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명절에 만두를 빚어보고 싶다고 했다. 아들하고 같이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내가 그거 엄청 힘들다. 나는 어렸을 때 해봤다고 대답했다.
내가 결혼하고 나서 알게 된 점. 우리 집은 남들 하는 걸 대충 다 해보고 살았다는 것이다. 여름에 피서 가서 바가지 쓰고, 추석에 송편 빚고, 동지에 팥죽 끓여 먹고.. 내 어린 시절 기억에 빈틈이 없다. 남편은 그런 의미에서 나보고 부잣집 딸이라고 한다.
시부모님은 전형적인 소시민이신데, 가족여행 한번 다녀온 기억이 없다고 한다. 친척들 놀러 갈 때 끼어서 같이 놀러 간 게 전부였다고 한다.
남편이 초1 때, 시부모님은 사천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왔다. 남편이 신이 나서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더니 거기에 웬 낯선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거기가 주인집이었고, 남편의 집은 옆에 있는 쪽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단칸방이었다. 아버님, 어머님, 남편, 남동생 네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아야 했다. 남편은 그때 집이 망한 줄 알았다고 한다.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놀다가 "너희 집에 개미 키우나?" 하는 말에 상처를 받아 다시는 집에 친구를 데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두 번째 집은 방 2칸, 전셋집이었다. 그때에도 주인집 대문은 컸고, 쪽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집이었다. 남편은 그때 문이 크면 부자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남편이 5학년 때 드디어 자기 집이 생겼다. 14평짜리 구축아파트였다. 가동, 나동, 다동이라는 이름이 촌스럽다고 생각했고, 101동, 102동 이런 이름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작은 거실이 있는 집이었지만 남편은 조별모임 친구들이 아무리 집에 오고 싶어 해도 거절했다고 한다.
고2 때, 신축빌라로 이사했다. 지금 시부모님이 사시는 부산 집이다. 그 집으로 이사할 때 처음으로 자기 방과 침대가 생겼으므로 가장 좋은 집이었다.
시부모님은 갑자기 왜 부산으로 이사했을까. 시아버지는 집안의 막내아들이라서 부모님이 좋은 땅을 유산으로 남겼다고 한다. 그렇지만 20살 나이 많은 큰 형님이 동생 땅(밭)과 자기 땅(논)을 바꿔치기했다고 한다. 80년대에도 농사로 돈 버는 시기가 아니었고, 아이들 교육 문제 등으로 부산으로 오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