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과 우여곡절

명상은 간단한데 내가 안 간단해

by 토희

명상 360일차. 이제서야 보니 명상은 매우 간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간단한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명상을 하는 동안 내 마음이 간단하지 않아서였다. 뭘 그리 잘나빠진 생각을 한다고 짧은 10분 새에도 잡념들이 북새를 놓는가.


법륜스님을 통해 수행의 방법 중 하나인 호흡관 명상이란 것을 처음 배우게 되었다. 나는 어쭙잖지만 스님께 배우기 직전까지 명상 경험이 있었는데 그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calm이라는 유료 앱의 명상 시리즈였다. 이어폰 너머로 아름다운 목소리의 내레이터가 마음을 어떻게 대하면 좋은지 요즘 많이 회자되는 마음 챙김에 대한 글을 낭독해 준다.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서 멘트만 들으면 되니 정적이 어색한 초심자는 이 어플의 도움을 받는 것도 추천드린다. 널뛰던 마음이라면 한결 참해진다.


으악, 그런데 호흡관 명상이라는 이것 쉽지가 않다. 호흡관 명상은 calm 어플의 그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명상이 아니겠는가? 가이드를 주는 누군가도 없이 오로지 나 혼자서 이 적막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한참 호흡에 집중을 하다가 ‘어 지금! 지금 이 마음이 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피어나는 의문에 실시간으로 답을 해주는 스님 어플이 있다면 거금을 주고도 샀을지 모른다.




그날로 매일 잠에서 깨면 짧게 10분 명상을 한다. 시작 죽비소리(스트리밍 음원)가 난다. 탁, 탁, 탁


숨을 한 모금 크게 들이마신다. 흐읍... 가슴이 조금씩... 부.. 풀어 오르네... 아 더는 못 마시겠다. 흠… (무한반복) 이렇게 호흡을 제 멋대로 만들어 가는 게 명상이 맞나 모르겠다. 제 아무리 초심자라지만 작위적인 이 행위가 왠지 정법은 아닐 것 같다는 촉은 있다. 하지만 별달리 가진 꾀가 없기에 한동안은 이런 어설픈 방법으로 호흡이란 것에 집중했다. 지금 보면 호흡관 ‘명상’이 아니라 호흡 ‘운동’을 한 셈이다. 머리 하나는 기똥차게 맑아졌다.


한 주의 마무리인 일요일 저녁에는 스님과 유튜브에서 만나 실시간 명상 수련을 한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고 명상의 다양한 기본 가짐에 대해 들을 수 있다. 시간은 아침보다 조금 긴 40~50분 정도로 이뤄 진다. 그 날은 누군가가 스님께 이런 질문을 했다. “호흡을 들여 마시고 어느 정도 있다 내뱉는 게 좋은가요?” 스님 왈 “그런 건 없어요. 호흡은 쉬지 말라고 해도 자동으로 쉬어지고 있어요.” 병아리 수행자가 다행히 말귀는 알아 듣는다. 호흡을 ‘할' 것이 아니라 저절로 쉬어지고 있는 지금 이 호흡을 ‘보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렇지만 호흡을 주시하되, 관여하지 않는다는 건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가끔은 남 일에 관여 안하기도 힘든데 내 일에 일절 관여하지 말라니. 어렵다 어려워. 이후로도 그 감각을 몸에 붙이는데 한참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가르침을 새기며 매일 연습을 꾸준히 하니 어느 정도 호흡이 해결이 됐고 나도 이제 명상을 잘할 수 있겠다. 오예!!! 그럼 오늘도 연습한 대로 명상을 잘해봐야지!! 싶었다. 호흡을 할 게 아니라 볼 것을 다짐하며 명상을 시작한다. 숨이 '들어오네' '나가네' ' 들어오네' '나가네'


그런데 말입니다.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다 요즘 한참 못 먹은 고기가 왜 보이는 것인가요? 석쇠 위에 굽는 빨간 생갈빗살이 어른어른거린다. 그곳의 장소는 삼성역 코엑스 앞에 ㅇㅇ관 생고기 집. 외관만 보며 점찍어둔 곳이다. 나는 지금 그곳에서 고기를 굽는다. 췩췩 <번쩍> '악, 다른 생각 했다. 지겨워.’ 명상을 하기에는 정말로 하찮은 집중력이다. 다시 명상에 집중.... 또 다른 생각... <번쩍> 다시 명상에 집중.... 또 다른 생각... <번쩍> 다시 명상에 집중.... 또 다른 생각... <번쩍>


언제까지 다른 생각을 하게 될까? 집중하나 못하는 나를 보며 답답하기가 그지없다. 내 맘처럼 하나 안 되는 내 몸을 보며 생각이 든다. 이 몸뚱아리는 대체 누구의 것인가? 내 것이라면 왜 내 마음대로 안 되는가?


그렇지만 사람 사는게 다 거기서 거기다. 어느 일요일 저녁 스님과 함께 수련하고 있는 유튜브 채팅창에 동지들의 댓글이 빠르게 올라간다. "잘 안돼서 답답해요." "잘하고 싶은데 매번 다른 생각하다가 끝나버려요." "이렇게 하는 게 명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생각에 꼬리를 물다가 머리가 아파요." "눈을 뜨고 싶은 욕구가 자꾸 떠올라요." 그들의 아우성이 내 방까지 전해진다.


그 때 스님께서 귀한 말씀 하나를 툭 던져 주신다. "생각이란 떠오르는 게 당연한 거예요. 떠올라도 편안하게 코끝으로 마음을 돌이켜 다시 호흡을 주시하면 됩니다. 망상에 의미 부여하지 말고, 자책도, 잘해야겠다는 다짐도 없이 그저 한가하게 하세요"


아차. 그 동지들과 나는 착각을 했다. 명상을 하는 동안 아무런 망상없이 호흡만이 떠올라야 하는 게 ‘잘하는 명상’인 줄 알았던 거다. 잘해야 한다 병을 갖고 있던 내가 명상을 잘못 생각했다는 걸 알게 됐다. 호흡을 만들어가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 다음으로 알게된 점은 망상을 떠오르지 않게 할 방법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걸 알고 나니 명상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잘해야 할 것이 없으니 가볍게 언제든 할 수 있었다. 망상을 떠오르는 사실에 시비할 게 아니라, 떠오르는 와중에도 내 할 것(호흡에 집중)을 그저 할 뿐 이었다.


명상이 아닌 멍상을 할 때도 있다. 호흡을 바라보는 또렷함이 아니라 멍 하니 앉아만 있다가 끝나는 멍상. 졸다가 고개가 뒤로 휘까닥 재껴져서 끝난 줄 알 때도 있고, 졸음을 참다가 아예 두 손 두 발 다 들고 '에라이 모르겠다' 그 자리에 드러누워 자기도 했다. 아이고. 얼마나 꿀맛 같은지. 때 돼서 자는 잠과는 달콤함이 비교가 안된다.


ⓒ 2021. 토희 all rights reserved.

망상과 상상을 신나게 하다가 종료 죽비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끝맺음을 할 때도 있다. 6살 때 소꿉친구네 집에서 서로 얼굴 꼬집고 울며불며 싸우다가 친구 엄마가 친구를 덥석 안더니 그녀의 편만 들어줬던 일. 그래서 두 모녀가 죽도록 미웠던 일. 지금 옆에 개어놓지 못한 담요가 자기 좀 예쁘게 정돈해달라며 애걸복걸 유혹하는 일. 있지도 않은 미래 제주도의 집 구조는 어떻게 배치할지 한참을 구상하는 일. 명상 시 망상은 감히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한다.


명상은 왜 할까? 굳이 안 해도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테지만 나는 매일 이어간다. 명상을 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현재 일어나는 일에만 오로지 깨어있기 위해서다. 온갖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호흡만을 관찰하기 위해서.


일상에서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현재'에 또렷이 깨어있어야 한다. 멍하니 살다보면 내 감정의 노예가 되어 일희일비 휘둘리기 딱 좋아지고, 지금이 아닌 미래나 과거 생각에 자꾸 끌려다닌다면 단 한번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아보지 못한다. 눈 앞에 펼쳐진 현재를 제외한 시간은 모두 우리의 '생각'이 아닌가.


지금 자동으로 일어나는 내 마음을 일상에서 바라보는 것이 '알아차림'이고, 지금 자동으로 쉬어지는 호흡을 바라보는 것이 '명상'이다. 명상이 곧 알아차림이고, 알아차림이 곧 명상이고, 그게 수행이고, 수행은 지금을 그냥 사는 것이다. 참 간단해서 좋다. 내 간단하지 않은 마음만 뺀다면 말이다. 그래서 명상을 통해 연습한다. 지금, 여기에 깨어 숨쉬며 살아가는 나를. 사람답게 산다.

keyword
이전 06화새벽 수행자의 기상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