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책을 읽으며
거기에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숨겨져있는 양
한 사람에게 묘 하나만 허용되는 것이 서러워질 때면
하릴없이 책을 펴고 앉았다
먼저 보낸 마음은 아무리 찾아도 까만 글자엔 없고
흰 종이는 더듬을수록 깊은 적막
네 눈 걸음에 보폭을 맞추려 안간힘을 써도
책은 같이 읽을 수가 없었다
이 페이지에서 저 페이지로
저 페이지에서 이 페이지로
함부로 주은 마음이 황량한 파도로 쓸려 다니고
모래사장을 뒹굴어도 아무 글자도 묻질 않았어
묘지 산책을 즐겨하는 이는 귀신을 믿는다네
죽은 자들의 입술을 더듬으며
짝사랑에 익숙한 사람처럼
그 많은 말 속에서 작은 여지라도 주워보려고 애쓰는 일은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구차한 일
고개가 어깨뼈 끝을 달랑 건드리도록 처들어도
시들어가는 글자들은 무섭게 고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