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 말고 존재에 관심을 가지는 삶

소유욕의 조절

계속해서 가져도 모자란 것 같은 느낌은 사람을 참 공허하게 만든다. 저것을 가지면 공허감이 사라질 줄 알았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또 다시 갖고 싶은 것이 생긴다. 현재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기보다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관심이 간다. 그러다보면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잊어버린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기 직전까지 내 안의 결핍된 마음을 계속해서 느낀다. 갖고자하는 마음은 가질 수 없음으로 인한 고통을 수반하는데도 유지한다. 이런 마음은 끝이 없는 것 같다. 무언가를 갖고 싶은 이 마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물질에 대한 갈망도 타고나는 성격 특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 특히 나에게 좋을 것 같은 자극을 갈망하는 기질적 특성은 사람마다 다르게 타고난다. 유전적으로 보상을 갈망하는 특성이 높게 타고난 사람은 그러한 갈망이 낮은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원하는 게 많은’ 사람처럼 보인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때, 혹은 기분 좋은 자극 없을 때 신경이 예민해진다. 지루함과 심심함을 더 못 참는다.


이러한 특성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기질이며, 후천적으로 바꾸기가 매우 어려운 특성이기 때문에 보상을 추구하는 기질이 높게 타고난 사람은 그 보상을 얻기 위한 노력, 즉 내가 기분 좋을만한 보상을 위해 돌진하는데 에너지를 사용한다. 이런 기질의 경우, 각종 중독에 취약할 리스크를 안고 살게 되며, 자신이 의존해 온 보상을 가지지 못할 경우에 짜증과 화를 자주 낼 수 있다.


반면에 보상을 갈망하는 특성이 기질적으로 낮은 사람은 ‘크게 바라는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기질이며, 날마다 새로운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화낼 일도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보상을 갈망하는 기질이 봤을 때 참으로 무던하고 늘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신기해보이며, 바라는 게 없는 삶은 얼마나 편할까 싶기도 하다.


무엇을 갖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 필요하다.


원하는 게 많을수록 괴롭다. 언제나 원하는 걸 다 가지긴 어렵기 때문이다. 선천적 특성 이외에도 어린 시절의 경험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어린 시절, 원하는 걸 풍족하게 가졌다면 독립해서도 그 풍족함을 누리기 위해 애쓰게 된다. 풍족함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당연히 가졌던 것을 못 갖게 되는 것을 비정상이라고 느끼고 이것이 결핍이 된다.


반면에 어린 시절, 원하는 것을 못 가지는 것이 당연했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원하는 것은 어차피 ‘원래’ 못 가지는 것이라는 프레임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어차피 내가 원해도 안 되는 것이라 원하지 않게 될 수 있다. 사실은 깊은 내면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거나 꺼내놓을 생각도 안 하고 산다. 기대했다가 못 가지게 되면 더 슬픈 것을 아니까.




생명이 있는 존재는 무언가를 원하는 게 당연하다. 원하지 않는 게 좋은 것도 아니고, 많이 원하는 것이 나쁜 것

도 아니다. 이렇게 딱 잘라서 좋다 나쁘다 할 수 없다. 그냥 그런 것이다. 중요한 것은 원하는 정도, 원하는 것에 따라 우리의 감정의 기복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결핍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언제나 늘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도 없다. 그렇다면 우린 어떤 걸 어떻게 원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고민이 된다.


소비는 소유의 한 형태이다. 아마도 현대 ‘잉여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소유형태일 것이다. 소비는 이중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써버린 것은 빼앗길 염려가 없으므로 일단 불안을 감소시켜준다. 그런 한편, 점점 더 많은 소비를 조장한다. 왜냐하면 일단 써버린 것은 곧 충족감을 주기를 중단해버리기 때문이다. 현대 소비자는 나=내가 가진 것=내가 소비하는 것이라는 등식에서 자신의 실체를 확인하는 지도 모른다.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내가 가진 것이 나를 대변하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 대해 지적한 에리히 프롬의 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것은 중요한 것 맞다. 그런데 그것이 중요할수록 그것이 없어졌을 때의 상실감도 더욱 크다. 결국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없는 상태일 때도 내가 괜찮았으면 좋겠다.’


중요한 대상을 상실했을 때 버틸 수 있는 힘


내가 가진 것 중에는 물질 뿐만 아니라 관계도 포함이 된다. 사람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반려동물과의 관계도 소중하다. 물질을 잃는 것보다 더 큰 상실감을 가져다주는 건 사랑하는 대상을 눈앞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니까. 그렇지만 이별의 상실감을 경험하는 게 두렵다고 우리가 관계를 안 하며 살아갈 순 없다. 죽을 걸 알면서도 살아가듯, 우리 모두는 어느 시점에 이별할 테니까. 告 김광석의 서른즈음에 가사처럼 우린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으니.


그렇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건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 이별의 상실감을 견딜 수 있는 멘탈을 확보하는 것, 더 크게는 존재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사라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존재’에 대한 성찰에 주의를 기울여 보는 것이다. 물질(인간, 동물의 몸뚱이를 포함하여)은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관심을 가져보면 좋을 것은 ‘눈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빅터 프랭클의 정신을 전파하는 의미치료학회 회장 이시형 교수 그의 공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에서 남긴 말처럼 “인간이란 존재는 육체의 죽음에 의해 소멸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본질은 육체가 아니고 생사를 초월한 정신입니다. 정신은 영원불멸의 존재이며 육체는 단지 정신이 물질 차원에 투영된 분신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점점 피할 수 없는 고통이나 불확실성이 많아지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모든 것을 이성과 논리로만 설명하려는 접근이 매사에 통하는 것은 아니라서. 자기초월, 특히 영성의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모호한 것에 대해서도 해석해낼 수 있는 힘은 어떠한 역경이 찾아와도 적응해낼 수 있게 만들어주니까.




약 6개월 전, 사랑하는 반려견이 하늘나라로 갔다. 13년을 함께한, 내 자신보다 더 사랑한다고 느낄 정도로 사랑을 쏟으며 함께했던 팅크. 태어날 때부터 기형으로 뇌질환을 앓았고, 10살이 넘으면서는 노화로 인한 심장병을 앓고 있었지만 나는 초월적 존재의 힘, 기적의 힘에 기대며, 20년은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매일 기도했다. 그렇지만 사실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곧 내 곁을 떠나겠구나.


그리고 나의 초현실적 바람보다 빠르게 하늘나라로 갔다. 고통을 예상했지만 막상 그 고통이 닥치니 너무 아팠다. 그 아픔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루하루 생각해내려 노력했다. 그런다고 고통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고, 하루하루 버텨낼 힘을 얻는 내가 할 수 있는 애도과정이었다. 매일 애도일기를 썼다. 그리고 심리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따른 ‘6개월 후면 괜찮아진다’는 말에 기댔다.


6개월만 이 고통을 잘 버텨보자


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니, 정말 어느 날은 팅크 생각이 밤까지 나지 않은 날도 생겼다. 그 때 날짜를 계산해보니 정말 6개월이 되었더라.


6개월 간 마음을 다해 애도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눈앞에 없어졌지만 팅크는 내 마음 속에 살아있구나


처음에는 그렇게라도 팅크의 죽음을 부정하고 싶었다. 내 마음에 살아있다고 위안하며, 내가 고통을 버티기 위해 만들어 낸 묘약으로 살아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게 진짜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물질로 살아있진 않지만, 우리가 나눴던 13년의 시간, 13년 간 우리가 함께 나눴던 상호작용, 수많은 웃음, 기쁨, 행복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때를 떠올리면 더 아련하고 강렬한 추억으로 단단해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가 진짜 관계를 맺었다면, 우리가 존재와 존재로서 인연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 것 아닐까. 그 인연 자체는 소멸하지 않는 게 아닐까. 사후세계에 대해 알진 못하지만, 만약에 사후세계가 있다면 그 곳에서 우리 어떻게든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억은 없더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서로 알아보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도 편하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편도 별 일이 없다면 죽을 때까진 함께 하겠지만, 그래도 우리 그 때는 헤어지는 거구나. 그렇다면 눈앞에서 서로 사라져도 남을 수 있는 존재로서 진짜 관계 맺기에 충실해보는 것이 좋겠다. 사후에 어떻게 될 진 모르지만, 그것이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종종 남편에게 그리운 팅크 얘기를 추억 삼아 하는데 며칠 전 그가 나에게 했던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영원하지 않으니까 추억이지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의미 있는 추억을 차곡차곡 수집하는 과정이 아닐까.



제 글을 읽어주시고, 라이크 눌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에 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편하게 댓글이나 편한 방법으로 의견 남겨주세요. 도움이 되는 글로 만들어보겠습니다 : )


글: Chloe Lee

그림: pinterest, Wattp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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