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나에게 친절한 삶을 살 수 있다면

불안의 조절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 시간만 빨리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은 사람을 참 초조하게 만든다. 그래서 뭔가를 해야 할 것 같고 흘러가는 시간은 너무나 아까운데 정작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 마음이 쌓이다보면 이대로 삶을 마감하고 싶은 마음까지 흘러간다. 다들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이니, 나도 뭔가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은데 난 몇 년 째 멈춰있는 것 같아 두렵다.


계속 이렇게 살면 안 될 텐데.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은데.
이렇게 살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은데.


걱정이 없는 날은 없으며, 잠도 제대로 못자니 매일 매일이 피곤하고 머리는 아프다면 지금 당장 ‘남들처럼 해야 해!’, ‘잘 해야 해’라는 셀프킬링을 멈추고 나를 챙기는 시간에 집중하면 좋겠다.




일단 불안한 마음을 챙기는 삶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불안하고 피곤한 마음도 앞서 말한 물질에 대한 갈망처럼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특성이 있다. 특히 내가 두렵다고 느끼는 상황(앞으로 일어날 일, 불확실함이 내포된 상황,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정도는 기질적으로 타고나는 특성이다.


기질적으로 불안을 자주 느낀다는 의미는,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자동적으로 걱정이 찾아온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특성은 후천적으로 통제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불안을 줄이기 위해 자신을 통제하는데 많은 노력을 들이지만, 끊임없이 불안에 지배당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세상에는 불확실하고 나선 것이 가득하기 때문에 불안은 계속해서 커진다.


게다가 불안이라는 감정은 통제한다고 통제가 되기는커녕 더욱 증폭되는 속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불안이라는 감정은 억지로 없애려 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조절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일단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나를 보며 ‘문제가 있는 나’라고 낙인찍거나 열정적으로 사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못났다고 자책하는 것부터 그만하기로 하자.


사실 기질적으로 불안을 타고난 나는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피해자야, 나는 너무 불쌍해’ 이런 자기연민 모드로 빠지자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타고난 특성으로 인해 시달림을 겪었을 나에게 짠한 마음을 가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내가 아끼는 다른 사람이 힘들다면 짠한 마음으로 바라봐줄 것 아닌가.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자신에게는 유독 엄격하다면 삶이 편안하기가 어렵다. 이것은 나를 몰아붙이는 자기착취, 자기학대라서. 잘 하고 싶고, 잘 되고 싶은 마음도 사실 내가 나를 그 누구보다 아끼는 마음이다. 그렇게 나를 아끼는 마음은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데, 그 마음을 굳이 밟아가면서 나에게 달리라고 강요하는 건 효과도 없을 뿐더러, 상처만 남긴다. 그러니 나를 채찍질 하는 말과 행동은 이제 그만하면 좋겠다. 벌써 지나치게 많이 해왔지 않은가.




불안할 때 나를 챙기고 싶다면, 일단 불안이 느껴질 때 나의 몸이 어떠한가를 살피는 것이 좋다. 나의 몸은 가장 직접적으로 나에게 신호를 준다. 불안할 때 가슴이 쪼여오는 사람도 있고, 위장이 탈날 조짐을 보이는 사람도 있고, 머리가 아프거나 열이 나는 사람도 있다. 일단 몸에서 평소와 다른 반응이 나타났다면, 멈춰야하는 때이다. 그리고 나의 몸에게 휴식을 주자.


불안할 때 나를 챙기는 두 번째 방법은, 감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불안한 것도 감정이지만, 불안과 함께 찾아오는 여러 가지 감정을 세밀하게 살펴보면 다양한 단서를 찾을 수가 있다. 가령, 불안과 연관된 감정들(우울감, 무기력, 무가치감, 자살사고 등)이 함께 찾아올 수 있다.


우울은 불안의 친구다

우리는 불안에 의해 달린다. ‘해야만 하는 것’ 또는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 달린다. 그러다 지치는 순간이 온다. 그런데 또 달린다. 그래야한다고 믿으니까. 그것뿐이 답이라고 믿으니까 계속해서 달릴 수밖에 없다. 멈추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쉬어야 할 타이밍, 전략을 점검해야 할 타이밍을 놓친다. 온전히 나를 쉬게 나 자신을 허용해주기가 어렵다. 그래서 불안과 함께 달리고 달리다 결국 엎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때 깜짝 놀란다.


‘이 불편하고 무시무시한 감정은 뭐지?’

‘난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거지?’

‘이런 감정을 느끼면 안 되는 건데?!’

‘내가 이상한 거 아냐?’


‘내가 이상한 거 맞는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은 다 멀쩡하게 달리고 있는데?’

‘나보다 더 빨리 달리고 있는데!’

‘난 왜 이렇게 멈춰 있는 거야?’


‘이건 내 성격이 문제라서 그래.’

‘내 성격을 고치면 되겠지?’

‘난 왜 이런 성격을 타고난 것일까?’

‘난 왜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렇게 나를 계속해서 탓하다 나를 미워하게 된다.


달리지 않고 멈춰있는 나를

무기력한 나를

예전처럼 달리지 못하는 나를


안 그래도 불안하다 지쳐서 우울감이 찾아온 나에게 나는 더 우울로 빠지도록 나를 혼낸다.


우울하다는 건 지쳤다는 신호다.

우울이라는 감정과 싸울 것이 아니라,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나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필요한 때라는 의미다. 우울한 마음이 하는 말을 내치거나 무시한다면, 우울한 마음은 계속해서 지쳤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우울하지 않아. 나는 항상 밝을 거야’라고 선언한다고 해서 우울한 마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나 자신을 부정하기로 했을 뿐이다. 우울한 감정이 찾아왔을 때는 더 적극적으로 휴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모든 결론이 자책으로 정해져 있다면, 그 패턴 자체의 변화를 위해 집중적으로 멈춤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그 일로 내가 우울한 감정에 빠지게 되었더라도 나의 결론은 늘 내가 잘못한 거라고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셀프킬링하고 있다면, 내 탓이 아니다, 내가 못난 게 아니다, 나는 그 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렇게 믿게 될 날이 찾아온다.


이렇게 우울한 감정이 들 땐 혼자 있지 말자. 지쳤을 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혼자 다 극복하려는 마음은 오히려 극복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더 큰 실망을 느끼게 된다. 내가 나 스스로를 토닥거릴 힘조차 없는 것이 우울한 상태이다. 그러니 우울한 기분을 느낄 땐 혼자서 극복하자는 마음도 좀 내려놓고 내가 믿는 사람과 함께하자. 내 마음을 꺼낼 수 있는 사람 딱 한 명만 찾아보자. 그럼 된다. 내가 우울과 자책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할 수가 있다.




누구에게도 부담주고 싶지 않은 마음, 내가 혼자서 다 해내야한다는 마음이 나를 가로막을 수 있다. 그런 나에게 계속해서 말해주자. 혼자서는 극복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그러니 이제 조금씩 누군가에게 기대고, 부담도 줘보는 연습을 해보자고 말이다. 그것만이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안내해주자.


그래서 내 우울이 어디서 왔고, 나는 어떤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지, 그 동안 나의 마음이 어디서 얼마나 다쳤는지를 알아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우울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면 나의 우울한 감정들도 이해받고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 내가 못나서 우울한 게 아니고, 내가 이상해서 우울한 게 아니고, 이 상태가 영원할 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에게 따듯하게 말해주자.


나는 잠시 길을 잃은 상태라는 것을,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너무나도 찾고 싶어서 지금 잠시 멈춤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러니 그런 나에게 화내고 실망하기 보다는, 그렇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걸 알아주자. 우울한 감정을 느낀다는 건 우리가 그만큼 열심히 잘 살아왔다는 증거니까. 나는 결국 또 회복할 것이다.


불안한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불안한 마음이 나를 잠식하지 않도록 대처능력을 키우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불안'은 어차피 앞으로도 우리랑 같이 가야 할 감정이라 불안이라는 감정을 잘 다루는 나만의 스킬을 장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불안을 다루는 힘이 조금씩 생기다보면, 긍정정서를 만들 수 있는 힘도 키워진다. 불안→괴로움으로 직결되는 마음에 빠지지 않고, 이성의 힘으로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내가 무섭다면 무서운 것이다.


중요한 건 그 마음을 일단 내가 알아주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그 마음을 글과 말 등의 언어로 풀어보자. 너무 불안할 땐 '명상'과 '요가'도 이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어서, 함께 관리하는 게 '불안 다스리기'에 익숙해지는 데 효과적이다.


또한, 앞으로 일어날 최악을 상상하는 예기불안이 올라온다면, ‘잠시 멈춤!’을 연습해보면 좋겠다. 자동적으로 무서워지더라도, 나는 멈출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 심리학자들의 말처럼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는 점을 잊지 않는 우리가 되어보자. 그렇게 내가 나의 주의력(attention)을 지금으로 데려오는 연습은 나에게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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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Chloe Lee

그림: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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