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0X2A 20화

복구 데이터: 소식

0X2A

by 귀남

보낸 사람: 김준섭 <js.kim@kasa.go.kr>

받는 사람: 최상윤 <sy.choi@cozmo.corp>

보낸 날짜: 20XX년 10월 02일 10:31

제 목: RE: 내용 전달받았어. 나도 합류했고.


미리 말해줄 수 없었던 점, 미안해. 이해해 주리라 믿어.


역시 너 답네. 이즈음 합류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던데.

이 차장이라는 사람의 역할이 컸을 거야. 키는 땅딸막한데 자기 권위를 쓰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이지. 나라도 그런 사람이 장정을 몰고 들어와서 비밀프로젝트에 합류하라고 말한다면 ‘아 뭔가 대단한 계획이 있구나.’라고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네 눈은 속일 수 없네. 네가 본 게 맞아. 나를 비롯해 이미 이 팀에서 오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사람들은 정보부 소속이든, 우주국 소속이든, 민간 연구자든 현실을 직시했어. 바로 내일 당장 세상에 알려져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야.


지금 우리가 준비하는 어떤 대비책도 궁극적인 해결 방법이 되지 못해. 대충 설명 들었겠지만, 천체의 규모가 너무 커. 충돌은 확정적이라고 보는 상황이야. 우리가 축조 중인 지하대피소에서의 생존율도 보장이 안 돼. 충돌 직후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고 해도 1년을 넘기지 못할 거야.


그 소행성은 이미 50년 전부터 관측된 상태로 추적되고 있었어. 그러다가 1년 전에 갑자기 궤도이심률이 바뀌면서 지구 충돌 궤도로 들어오게 된 거야. 아직 원인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지만, 비슷한 규모의 다른 소행성과 충돌하면서 궤도가 바뀐 게 아닌가 하고 있어.


우리가 미리 이 비극을 알게 된 게,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아. 이미 끝을 바라보는 처지에서 사람들의 어떤 추태도 다 하찮고 가엾게 보여. 네가 꿰뚫어 본 것처럼 이미 내부에서 균열이 발생하고 있어. 아마 조만간 모든 게 밝혀지겠지. 우리의 진짜 문제는 종말이 아니라 이 비밀이 밝혀졌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되지 않을까?


조만간 너희 회사로 우주국 직원들과 방문할 거야. 그때 만나서 더 자세히 이야기 나누도록 하자.



-----Original Message-----

From: 최상윤 <sy.choi@cozmo.corp>

Sent: 20XX년 10월 01일 18:24

To: 김준섭 <js.kim@kasa.go.kr>

Subject: 내용 전달받았어. 나도 합류했고.


처음에 선배에게 연락이 왔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오전에 통화에서 감정적으로 굴었던 거 미안해. 그땐 나도 너무 경황이 없었어. 사과할게. 선배 잘못도 아닌데.


이 차장이라는 사람이 다녀갔어. 우주국에서 사용한다는 AI도 정상적으로 학습을 마쳤고. 나랑 내 팀원 한 명에게도 기밀 유지 서약서를 받아 갔어. 아예 정보국 직원들이 회사에 상주하는 것도 모자라서 경호를 빌미로 집까지 따라다니겠다더라. 긴급상황이라는 핑계로 대통령령을 들먹이고는 우리 의사는 조금도 신경 안 쓰던데?


처음엔 사회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지만 내 눈엔… 그 사람들 다 포기한 상태였어. 검은 정장 입은 사람들 십수 명이 밀고 들어오면서 자기들 멋대로 이것저것 들추고, 확인하고, 서류를 내밀고 서명을 요구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감정 없는 로봇처럼 느껴졌는데 그것도 아니더라고. 이 사람들 그냥 겁에 질린 거야. 눈에 초점이 없었어. 그냥 껍데기만 남아서 명령에 따를 뿐인 거지. 우리를 감시하겠다고 설치한 카메라는 녹화 버튼을 눌러놓고 렌즈의 뚜껑도 안 열어놨더라고.


그 정도로 심각한 것 맞지?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야? 선배랑 동아리방에서 장난처럼 이야기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는 거, 아직도 믿기질 않아. 대체 그 정도 되는 소행성이 여태껏 발견되지 않았던 이유는 뭐야. 그게 가능하긴 한 거야?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정말 조금의 가능성도 없는 거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