해방촌은 굵직한 역사와 이름을 가진 독립서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스토리지북앤필름’을 비롯해 ‘고요서사’와 ‘별책부록’까지. 굽이굽이 이어진 가파른 언덕 사이에는 작은 책방들이 많고도 많다. 해방촌의 서점은 그들만의 특유한 분위기가 있다. 뭐랄까. 고뇌하는 삶을 사는 청춘들의 아지트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조금은 제멋에 취해 묘한 아우라를 풍긴다고 해야 할까. 해방촌의 서점들은 분명 그곳만의 감성이 있다.


우리책방도 자신만의 감성을 가진 서점이었다. 그곳의 감성은 해방촌의 다른 서점들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그곳에는 제멋에 취한 청춘들의 짙은 향이 아닌, 어우러진 삶이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교류하고, 사람과 강아지가 한껏 살을 맞대고 부비는. 그런 따스한 온기가 있었다.      



우리책방은 ‘강아지 책방’이다. 강아지와 책방. 어쩐지 생소한 조합이었다. 사실 책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물은 고양이다. 반려동물 중 높은 점유율을 자랑하는 강아지이지만, 책방과는 어쩐지 고양이가 어울린다. 정적인 문자의 성격이 고양이와 더 잘 맞기 때문일까. 고양이 서점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더 익숙해서일까. 책방에 동물이 하나 있다면, 왜인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고양이일 것만 같다. 그래서 우리책방이 궁금했다. 강아지 책방은 잘 상상이 잘 가지 않았기에, 그곳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되었다.     


문을 열기도 전에 가장 먼저 반겨준 건 책방 강아지 ‘우리’다. 책방의 실질적 주인이자 숨겨진 실세(?)라는 우리는 우렁찬 목소리로 책방지기님께 방문객의 존재를 알렸다. (목청 큰 주인장과 매니저의 흔한 소통법.txt) 우리의 움찔거리는 꼬리와 킁킁거리는 까만 코의 관심을 받으며 나는 비로소 강아지 책방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강아지 책방에서의 환대는 고양이 책방과는 달리 역동적이고 화끈했다.     


책방 강아지 '우리', 유순하고 듬직하고 엉뚱하고 한 귀여움 하는 친구다


책방의 내부는 모든 곳이 강아지였다. 공간의 모든 곳은 다양한 모습의 강아지들로 채워져 있었다. 꼼꼼하고 촘촘한 강아지의 모습들 사이로 책방의 특이한 책장이 눈에 띄었다. 모든 책을 표지가 보이도록 진열한 독특한 벽면. 우리책방만의 색깔이 담긴 진열대였다. 책방지기님은 책방을 처음 구상할 때부터 이 독특한 모습의 벽면을 계획하셨다고 한다. 책등만 보면 아무래도 어떤 책인지 알기가 힘들기 때문에, 책에 대한 정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책을 배치하고 싶었다고. 그래서 일부러 책 사이에 간격도 두며, 좀 여유롭고 널찍하게 책을 놓았다고 한다.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책 앞면이 보이도록 진열해 주시는 건 상당히 감사하다. 사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생각보다 표지에 공을 많이 들인다. 책등 부분도 열심히 제작하긴 하지만, 그 좁은 면적에는 아무래도 큰 재주를 부리긴 어렵다. 그래서 보통 앞뒤 표지에 어떻게든 독자를 구워삶기 위한(?) 방책들을 심어두는데, 책을 책장에 주르륵 꽂아버리면 그런 비책들은 순식간에 힘을 잃고 만다. 그래서 책 앞면의 가치를 알아봐 주시는 책방지기님을 만나면 늘 감사하다. 책을 만드는 사람의 노고를 알아주는 것만 같아서.

     

더군다나 우리책방의 벽에 진열된 책들은 ‘표지 볼 맛이 나는’ 책들이었다. 온통 강아지에 대한 책들이라 그런지, 표지에는 반드시 한 마리 혹은 그 이상의 강아지가 있었다. (강아지가 아니라면 고양이나 곰 등, 털 친구들 중 한 마리 이상이 반드시 모습을 드러냈다.) 책의 표지에 담겨 있는 복슬거리는 털 뭉치들의 모습을 보며, 책방지기님이 처음부터 책의 표지가 보이게 놓으려고 마음먹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털북실이 생명체가 커다랗게 담긴 책은 절대 책장에 한꺼번에 밀어 넣을 수 없다. 이렇게 귀여운 모습들을 책장이라는 좁은 공간 안에 가두는 건 분명 크나큰 죄악이다. 크나큰 죄악.     



귀엽고 재미난 모습의 강아지 책들 사이에는 강아지 관련 정보 서적들도 있었다. 강아지를 다룬 다양한 장르의 책들 중에서도 유독 ‘강아지를 기르는 방법’에 관련한 책들이 많았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방법, 물 먹이는 방법, 강아지 마음 사전, 유기견 입양’ 등. 소위 ‘강아지 육아’라고 불리는 책들이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강아지를 키우다 보면 강아지 관련 책을 모으는 건 어쩔 수 없는 숙명인가 보다. 책방지기님도 그러했다고 한다. 강아지 우리를 키우다 보니 강아지와 더불어 사는 방법을 공부해야 할 이유와 기회들이 하나둘씩 생겨났고, 그때마다 강아지의 건강과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다 보니, 자연스레 책방에도 강아지 육아 관련 책을 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 들어서는 수줍음이 많고, 낯을 가리는 우리가 책방에서 지내는 시간이 혹여 불편할까 싶어 강아지 마음 관련 공부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책방에는 강아지 심리에 관련된 책들도 꽤 있었다.      


우리를 향한 책방지기님의 마음은 굳이 책이 아니라도 알 수 있었다. 책방 이름을 강아지 이름으로 지을 만큼 선명한 책방지기님의 마음은 공간 이곳저곳에 물들어 있었다. 책방에는 강아지 관련 소품들이 많았는데, 그 사이사이에는 늘 ‘우리’가 있었다. 엽서와 스티커, 노트, 펜, 포스트잇, 인센스 받침대, 소주잔 등. 강아지를 바탕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갖가지 아기자기한 물건들 틈에서 우리는 여러 모습으로 자신을 뽐냈다. 사진과 키링, 엽서와 볼펜, 책갈피 등 우리는 책방 곳곳에서 존재감을 보였다. 심지어 판매용 물품들도 아니었다. 엽서와 볼펜을 제외한 모든 ‘우리’를 담은 물건들은 그저 우리와 함께 한 시간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또 보이고 싶은 책방지기님의 사심이 담긴 소품들이었다. 그것들을 구경하며 나는 책방 이름이 왜 ‘우리책방’인지를 실감했다. 책방지기님께서 왜 우리가 이곳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거듭 말씀하셨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쯤에서 우리책방 굿즈 몇 개를 소개하고 싶다. 상품 홍보는 아니다. 그저 하고 싶은 말들이 있어서다. 우리책방 굿즈로는 강아지 우리의 그림이 담긴 책갈피와 볼펜이 있었다. 책방지기님은 굿즈에 담긴 그림을 직접 그리셨다고 한다. 책방지기님의 손을 통해 재탄생한 우리는 무척이나 해맑고 상냥했다. 살아있는 동물을 정교하게 그릴 수는 있어도 생동감 있게 그리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책방지기님의 그림 속 우리는 표정마저 생생했다. 다년간 우리와 함께한 관찰력과 애정이 더해져서인지, 책방지기님의 그림 속 우리는 따뜻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다음은 우리 일러스트 엽서. 일러스트 작가님께서 그린 우리 엽서다. 사실 처음에는 엽서에 담긴 강아지가 우리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저 우리를 닮은 시바견이 담긴 엽서라고 생각하며 지나쳤다. 우리가 시바견이라서 책방에는 이런저런 시바견 굿즈들이 많았고, 난 우리 엽서들도 그런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책방지기님께서 ‘우리를 모델로 한 엽서’라고 콕 집어 말씀해 주지 않으셨더라면, 아마 난 지금까지도 엽서에 담긴 강아지가 우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사연은 이렇다. 우리 엽서를 만든 일러스트 작가님은 강아지로 작품 활동을 하는 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다양한 강아지들을 그렸음에도 여태 시바견을 그린 적은 없었고, 책방지기님은 작가님께 ‘그렇다면 혹시 이번에는 시바견을 그려 보실 생각이 없냐고.’ 은근하게 운을 띄웠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일러스트 작가님은 ‘거참 좋은 생각’이라며 우리 사진을 토대로 그림을 그리셨고, 덕분에 시바견의 여러 매력을 담은 엽서들이 탄생했다고 한다. (일러스트 작가님께서 정말 ‘거참 좋은 생각이다’라는 구수한 발언을 정말로 하셨는지 알 길은 없다. 슬쩍 덧붙인 각색 포인트이니, 그 정도는 눈감아 주도록 하자.)      



책방을 둘러보고 나는 마지막으로 펜을 잡았다. 책방지기님께서 알려 주신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함이었다. 이름하여 ‘강아지의 이름과 이름에 담긴 뜻을 알려주세요’ 이벤트. 노랗고 파란 메모지에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과 이름에 담긴 의미를 적는 이벤트였다. 책방지기님은 작성된 메모들을 모아 다음 책방의 한 벽면을 장식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난 기꺼이 펜을 들었다. 그리고 슥슥 적어 나갔다. 마지막에는 어설픈 손기술로 내 강아지 얼굴도 그려 넣었다. 메모들이 다음 책방 한구석에 잘 자리 잡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참고로 우리책방 굿즈 볼펜 필기감이 엄청 좋고 부드러웠다. 내용과 별 상관없는 말이긴 하지만, 당시 써 보고 너무 놀랐던 기억이 있어서 꼭 적고 싶었다.)     


이후에는 늘 하던 루틴. 책방에 입고된 내 책에 명함을 살짝 꼽아두고, 책들을 살폈다. 이 책방에서는 또 어떤 책을 들고 가면 좋을까 고민하며 이쪽저쪽을 살피던 찰나. 책방지기님께서 추천해 주신 책이 눈에 들어왔다. 강아지 책방이 생소하다는 말에 보여주셨던 책. 또 다른 강아지 책방 ‘낫저스트북스’에서 발간한 에세이집이었다. 책방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집은 또 굉장히 흥미롭기 때문에, 길게 고민하지 않고(=쬐끔만 고민하고) 그 책으로 결정했다.      


내가 내민 엽서와 책을 계산한 책방지기님은, 우리의 모습이 담긴 책갈피와 엽서와 볼펜까지 한가득 챙겨주셨다. 마지막에 봉투를 쥐여 주시며 책방지기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음 서점이 열리면 그때 또 방문해 주세요!



다음 책방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는 말. 난 당연히 승낙했다. 책방지기님께서 설명해 주신 우리책방의 2막은 근사했다. 다음 책방에서는 여러 가지가 추가되고 개선되며 멋있어질 예정이었다. 책방지기님의 설명을 들으며 난 다시 만날 우리책방이 기대되었다. 7월이나 8월쯤 해방촌에 다시 오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사이 우리책방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고, 한두달 안에 마무리되어야 했던 이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자세한 이야기까지는 알지 못한다. 무언가 갑작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정도만 짐작할 뿐.)     


현재 우리책방은 방학을 나고 있다. (방학은 은유적인 단어가 아닌 책방지기님께서 직접 적으신 표현이다.) 하지만 지금의 방학은 단지 짧은 과도기일 뿐이다. 우리책방은 곧 선명한 선과 색으로 자신을 그려낼 것이다. 우리책방의 2막. 그곳은 또 어떤 모습일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우리책방 Woori Bookstore

Instagram @wooribook_official

※ 위 주소는 예전 우리책방 주소입니다. 책방은 현재 이전 중입니다. 이 점 참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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