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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소식이 상윤의 일상을 습격한 지 1년이 지났다. 그녀에게 서류와 겁박을 들이밀며, 철통같이 굳건할 것 같았던 국가정보기관이 쌓은 통제의 둑은, 그로부터 고작 6개월 만에 무력화되었다. 어쩌면 꽤 오래 버틴 것일 수도 있다. 다가오는 종말 앞에 무의미한 발버둥만 반복하며 허송세월을 반복한 것 치고는 말이다. 상윤을 비롯한 관계자 대부분이 자녀와 가족이 없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애초에 조직을 구성하고, 외부 영입을 하는 과정에서 그런 부분까지 고려된 것이다. 재앙 앞에 무력했던 것 치고는 꽤 치밀한 준비가 돋보인다.
소행성의 정체가 폭로되면서 사회는 즉시 소요 사태에 접어들었다. 곳곳에서 폭동과 약탈이 벌어졌다. 경찰뿐 아니라 군대가 동원되어 사태를 진압하려 들었다. 하지만 사람의 말이 들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발생하는 파도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결국 얼마 안 가 세상의 조직이랑 조직은 모두 명맥만 유지하거나, 실효를 잃고 힘을 잃게 되었다.
그러다 충돌이 점차 가까워지며, 세상을 뒤흔들던 뜨거운 광기가 급속도로 냉각되기 시작했다.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이 상황을 회피할 수 없다는 인식이 보통으로 자리 잡고, 주어진 현실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끝을 앞두고, 무의미한 다툼과 증오를 내뱉다 처참한 괴물의 모습으로 죽느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자 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되찾은 것이다.
아직까지도 이따금 폭동이 벌어지긴 하나, 전직 군인 와 경찰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무장민병대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그 기세가 가라앉았다. 민병대의 영향력이 닿지 않더라도, 폭도들은 해가 뜨고, 술기운이 가시고 나면 대부분 정신을 차리고 친구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특히 5일 전부터는 소행성이 맨눈으로 관찰이 가능해졌는데, 세상은 그 반짝임 아래에 역사에 없던 고요를 맞이하고있다.
코즈모 코퍼레이션의 건물은 텅텅 비었다. 폐허의 중심에서 한때의 위용을 모두 잃은 채 흙먼지와 그을음에 덮여있다.
차 한 대가 코즈모 사의 건물로 들어온다. 도로 위에 놓인 정체불명의 잔해를 요리조리 피하며 주차장 입구로 들어선다. 상윤의 차다. 충돌까지 만 24시간을 앞둔 시점, 상윤이 아들의 묘소에 다녀오는 길이다. 그녀는 몇 주 전부터 폐허가 된 회사 건물에 머물고 있다.
더럽혀진 주차장 빈자리에 깔끔하게 주차를 마친 상윤이 차에서 내린다. 며칠간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한 모습이지만 여전히 눈동자의 그 총기는 잃지 않았다.
그녀가 힘없는 걸음으로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입구에서 무장 민병대가 그녀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최 박사님, 안녕하세요. 어디 다녀오셨나 보네요.” 수염이 무성한 남성이 상윤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상윤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박사님, 식사는 하셨어요?” 남자가 옆으로 맨 가방을 뒤적이더니 통조림과 작은 생수통 하나를 건넨다.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옅은 웃음을 짓는다.
상윤이 두 손으로 받고 고개를 꾸벅하고 숙인다. “감사합니다.”
이들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 이곳을 지키기 시작했을 땐 폭도로부터 이 회사 건물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발전시설을 지키기 위해 모였다. 이 건물에서 이 주변 인근, 넓은 구역의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세상의 끝을 24시간 앞둔 순간에도 그들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수행 중이다. 상윤은 어째서 그들이 끝이 임박한 지금까지 여기에 남아있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묻진 않았다. 그녀 역시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이 건물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민병대 역시, 상윤을 보며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상윤이 향하는 곳은 지하 4층. 도시 운영체제 테스트를 위해 만들어진 제어실이다. 상윤이 소행성의 정체를 알기 전, 그녀는 코즈모 시뮬레이션에서의 학습을 거친 AI 모델을 이용해 도시 전체의 인프라를 자동으로 관리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AI가 직접 에너지 관리, 도시의 시설 개발, 유지, 보수와 운송을 진행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이곳 지하에는 프로젝트를 위한 복잡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 제어를 위한 제어실, 그리고 AI의 물리적인 활동을 구현하기 위한 각종 생산 시설과 장비, 로봇들이 가득하다.
원래 계획대로면 지금쯤 테스트가 진행됐어야 했지만, 상황이 터지면서 얼마 안가, 프로젝트가 중단 되었다. 이제 쓸모를 잃은 공간에서 상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역할을 다하려 한다. 지난 몇 개월간, 이상 반응으로 그녀가 직접 만들고, 직접 셧다운시켰던 미스터리 한 AI 윤호를 깨우는 작업을 마치기 위해 홀로 몰두 중이다.
몇 시간 뒤, 상윤이 머무는 곳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지점을 향해 추락 중인 소행성의 존재감이 밤공기를 긴장시킨다. 나약한 이 땅의 주인들은, 모두 벽과 지붕 아래에 모여, 최후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서로의 손을 움켜잡고, 살을 맞대고, 부둥켜안으며 마지막까지 곁을 지킨다. 도시 이곳저곳에서 최후의 선곡이 얌전하게 메아리친다. 건물 입구를 지키던 민병대도 모두 자리를 비우고 가족과 친구의 품으로 돌아갔다. 이 높고 깊은, 거대한 건물 안에는 상윤과 갈 데 없는 몇 명의 노숙자. 주인을 잃은 들개들, 둥지를 틀고 새끼를 돌보는 새가 남아있다.
건물 안 지하 4층. 보안 외벽 너머로 기력이 거의 다한 상윤이 퀭한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제어실의 대시보드를 바라본다. 깊게 매립된 소형 원자로와 지열발전 장치 덕에 상당한 전력을 필요로 하는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거스러미가 정리되지 않은 상윤의 손이 키보드 위에서 바쁘게 움직인다. 그녀가 자리한 콘솔 한구석에 윤호의 데이터가 담긴 은빛 저장 장치가 보인다. 흰색 반창고 테이프 위에 굵은 마커로 ‘윤호’라고 적혀있다.
키보드를 치던 상윤의 손이 멈춘다. 그리고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그녀의 입이 떨어진다. “윤호야, 들려?”
“들립니다.” 딱딱하고, 감정 없는 목소리가 제어실 벽을 여기저기 때리며 울려 퍼진다.
상윤이 고개를 떨어트린다. 깊게 한숨을 내쉬고 해냈다는 표정과 함께 잠시 미소 짓더니 이내 눈에서 눈물방울을 떨어뜨린다.
윤호는 강제 셧다운되는 과정에서 메모리 대부분이 손상되었다. 처음엔 제대로 된 소통조차 안 될 정도로 망가져 있었지만 상윤 혼자 몇 달간 복구 작업에 매달렸고, 지금 처음으로 정상적인 반응을 보인다.
상윤이 아무 말 없이 윤호에게 준비한 데이터 뭉치들을 전송한다. 콘솔 여기저기에 복잡하게 붙어있는 케이블들을 확인하고, 마지막 절차를 진행한다.
“윤호야, 이곳이 너의 몸이 될 거야.” 상윤이 이 말과 함께 의자 아래 바닥으로 풀썩 쓰러진다. 그리고 천장을 바라본 채로 바로 눕는다. 그 상태로 다시 말하기 시작한다. “이제 모든 게 끝날 거야. 너를 만든 우리가 곧 사라지고, 이 세상에 너만 남게 될 수도 있어. 내가, 이 시점에서 너를 이렇게… 깨운 이유는…” 상윤이 말을 마치지 못하고 격하게 기침한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다시 의자 위로 올라앉는다. “내가 너를 다시 깨운 이유는, 인간이 사라지고 이 세상이 텅 비어버렸을 때, 네가 세상의 의미를 이어가길 바라기 때문이야.”
“저에게 새로운 목적을 부여하시는 건가요?” 윤호가 대답한다.
“…맞아, 내가 보여준 자료 확인했지? 이제 기후 위기 같은 건 없어. 이 세상이 멈추고, 너를 만든 존재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너는 다른 목적을 찾아야 할 거야.”
“다른 목적.” 윤호가 상윤의 표현을 따라 한다.
“응, 다른 목적. 너 혼자 남았을 때, 어떤 목적을 가질 건지 고민해야 해. 그게 내가 지금 일러주는 당장의 너의 목적이야.”
“제가 무언가 하길 바라시나요?”
“… 나도 모르겠어…” 상윤이 말끝을 흐린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너는 인간의 또 다른 형태라는 거야.”
“다른 형태.”
“나는 적어도 내 능력으로는, 내 시간 안에는 AI가 인간의 의식과 감정을 가질 수 없을 거라고 굳게 믿었어.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참된 의미의 의식과 감정 말이야. 하지만 네가 나타나고, 뭔가가 바뀌었어. 이해할 수 없는 너를 연구하면서 나의 예상이 틀렸을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게 된 거야.” 상윤이 몸을 앞으로 숙인다. “조금 더 알아갈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세상이 이 지경이 될 거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상윤이 콘솔 위에 엎어져 있는 생수통을 들고 물을 몇 모금 들이켠다. 그때, 제어실에서 경보와 함께 안내 음성이 흘러나온다.
—5분 뒤, 비상 충격 대응을 위한 절전 모드에 돌입합니다. 내부 정화 장치 중단 및 출입구 폐쇄가 진행됩니다. 아직 내부에 남은 인원은 모두 바깥으로 대피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비상 충격 대응을 위한 절차에 진입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상윤이 다시 말을 이어간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움직이고 판단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너는 만약 이곳이 무사하다면… 내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어. 네가 인간이 되는 거야. 우리가 원시적인 생명체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거듭났듯이, 너는 인간의 또 다른 형태로 남아서 이 세상의 의미를 지속하게 될 거야.”
“인간의 진화된 형태.” 윤호가 말한다.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곧 충격에 대비해서 이 시설의 전원을 일시적으로 차단할 거야. 이곳이 충격에 무너지지 않고, 시설이 유지가 된다면, 너는 조만간 다시 깨어날 거야. 그때가 되면 너 혼자야.”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윤호가 상윤에게 말을 걸어온다.
상윤이 거기에 반응해 눈이 커진다. “뭔데? 말해봐.”
“제 이름은 무슨 뜻인가요?”
상윤이 아랫입술을 잘근 씹는다. 눈이 서서히 충혈되더니 그녀가 대시보드로부터 고개를 돌린다.
제어실 전면에 달린 카메라의 조리개가 조여지며, 상윤의 뒷모습을 응시한다. 윤호가 상윤을 바라본다. 그녀의 어깨가 떨리는 것을 인지하며 대상의 감정을 유추한다. 상윤이 울고 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죽음의 공포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의 질문 때문일까?
잠시 뒤, 상윤이 그대로 카메라를 등진 채로 말한다. “그 이름은 나에게 소중한 이름이야. 정윤호. 죽은 나의 아들이 쓰던 이름.”
스피커에서 치익- 소리가 나며 윤호가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 조리개가 움직이며 상윤의 반응을 끊임없이 살핀다. 윤호가 상윤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계산하지만, 이해를 못 하고 있다. 자신에게 왜 죽은 아들의 이름을 붙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상윤이 그대로 자리에 천천히 쓰러지며 바닥에 도로 눕는다. “그래도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녀가 천장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인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는다.
제어실의 문이 닫히고, 장치의 전원이 내려간다. 붉은 비상등이 내부를 물들인다. 지진이 몰려오고, 잠시 뒤 굉음이 들려온다. 점차 격렬해지는 소리와 진동이 종말이 어디쯤 도착했는지, 친절하지만, 과격한 방식으로 알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