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나로 관계하는 삶

사랑받고 싶은 마음의 조절

연인이 있다고 외로움이 자동으로 해결되는 건 아니다. 연인에게 나의 민낯을 드러낼 수 없다면, 나의 편집된 부분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연인에게도 기댈 수 없고 나의 취약한 면을 털어놓지 못한다면 혼자일 때보다 더 괴로운 시간이 찾아온다. 나는 이 사람에게 기대고 싶지만 기댈 수 없는 상황이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다.


외로움이 주는 고통은 매우 세다. 아무리 내가 맡은 일을 잘 해낸다고 해도, 아무리 내 곁에 가족이 있다고 해서 나의 외로움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외로움은 나 혼자서 감당할 몫이고, 그 외로움의 이면에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에서만이 가능한 ‘친밀함’에 대한 갈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나의 외로움을 없애고자 노력한다. 닥치는 대로 사람도 만나보고 소개팅도 하면서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나의 외로움만 안 느낄 수 있다면 된다는 생각까지 간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누군가를 만나러 간 내가 온전할 리가 없다. 나는 진정한 나로 관계할 준비 보다는, 그저 내 외로움을 해소해 줄 타인이 필요한 거니까.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 마음을 헤아린다고 외로움이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내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하면 진정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내가 나일 수 있을 때, 내가 나로서 관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외로움은 사라진다. 살면서 순간순간 드는 외로움까지 꺼내놓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과 관계할 때 나는 어떤 고통이 찾아와도 감당할 수 있는 내가 된다.

연인과의 관계를 만들어갈 때 많이 어려워하는 점이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내가 잘 보이고 싶은 이 사람에게 보일 수 있는 최선의 부분만 편집해서 보여준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나의 찌질한 면, 나조차도 보고 싶지 않은 면은 더더욱 숨겨야 할 주제다. 보이고 싶지 않은 면을 보이면 이 사람이 나를 한심해하거나 실망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이 사람에게 실망할 때가 있고, 그를 판단하고 있으나 그런 나를 감쪽같이 숨기고 있기 때문에.




연애할 때 중요한 또 한 가지는, 서로의 다름을 의도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의식적으로 인지하다 보면, 다름을 인식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결국에는 수용하고 인정하게 된다. 수용해야만하니까 수용한다고 저절로 수용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 자연스럽게 ‘다르구나’ ‘다른 건 나쁜 게 아니구나’를 알게 되면 결과적으로 수용하고 인정하게 된다.

다른 건 그냥 다른 거다


그냥 다른건데, “쟤는 왜 달라? 저러면 안 되지!”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갈등은 더욱 불거진다. 어떠한 갈등이건 ‘저러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개입되면 조정의 여지가 사라진다. 저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하면 안 될 것을 하고 있는 상대방이 굴복하고 사과하기 전까지는 문제해결이 안 된다. 그런데 그렇게 누군가가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 사랑하는 게 과연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 것일까?


연인 관계에서 누가 이기고 지는 구도를 유지하면, 지는 쪽은 생기를 잃어간다. 자기 생각에 확신도 줄어든다. 나는 늘 틀리고, 저 사람(이기는 쪽)이 맞는 거니까.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까 나는 점점 힘을 잃어간다. 그냥 저 사람이 시키는 대로, 주장하는 대로 끌려가는 관계에 안착하게 된다. 내 목소리가 무엇인지 듣지 않으면 나중엔 들으려고 해도 들리지 않는다. 혹시 사랑할 때 나의 연인이 점점 생기가 없어지는 것 같다면, 혹은 내가 점점 생기를 잃어간다면 누군가의 권력이 은밀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

연인관계는 상호존중이 이루어지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부부가 되면 더욱 더 그러하다). A가 B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관계가 아니라, A와 B는 동등한 입장에서 A는 B가 자신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그래서 어떤 모습이 나타나는지 알아가는 과정에 충실해보는 것이다. B 역시 A가 자신과 어떤 점이 다르며 어떤 모습을 갖고 살아가는지 알아가는 과정을 함께 보내는 것이 서로가 안전하게 느끼는 관계가 아닐까.

초반에 관계형성에 힘쓰지 않으면 결국 소통을 안 하는 것이 기본상태로 굳어진다. 애 낳으면 포기하고 사는 부부들이 생각보다 많다. 소통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지옥이지만 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이 사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소설, 드라마 등 많은 대중 매체에서 우스꽝스럽게 부부를 가장 큰 적으로 묘사한다(예: 웬수). 이것은 어느 정도 진실을 포함하고 있는 농담이라고 생각한다. 관계 형성 초기에 소통을 하지 않으면 평생 안 하며 살아가는 부부들을 많이 본다. 관계 초반에 틀을 잡아놓지 않으면, 남은 생은 내가 원치 않는 관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내가 원하는 관계의 모양을 만들어가며 사는 삶,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소통하는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판단하지 않는 태도를 익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을 때 진정 그를 만날 수가 있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그가 나를 판단하지 않을 때, 나도 오롯이 나의 모습을 그에게 보일 수가 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진짜 자기의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서로가 원하는 진짜 사랑을 만들어가며, 함께 살아가며 생기는 갈등도 해결해나갈 수가 있다. 사랑하며 살고 싶다면, 다름부터 이해하고자하는 그래서 나와 다른 그 사람에 대해 학습하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쟤가 저러면 안 돼.’ 판단하는 마음보다 ‘쟤가 왜 저럴까?’ 궁금해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타인에 대해 학습하고자하는 마인드는 내가 나에 대해 학습하고자하는 마인드와 다르지 않다. 나다운 삶을 살고 싶으면 나에 대해 탐구해보는 과정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와 다른 타인, 특히 내가 사랑하고 더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과 더 잘 소통하고 싶다면 그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을 필요로 하는 정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관계에 있어 기질적으로 타고나는 부분은 “사람에 대한 민감성” 차원이다. 따뜻한 관계를 원하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게 타고난다. 즉, 사람이 주는 보상, 사람이 전하는 감정 단서에 대해 민감한 정도는 기질적으로 타고나는 특성이라서, 어린 시절부터 사람을 대할 때 개인의 특성이 다 다르게 나타나는 것과 연결된다.


사람에 대한 민감성이 기질적으로 높은 사람은 사람에 대한 민감성이 낮은 사람에 비해 ‘감수성이 예민하고, 따뜻하며, 감정이 쉽게 변하고, 쉽게 마음을 여는 것’과 같은 특성이 나타난다. 한 마디로 사람이 주는 자극에 민감하다. 이것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기질이며, 후천적으로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기질은 유전자에 각인된 특성이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민감성이 높은 사람은 따뜻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행동을 지속하는데 에너지를 사용한다. 사람에 대한 민감성이 높은 것이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사람에 대한 민감성이 매우 높을 경우, 사람으로 인해 영향을 쉽게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신이 바라는 정도의 따뜻한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을 경우에 스트레스를 받기 쉽다.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서는 줄 때도 있고 받을 때도 있는 상황들이 오고가며 고맙고 든든한 마음이 쌓여간다. 내가 줄 때는 주는 기쁨이, 내가 받을 때는 고마운 마음을 느끼며 그 사람과의 관계 안의 나도 성장한다. 늘 좋은 일만 있을 수 없으며, 갈등 상황이 오더라도 그 갈등에 대해서 꺼내놓고 이야기할 수가 있다. 그 사람은 그렇게 느꼈을 수 있고, 나는 이렇게 느꼈을 수 있음을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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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Chloe Lee

그림: 드라마 <영혼수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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