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초롱 May 13. 2021

네 눈 걸음에 보폭을 맞추려 안간힘을 써도

시_책을 읽으며


거기에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숨겨져있는 양

한 사람에게 묘 하나만 허용되는 것이 서러워질 때면

하릴없이 책을 펴고 앉았다


먼저 보낸 마음은 아무리 찾아도 까만 글자엔 없고

흰 종이는 더듬을수록 깊은 적막


네 눈 걸음에 보폭을 맞추려 안간힘을 써도

책은 같이 읽을 수가 없었다


이 페이지에서 저 페이지로

저 페이지에서 이 페이지로

함부로 주은 마음이 황량한 파도로 쓸려 다니고

모래사장을 뒹굴어도 아무 글자도 묻질 않았어


묘지 산책을 즐겨하는 이는 귀신을 믿는다네


죽은 자들의 입술을 더듬으며

짝사랑에 익숙한 사람처럼

그 많은 말 속에서 작은 여지라도 주워보려고 애쓰는 일은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구차한 일


고개가 어깨뼈 끝을 달랑 건드리도록 처들어도

시들어가는 글자들은 무섭게 고요해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애매한 가난의 섬에서 온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