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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Apr 14. 2021

시골살이가 레벨업 되었다.

   할머니와 이모를 따라 고사리를 꺾으러 갔다. 이모가 말하길 고사리 꺾는 장소는 절대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물어봐서도 안된다고 한다. 그런 장소에 나를 데려가는  보니 나를 많이 좋아하시는  틀림없다.

 앞집에는 50 이모와, 팔순을 코앞에  할머니  분이 살고 계신다. 바리스타인 이모 덕분에  세계의 다양한 원두로 내린 커피를 마실  있고, 직접 텃밭을 가꿔 이것저것 만들어 주신 할머니 반찬으로 우리 집 식탁은 계절을 맛본다. 어제는 이모가 직접 딸기잼과 금귤청을 주셨다. 오늘은 할머니가 두릅과 부추로 만든 건강 밥상을 차려주셨다. 정안이 아빠 먹으라고  따로 챙겨 주신다. 초장은 있냐, 쌈장은 있냐 물어보시면서 직접 만든 각종 양념들도 같이 챙겨주신다. 맛있는  만들면 “집에 있어?”하고 전화가 와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이제는 고사리를 꺾으러 함께 간다. 시골 주택 살이의 장점 중에 최고인 손 크고, 정 많은 할머니가 우리 집 앞에 살고 계신다.


고사리 스팟을 향해 가는 길이 정말 예쁘다.

 

고사리를 꺾으러 가는  할머니와 이모가 내게 베풀어  호의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다. 그동안 맛있게 먹은 수십 잔의 커피와 수십 그릇의 반찬만큼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고사리 뜯기가 나에게 흥미가 있을 리가. 그러나 예상외로 처음 해 본 고사리 꺾기는 상상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늘 먹던 고사리나물처럼 갈색일  알았는데 예상외로 연두색이었다. 산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 작은 크기라고 했다. 대신 산에서 나는 것보다 부드럽고 맛이 좋다고 했다. 고사리가 이렇게 생겼다니. 살면서 처음  것에 대한 기쁨과 함께 나는 정작 이런 것들을 모르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나는 단순노동을 좋아한다. 고사리를 찾아 꺾는 이런 단순한 행위가 이렇게 재밌을지 몰랐다. 허리의 통증이 있었지만 점점 채워지는 봉투를 보면 그깟 통증은 무시할만했다. 더군다나 정안이 하원 차량이 오기 직전까지 집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신데렐라 마냥 시계를 계속 확인했다. 제한된 시간이 있으니  수가 없었다.


고사리 스팟


  번째엔 조금 빨리 출발했다. 한 번 따라가고 말려고 했는데 재미있기도 했고, 지금 시기가 아니면 할 수 없으니 좀 더 많이 꺾고 싶어 졌다. 이번엔 그래도   해봤다고 고사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재밌었다. 시골살이 레벨이 +1 되었습니다. 하고  옆에 떠있는 것만 같았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고사리 끊으러 다녀왔다고 자랑도 하고 나니 정말  시골사람  됐구나 싶었다.

 매일 똑같은 옷에 질끈 묶은 머리, 화장기 없는 얼굴에   없는 나는 사실은 훨씬 더 전에 시골살이에 적응은  했다. 어딜 가든  사는 나다. 거기다 이제는 먹을 것을 채취하러 닌다니 내가 생각해도 대단하다.  친한 언니는 앞집 할머니에게 반찬 얻어먹고, 밥 얻어먹고 하는 걸 보며 기가 차다며 웃었다.




  어떤 꽃다발도 이보다 뿌듯할 수는 없을 거다. 나는 이제 그 어디에 살더라도 고사리를 보며 봄을 생각할 것이다. 봄에 잠깐 피는 벚꽃도 유채꽃도 아닌 고사리를 보며 봄을 느끼는 30대가 몇이나 있을까. 할머니가  잘 말려서 삶아 줄 고사리는 우리 엄마와 시엄마에게 보내 드릴 예정이다. 나는 있어봤자 먹을 줄도 모르고,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다. 아직까지 레벨업이 더 필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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