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50세가 넘는 글벗이 있다. 일명 ‘언니’라고 불리는 그녀들은 기본 띠동갑부터 시작한다. 그녀들을 만나러 홍대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영종역으로 갔다. 띠동갑 글벗이 영종도로 이사 소식을 전하며 우리를 초대했고, 지난 4월 겸사겸사 오랜만에 모임이 성사되었다.
우리는 10년 전 글 공동체 ‘삼다’에서 50일을 함께하고, 50편의 글로 만났다. 글로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찐한 사이가 되었다. 언니들도 처음부터 50대는 아니었다. 서른넷에 처음 만났던 언니들은 사십 대였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그때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애틋한 사이다.
영종도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4명의 여자가 두런두런 앉아 수다를 시작했다. 언니들은 각자 돋보기를 꺼내 자랑한다.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끼는 나와 달리 시력이 좋은 언니들은 이제 핸드폰을 보려면 멀리서 본다며 돋보기를 사게 된 사연을 말했다. 낯선 풍경이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 곧 나에게도 닥칠.
언니들에게 마흔이 되어 고민이라며 슬며시 말을 꺼냈다. 이미 40대를 지나온 그녀들은 입을 열었다. ‘애껴야해~~’라고. 응? 뭘? 돈을 아끼라는 말인가? 아니다. 시간을 아끼라는 것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니 놀 시간이 부족하니까 노는 시간부터 미리 체크하고 지금의 시간을 누리라고.
여기서 '노는 시간을 먼저 체크'하는 것은 재미있게 현재를 살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내 맘처럼 일이 착착 되지도 않고, 하고 싶은 일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열정만 가지고는 무엇도 할 수 없다. 지금이 가장 젊을 때라며 현재를 즐기라는 조언은 잊고 있던 삶의 중요한 진리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계속되는 회사의 거절을 듣다가 지친 시점에서 나이가 많으면 일을 못하나라는 고민에 빠졌고, 좌절했다. 그러나 나이의 문제가 아닌 현재를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였다. 현재를 즐기지 못했다.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가는 느낌을 받아 조급하고, 불안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른다.
나이만큼 시간이 흘러간다는 말이 있다. 20대에는 시속 20킬로, 30대에는 30킬로. 40대에는 40킬로로 시간이 달리는 느낌을 받아 젊은 시절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느낀다고 한다. 나 또한 경험한 일이고, 하고 있는 중이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갈까?
슈테판 클라인은 <시간의 놀라운 발견>에서 나이가 들수록 시간 흐림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은 ‘기억할 만한 사건이 적으면 적을수록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는 것’이라고 했다.
어른이 되면 웬만하면 다 해본 것, 가본 곳, 경험한 일이 많으니 뇌는 새로 기억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다고 한다. 십 대까지는 촘촘하던 기억이 어른이 된 후에는 느슨해지며 상대적으로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게 된다.
여전히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살아가고, 내 앞에 닥친 문제가 세상이 멸망하는 강도의 어려움이다. 그러나 현재를 즐기며 기억에 남는 하루를 만들어 나가는 마흔을 맞이하고 싶다. 내가 오십이 되어 마흔이 된 사람들에게 인생을 즐기라고 말할 수 있도록. 인생을 내 나름대로 즐기는 40대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