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쌓인 게 많아서 그래

심춘혜 씨는 눈칫밥에 배가 불렀다.

by 오싹
인명과 지명, 상호는 모두 가상의 이름입니다. 매 회차 첫 번째 이야기는 제가 여러 직장에서 겪은 실화이며, 두 번째 이야기는 빌런의 사연을 지어낸 픽션입니다.


나도 쌓인 게 많아서 그래

살면서 고막을 찢어발기는 듯한 소리를 들은 적이 몇 번 있다. 보통 그런 소리는 예상 못하는 순간 듣게 된다. 나 역시 몰랐다. 입사 후 두 달가량 되었을 때 전화 너머로 그 쨍한 소리를 듣게 될 줄은.

상대는 할머니셨다. 청소기 흡입을 해도 이물질이 그대로라고 불만스레 말씀하시는 할머니. 적절한 공감을 해드리며 더 들어보니 청소를 하고 나면 바닥에 이물질이 그대로라는 것이다. 배운 대로 몇 가지 확인할만한 원인이 있었다. 2개월 남짓 된 입장에서 아는 내용이 나오니 기왕이면 막힘없이 잘 응대해보고 싶었다.


"혹시 먼지통 흡입구 고무마개 부분이 떨어져 있지 않은가요?"

"브러시 헤드나 긴 봉 부분이 막혀있지 않은가요?" 등이다.


그전에 내가 이해한 내용이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아예 흡입이 안 되는 거라면 브러시 솔 부분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고, 흡입이 된 이물질을 다시 뱉어내는 거라면 위의 두 질문을 해봐야 했다. 할머니께 여쭸다.

아니, 분명히 아래의 문장을 여쭐 계획이었다.

“흡입한 이물질을 다시 뱉어낸다는 말씀 맞으신가요?”

정확히 ‘뱉어낸ㄷ…’까지 말했을 때 팽팽히 당겨진 굵은 고무줄이 끊어지는 듯한 따가운 소리가 내 귓바퀴를 후려쳤다.


“무슨 소리하는 거예요!”


이상하다. 복기해 봐도 나는 한 문장을 채 완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감정 폭주를 멈출 방법은 없었다.


“대체 무슨 말이에요. 청소기가 뱉어내면 그게 청소기예요? 왜 말이 안 되는 말을 해요?”


고객의 질문에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물었지만 대화는 원활하지 않았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저에게 소리 지르실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는 증상을 확인해야 안내를 드리죠.”

“그냥 회수해 가라고요!”

그쯤 되니, 바글바글 끓고 있는 내 감정에서 분노 찌꺼기 거품을 슥슥 걷어낼 필요가 있었다. 바들바들 떨리도록 화가 나고 당황한 감정이 불투명한 거품이 되어 엉겨 붙어있는 걸 겨우 한 국자 걷어내고 무미건조하게 대화를 재개했다.

“회수하면 꽤 기다리셔야 합니다. 상관없으시죠?”

“얼마나 걸려요! 얼마나 기다려야 하ㄴ..”

“다 설명드릴게요. 들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고객님?(미소)”


잠시 정적. 고객이 선심 쓰듯 나의 발언을 허하셨다. 회수를 하면 기다리는 시간이 발생하니 자가적으로 조치하실 수 있는지 먼저 봐드리려고 했으며, 다 원치 않으시면 수거할 것이고, 입고되면 최소 5일가량 소요된다고 안내했다. 그제서 할머니는 약간 침착함을 끼얹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나저나 아까 뭐요? 뱉어내?”

“네, 흡입한 게 도로 나오는 현상이면 봉 부분 막혔을 ㅅ..”

“있네!”

너무 당당하고 쩌렁쩌렁해서 내가 직전에 무슨 말을 하던 중인지도 잊었다. 고객은 이어말했다.

“양말이 있네! 염병할 거 이게 왜 여기 있어요?”

내가 알 리가.

그래도 담담히 물었다.

“양말 긴 꼬챙이 같은 걸로 제거하시고 작동했을 때 잘 되나요?”

“되네요.”

“고객님, 설명에 답 처음에 해주셨더라면 진작 도움드렸을 텐데 왜 그렇게 역정을 내셨어요... 저희는 도와드리는 입장이잖아요.”

“회수할 필요 없어요.”

뚝-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 외침을 들을 때마다 내가 직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이 상당히 일관적이었다.

귀가 한참을 웅웅거렸다. 오래 사시겠어. 목청이 이리도 좋으시니 아직 정정하신 게 분명했다.







심춘혜 씨는 눈칫밥에 배가 불렀다.


춘혜 씨는 며칠 전부터 가시가 걸린 것 마냥 기분이 개운치가 낳았다. 딸이 제 생각해서 사준 청소기가 영 말썽인 것이다.

딸애한테 AS접수를 부탁하자니 쥐꼬리만 한 월급에서 엄마 생각한다고 선물해 줬는데 그 물건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하면 걱정할까 싶고, 미안해할까 싶고 괜히 서툰 카카오톡으로


‘미진아 엄마가

‘미_______

‘미진아 청소기 잘 쓰고 있는데

‘미진아 청_______

‘미진아 바쁘니?

‘미진아 바ㅃ__

썼다 지웠다를 종일 반복하고 있다.


영 안 되겠는지 거실에 주저앉아 청소기를 분리해 본다. 버튼이 많지도 않은데 누르면 금세 빠질 것처럼 보이던 부품들이 도통 움직거리지 않는다. 설명서라도 찾아보려고 했는데 어제만 해도 장식장 서랍에서 본 것 같던 종이 쪼가리는 왜 찾으려 들면 보이지를 않는 건지 슬슬 욕지기가 올라온다.

“어우 염병할 거 진짜….”


방에서 바둑을 보고 있던 남편 승강 씨는 바둑알 놓는 소리보다 거실에서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하자 거슬렸던 모양이다.

“뭐 하는데?

"아우 이게 안되잖아.." 하며 춘혜 씨는 들으라는 듯, 들리면 좀 나와보라는 듯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아 거 방문 좀 닫고 해. 소리가 다 들어오잖아.”

도움도 안 되는 인간, 죽으면 바둑판이랑 같이 묻어줄까 보다 생각하며 두리번거리니 문 앞에 양말 하나가 뒹굴거린다.


“미진 아빠, 양말을 언제 벗어놨길래 문 뒤에 한 짝만 굴러다녀어.”

“나도 한 짝이 안 보여서 그냥 뒀어. 아 둬. 두고 문 좀 닫아.”

그 말에 춘혜 씨는 콧잔등을 잔뜩 찌푸리고 고개를 신경질적으로 저으며 안방 문을 닫았다. 너무 세게 닫혀 버린 탓에 춘혜 씨 마음이 더 쪼그라들었다. 남편 귀에 들릴 정도로 힘을 주어 말했다.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아니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닌데, 문까지 속을 쌕여!”

괜스레 그 한 마디로 조금은 진정이 되는 것이었다.


이제 다시 청소기를 붙들고 고민을 해보자고 마음먹고 안경을 두 겹 걸쳐 썼다.

“이상해, 이상해, 정말 이해해보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된단 말이야. 내가 만들어도 이거보단 잘 만들겠어.”

충전은 다 됐다고 아까부터 청소기 LED 램프가 약 올리듯이 깜박깜박거리고 있는데, 작동을 시키면 소리만 요란한 것이 빨아들인 걸 고스란히 내뱉는 게 아닌가. 지긋지긋하다. 내던져버리고 싶고, 땀은 한 바가지가 흘러버리고 바락바락 소리 지르면서 짜증을 온 집안에 퍼부어버리고 싶은 마음.


“미진이 아빠”

“…”

“미진이 아빠!”

“아이 거참 여편네 진짜 집에서 쉬지도 못하게 하네.”

“이거 한 번만 봐줘봐요 그러지 말고.”

“아니 AS센터 뒀다 뭣하게!”

“돈 아깝잖아요.”

“그 미진이는 뭐 싸구려를 사줬나? 허허 그냥 센터 전화해. 땀 빼지 말고”

“미진이가 뭘 싸구려를 사줘! 걘 좋은 거 골라 사줬지!”

“아이 진짜 시끄럽게스리. 왜 성질을 부려!”


문이라도 부서져라 세게 닫아버렸다. 문 좀 살살 닫으라는 웬수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오지만 이번엔 움찔하지 않았다.

센터 번호는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노인네들은 쓰지도 말라는 건가 글씨도 쥐젖꼭지처럼 째깐해가지고설랑. 눈이 시려서 눈물이 찔끔 나오는 걸 닦으며 전화번호를 드디어 찾았다.


“아주 전화만 받아봐라. 물건을 증말로 개떡같이 만들어서 말이야. 하으 정말….”

"감사합니다 클린짱입니다"


대체 뭐가 감사하다는 건지, 하나부터 열까지 짜증만 나던 춘혜 씨는 전화받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미진이 또래인 것 같아서 마음을 누그러뜨려보려고 했다. 기억을 최대한 긁어모아 증상을 설명했더니 수화기 너머 젊은 여자는 대뜸 청소기가 이물질을 뱉어내느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이 여자도 자신을 무시하는 건가 왜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해대는 걸까. 청소기란 모름지기 더러운 것을 빨아들여야지 뱉어내는 경우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으며 그런 이상한 제품을 우리 딸에게 팔았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괘씸한 생각에 춘혜 씨는 소리를 꽥 질렀고 방에서 남편도 질세라 소리를 질렀다.

"저 여편네 왜 저래! 왜 전화에 대고 성질이야 성질이."

춘혜 씨는 아랑곳없이 전화 너머에 대고 세게 밀어붙였다. 청소기에 뭐가 막혀봤자 대체 얼마나 막혔다고 내 탓을 하려고 드는지.

전화 받는 여자가 미진이 또래라고 생각한 것도 취소하고 싶었다. 미진이는 이렇게 남탓하는 아이가 아니다.

넌 떠들어라 난 내 할 말 한다 나도 화 낼 줄 아는 사람이라는 각오로 꺾임 없이 제품 수거를 요구했다. 수거하면 기간이 꽤나 걸린다고 또 핑계나 대고 있는 젊은 여자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브러시 헤드를 낑낑거리고 빼냈는데 청소기 봉 입구에 익숙한 천 뭉탱이가 보였다. 지금도 안방에서 고상한 척 바둑돌을 만지작 거리고 있을 승강 씨의 양말 한 짝이었다. 손가락 끝으로 잡아 끄집어내고 나서 청소기를 밀어보니 약 올리듯이 잘 돌아간다. 대체 이게 왜 들어갔을지 어떻게 들어간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퉁명스레 양말로 막혀있었다고 알려주자, 도와주려 했는데 왜 썽을 내냐고 가르치려 드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대강 대꾸하며 전화를 끊고는 남편에게 짜증을 토해냈다.

"대체, 도대체!! 양말이 여기 왜 끼어 있는 거예요! 생전 청소기도 안 돌리더구먼 언제 청소기 돌렸어요?"

"저 여편네는 청소를 해도 난리고 안 하면 안 한다고 난리네. 내 양말이 거기 있었어? 세탁기에 여놔! 아까 한 짝 굴러댕기던 거랑 같이."

"당신이 해요!"


오늘만 세 번째다. 춘혜 씨가 저 방문을 부서져라 닫아버린 것. 두 번째 때에는 시원했는데. 세 번째는 영 떨떠름하고 찜찜하다. 저 영감탱이는 일생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똬리 튼 양말 한 짝을 원망스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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