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소암 복막전이 개복수술 & 유방암 부분절제 및 양쪽 림프절 수술
수술실에서 마취주사약이 다리를 통해 들어간 그 이후에는 기억이 없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회복실로 옮겨져 있었다. 일어나세요 라는 목소리와 함께 회복실에 있는 분께서 나를 깨우고 있었다.
체온이 너무 낮아졌는지 정말 추웠으며 체온을 올리기 위해 내 몸을 어떤 비닐 같은 것으로 감싸고 뜨거운 바람을 주입했다.
정신이 희미했지만 들리는 소리로 체온이 34도라고 올려야 된다고 하면서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이후 찾아보니 이것을 Warming Blanket, Bair Hugger라고 한다고 한다. 공기 담요로 따뜻한 공기를 호스를 통해 담요 속으로 불어넣어 환자의 몸위로 부드럽게 따듯한 공기가 순환하게 하며 고르게 퍼지게 해 체온을 서서히 올려주는 것이다.
팔은 패드로 불룩하게 덧대어 고정되어 있었고 몸 자체는 움직일 수 없었지만 눈은 떠지고 말은 약간 할 수 있는 상태였다. 배는 묵직했으며 복대가 둘러져 있었다.
배를 정말 가르고 다시 꿰맨 걸까 수술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궁금했다. 진통제 때문에 아직은 통증이 많이 없는 건가 생각했지만 그때는 의식이 없고 움직이지 않았기에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의식은 있지만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이런 것일까 잠깐 생각했다. 마취가 덜 깨서 어지러움이 좀 더 심했다.
수술 이틀째 되던 날 소독 시 수술상처를 처음 보았는데 배를 30cm를 가르고 그렇게 많은 수십 개의 스테이플러가 박혀있는 줄은 몰랐었다. 그러니 그렇게 아팠던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너무 징그러웠고 이걸 다 뽑을 때는 더 아픈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양쪽 겨드랑이 쪽과 유방 아래쪽, 위쪽은 절개부위가 크지 않았다. 전절제를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사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회복실에서 병실로 옮겨지고 베드를 병실 베드로 옮길 때 처음 통증을 느꼈다. 배를 약간만 움직이더라도 통증이 엄청났다. 주사대에는 진통제가 걸려있었고 소변줄도 달고 있었다.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은 6분에 한 번씩 버튼을 눌러서 맞을 수 있다고 안내를 받았다. 계속 누른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참지 못하고 아플 때 눌러야 한다고 간호사가 사용방법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몸에는 배액관이 3개가 달려있었다. 관이 피부를 뚫고 연결이 되어있었는데 배 아래쪽에 양쪽으로 두 개, 그리고 겨드랑이 쪽에서 나온 거 한 개였다. 수술을 하면 조직이 손상되면서 피와 혈장 림프액 같은 체액들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며 이것들이 안에 고이면 혈종(피 고임)이나 장액종(맑은 체액 고임)이 생길 수 있다. 배액관은 이런 것들을 미리 밖으로 빼내는 역할을 한다.
배액량과 색깔을 보면 출혈이 계속되는지 회복이 정상적인지 판단할 수 있으며 하루 배액량이 일정 수준 이하로 줄고 색이 맑아지며 염증·출혈 소견이 없을 때 제거한다.
안에 피나 액체가 차면 압력이 올라가고 통증, 당김, 불편감이 심해질 수 있다. 배액관은 내부 압력을 줄여줘서 통증 완화와 상처 회복에 도움이 된다.
가슴과 겨드랑이 쪽 수술 부위는 아픈걸 못 느꼈다. 그래도 절개하고 꿰맨 건데 아무 느낌이 없는 게 맞는건가생각이 들었지만 겨드랑이 쪽 통증이 없었던 건 사실 수술 부위 쪽의 감각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얼얼했다고 느꼈던 부분이 감각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었다.
수술 후 거의 반년이 지나가는 지금도 감각이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는 그냥 이대로 살아야 되나 보다고 생각하고 있다. 배도 힘이 들어가지 않으며 아직까지 감각이 100% 돌아오진 않았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불편함은 없기에 그냥 이대로 지내도 괜찮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수술한 배 쪽의 통증은 참을 수 없이 끊임없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버튼만 눌렀던 기억만 난다.
진통제가 들어온다고 통증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약간의 생각이라는 걸 하게 해주는 용도라고 해야 하나
온몸이 통증에 집중이 돼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지금이 몇 시지? 정도를 떠올릴 수 있는 그 정도의 정신차림이 진통제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마약성 진통제는 수술날과 그다음 날에 거의 다 소진이 되었다. 그 부작용으로 너무 울렁거림과 메슥거림이 심해져 두려워서 진통제 버튼을 눌러야 되는 것을 조금 고민했었다.
사실 펜타닐이 들어온다고 통증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약간이라도 덜 아픈 느낌을 잠깐이라도 느낄 수 있어서 참지 못하고 눌렀던 것이다.
펜타닐 진통제는 72시간만 제공이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에는 몰랐기에 최대한 메슥거림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아껴서 눌렀는데 진통제를 제거한다고 하니 그냥 다 누를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에도 일반 진통제가 투여 가능했는데 이것도 계속 투여는 안되고 8시간 단위로 하루 3번만 처방이 가능했다. 이후 잠도 못 자고 너무 배가 땅기고 아파서 재처방을 받아 새벽에 진통제를 더 맞았었다.
수술이 끝난 후 첫 번째로 난소 자궁 제거 및 복막전이암제거 수술해 주신 부인과 교수님이 오셔서 경과를 말씀 주셨다. 배를 열어보니 암이 많이 없어져 있어서 제거할게 그렇게 많지 않았다고 했다. 다행히 대장 쪽에는 전이된 게 없었으며 복막 쪽도 많이 없어져서 눈에 보이는 것만 제거했다고 말씀 주셨다.
림프와 유방 쪽 수술해 주신 유방외과 교수님은 수술 당일 저녁쯤 오셨는데 암크기가 많이 줄어들어 제거 범위가 생각했던 거 보단 작았으며 오른쪽 겨드랑이 쪽은 림프를 많이 떼서 이제는 앞으로 팔을 많이 쓰면 안 될 거라고 말씀 주셨다. 수술부위는 소독은 별도 안 해도 돼서 나중에 실밥만 제거하면 된다고 했다. 이제는 양팔을 보호해야 하며 채혈 주사 혈압측정을 하지 못한다고도 말씀 주셨다.
수술 후 띠어낸 암조직결과 후 추가로 알게 된 사실은 암종이 두 개였다는 사실이다. 아래쪽은 난소암에서 전이된 것이며 위쪽 유방 부분절제한 조직은 전이된 조직이 아닌 별도 유방암이 되어서 결국 두 가지 암이 한꺼번에 나온 것이었다. 금방 또 생겨서 수술을 다시 하는 것보다는 한 번에 생기고 다 같이 수술한 게 그나마 나은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대체 몸 안에 이렇게 암이 여러 개가 자라난 이유가 단순하게 운이 없어서 말고 또 있는 걸까 생각을 했다.
수술 후 팔을 잘 못쓰고 배에 힘이 들어가지 못하면 얼마나 불편한 건지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숨을 쉴 때도 일어날 때도 말할 때도 걸을 때도 배에 통증이 있었다. 뭔가를 기대거나 의지하지 않으면 스스로 일어서거나 움직이는 건 힘들었고 한 번 몸을 일으켜니 누워있을 수 없어서 수술 후 입원동안에는 잘 때도 앉아서 잤다. 누워있으면 몸을 돌릴 수가 없고 양팔도 잘 움직이지 못해서 불편했으며 몸이 젖혀지면 숨을 잘 쉬어지지 않았지 때문이었다. 복대로 배를 계속 압박하고 있어서 더 그렇게 느낀 거 같기도 하다.
입원 기간 동안은 사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진통제를 맞고 잠깐 괜찮아졌을 때 10분씩 30분씩 길게는 1-2시간씩 잤었다. 너무 잠을 못 잔다고 하니 수면제를 처방 주었는데 그래도 많이 잘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화장실을 갈 때가 가장 문제였는데 처음 며칠 동안은 조무사의 도움을 받아 화장실에 갔으며 앉았다 서는 거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기행 가까운 동작들을 거의 30분 동안 여러 개를 하고 난 후에야 나올 수 있었다.
또한 전신마취 수술 후에는 폐운동을 해야 한다. 호흡이 얕아지고 폐의 아래쪽(폐저부)이 잘 펴지지 않으며 일부 폐포가 접힌 상태(무기폐)가 되기 쉽다. 그래서 산소 교환이 잘 안 된다. 무기폐란 폐포가 접혀서 공기가 들어가지 않는 상태이다.
폐운동은 접힌 폐포를 다시 펼쳐주는 역할을 한다. 깊은 호흡과 기침을 안 하면 가래가 폐 안에 고이고
세균이 증식하기 쉬워져 수술 후 폐렴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병원에서 준 공을 들어마시며 올리는 기구를 한 시간에 10번씩은 진행하라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일단 약간이라도 기침이 날 거 같은 상황이면 기침을 최대한 참았다. 목이 너무 간지럽고 기침이 어쩔 수 없이 나와서 기침을 했는데 정말 배인지 폐인지 찢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기침을 크게 해서 배가 너무 아팠는데 전공의가 정말로 안에 꿰매어놓은 복막이 정말로 찢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기침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엑스레이촬영 처방이 나서 찍으러 다녀왔었다. 정말 찢어졌는지 보려고 한 것이었다. 다행히 이상은 없다고 나왔다.
걷기 운동은 수술 다음 날 오전부터 시작되었다. 소변줄을 떼고 바로 걷기 운동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복부수술과 전신마취를 하게 되면 장이 일시적으로 멈춘다. 걷기 운동을 하면 장이 자극되어 연동운동이 살아나고 가스배출 배변회복이 빨라진다. 단순 운동이 아니라 회복을 앞당기고 합병증을 막는 치료의 일부이기 때문에 수술 후 걷기는 중요하다.
수술 다음 날 오전 조무사님의 도움을 받고 일어섰는데 땀이 너무 많이 나고 어지러워서 도저히 한 발도 움직이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았다. 당장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 주셔서 오후가 돼서야 병실 앞을 잠깐 왔다 갔다 했다. 미음이 나왔지만 밥을 아직 먹지 못했기 때문에 영양수액과 진통제를 맞고 있어 주사폴대를 잡고 밀면서 운동을 했다. 배는 아파서 등도 다 펼 수가 없었고 양팔도 불편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목과 어깨가 더욱더 긴장이 되며 굳어왔다.
입원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혹시라도 심심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숨 쉬고 움직이는데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며 수술 후 3일 정도는 정신이 제대로 들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그래서 씻지 못하는 것은 사실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퇴원 후에도 3주는 샤워를 못했다)
수술 후 5일째 되던 날 피검사를 또 했는데 빈혈수치가 너무 정상보다 낮게 나와서 이후에는 빈혈약 처방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감기기운이 있어서 코푸시럽도 처방받아먹었다. 더운 여름이었지만 에어컨이 계속 나왔기 때문에 춥기도 했지만 얼굴에 열감이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증상은 그 와중에도 계속되었다 얼굴이 너무 뜨거워서 손선풍기를 쐬다가 또다시 추워지고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했다.
호르몬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하던데 사실 수술 후 항호르몬제 복용 후 더 심해지면서 이때는 그래도 나았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걷는 것은 수술 후 5일째 정도부터는 좀 수월했다. 병실 밖으로도 나가서 병원을 한 바퀴 돌기도 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해서 옆건물로 가보기도 했다.
제대로 걷진 못하지만 그래도 두 발로 직립보행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었다.
통증은 계속되고 진통제도 계속 맞고 있었으며 배액관에 나오는 체액양도 줄지 않아 배액관을 달고 퇴원해야 될 것 같다는 말에 이걸 달고 가면 정말 불편할 것 같아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히 퇴원 당일에 배액관을 띠고 퇴원할 수 있었다.
몸을 굽히지도 못하고 팔도 못쓰고 눕지도 못하는데 퇴원을 하면 과연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상태로만 보면 한 달은 더 입원하고도 싶었지만 그렇게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회복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만 입원을 하게 해 준다.
수술 부위 소독도 보호자가 해야 하고 배에 박힌 스템플러도 집 근처 정형외과에서 뽑아야 했다.
그리고 추가 항암도 곧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금 이 상태에 항암까지 하면 몸이 더 안 좋아지는 것은 아닐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결국 시간이 지나고 표준치료는 다 끝나긴 했다.
25년 하반기는 이렇게 수술과 항암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휴직하던 회사도 퇴사를 했다.
이렇게 어이없이 갑자기 회사생활을 끝내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다음 암이 최대한 늦게 재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항암을 쉬는 기간을 최대로 늘려보는 것이다.
수술 후 CT상에서는 큰 덩어리의 암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씀 주셨다. 외래진료 때 교수님께서 말씀 주신 난소암 복막전이 재발률은 80%다. 대부분 재발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도 2년 안에 재발을 안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너무 빨리 재발하게 되면 치료가 더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암이 없어지고 수술로 띠어낸 부분에 생기는 경우가 가장 크고 다른 장기에 자라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암투병자들의 기록들을 보면 재발, 재재발 이후 일부 환자들은 항암약이 효과를 못 보는 경우도 많고 결국 비싼 신약을 임상으로 쓰기도 한다.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못 보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재발 시점을 최대한 늦춰보자고 생각했다. 이제는 일상생활에서 발암음식이나 발암을 유발하는 환경을 만들지 않는데 더욱 노력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