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최면: 나는 혼자여도 괜찮아야 해

어차피 나는 혼자라는 불안

‘나는 혼자서도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는 게 좋을까? 1인 가구가 보편화되고, 혼밥, 혼술, 혼자 고기 구워먹기까지 이젠 챌린지를 넘어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혼자하기’. 10년 전만 해도 혼자 밥 먹는 나를 보며 ‘어떻게 혼자 밥을 먹지?’라는 시선이 존재했던 게 기억난다. 2020년 지금 우리는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행위’에는 익숙해지고 있다.


혼자 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혼을 결함으로 보는 사람이 꼰대인 세상이 되었으며, 돌아온 싱글에 대한 시선도 따듯해지고 있다. 여자 둘이 살거나 남자 둘이 사는 형태의 삶도 존중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으며, 혼자 사는 삶의 형태도 하나의 형태로 존중받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우려가 되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혼자서도 당당해야지’
‘혼자여도 괜찮아야지’
‘난 혼자가 편하고 좋아’


여기에도 절대명제가 숨어있다. 혼자인 건 혼자인데, 왜 당당하기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사실 이건 면접 보기 전에 ‘자신감을 갖자’고 주문을 되뇌는 것과 같다


혼자일 때 외로운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마찬가지로 혼자인 내가 ‘외롭다면’ 혼자일 때의 내가 ‘공허하다면’ 그런 나의 감정을 읽어주는 게 자연스러운 반응이며 현실적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되뇐다.


‘난 혼자여도 괜찮아’


‘혼자’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만큼 ‘혼자라는 사실’이 의식된다면, 혼자인 나를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살펴볼 타이밍이다. 혼자인 내가 신경 쓰이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더 자세히 헤아려 보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나에게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야 해’라고 명령한다면 나는 또 내가 유지하는 절대명제에 갇혀 셀프킬링할 수밖에 없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 나를 꾸밀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현상은 다음의 인지적 왜곡이다.


<긍정적인 면의 평가절하(Discounting the positives)>
“혼자가 편하고 좋아. 어차피 연애는 귀찮은 거니까”
긍정적인 측면의 비중은 과소평가하면서 현재의 자신을 정당화함


혼자일 때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분명 있다. 하지만 그것이 ‘혼자여서’ ‘싱글일 때만’ 누릴 수 있다고 ‘연애를 하지 않아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사랑하는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면에 대한 평가절하이다. 연애를 한다고 혼자 있는 시간을 못 가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그런 연애를 해왔다면 그 연애에서의 문제점을 찾아 수정이 필요한 것이지, ‘그런 연애를 반복할 거라면 하지 않겠어’ 라고 결론 내리기엔 관계가 주는 이점이 너무나 아깝다.


관계를 하면 갈등이 생긴다.

그 갈등을 조금 더 지혜롭게 풀어가는 연습을 해나가는 것이 관계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관계라고 늘 핑크빛만 꿈꿀 순 없다고 생각한다. happily ever after는 디즈니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판타지다. 평생 이 사람과 행복할 수 있을 지는 unknown이지만, 우리가 언제 죽게 될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삶, 내 앞에 있는 이 사람과의 관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그래서 너무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지려고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오래 혼자 있는 나를 그냥 두지도 않으면 좋겠다. 누군가 곁에 있는 게 불편하고 번거로울 때도 있겠지만, 그 또한 삶의 일부로 경험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면 좋겠다. 그리고 관계 속에서도 독립적인 존재로 오롯이 설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다.


혼자서 외롭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으면 좋겠다.

‘진짜 나’로 존재한다면 관계를 한다고 해서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 말이다.




바깥에서 무엇을 먹거나 마시거나 하는 것은 할 만하다. 오히려 혼자 하는 게 번거로운 사람들 맞추는 것보다 편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사실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따로 있다. 우리를 건드리는 몸과 마음의 소리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이다. 혼자 있을 때 자주 찾아오는 상실감이라는 감정은 혼자 감당하기가 버겁다. 그럴 땐 내가 정말 인생을 잘못 살아온 건 아닌가? 의심되기도 할 정도다.


혼자 가만히 있을 때 찾아오는 외로움, 그 이면의 공허함을 그냥 둔 채, 혼자여도 괜찮아. 라고 처리하는 것은 내 안의 소리를 속이는 행위이다. 이 감정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나의 것이며, 내가 좋아하는 감정만 편파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우리가 된다면, 외로움, 상실감, 우울, 불안 등에 익숙해지는 건 가능한 일이다. 그 감정이 현재에 살아서 나를 건드린다면, 나는 그 소리를 들어줄 책임이 있다. 진정 나로 살고 싶다면. 그것은 나의 일부이니까.


그럴 때 우리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 중에 대표적인 도식은 ‘나는 어차피 혼자다’이다. 이별하기 전에는 ‘혼자가 될까봐’ 불안하고, 이별 후에는 ‘역시 내 말이 맞았어. 나는 어차피 혼자야’라는 마음이 나를 괴롭힌다. 그 마음이 너무 괴로우니 현실을 탈피하고 싶다. 그렇게 만들어낸 대표적인 주문은 ‘나는 혼자여도 괜찮아야 해’.


그런데 나는 ‘혼자서 괜찮아야 하는 건 아니다’. 혼자여도, 관계 속에서도 조금 더 편안한 나로 살면 좋겠다. 관계 안에서 괜찮지 않다면 혼자여도 괜찮지 않다. 괴로운 연애가 끝나고 혼자가 됐을 때 더 편해졌다고 느끼는 이유는 ‘괴로운 연애(진짜 원인)’이 끝나서이지 ‘혼자가 되어서(가짜 원인)’가 아니다. 관계를 끝낸다고 자동적으로 내가 괜찮아지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건 ‘왜 내 연애가 괴로웠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이다.




연애가 괴롭게 끝났다면, 그 ‘괴로운 형태’의 연애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분석 작업이 필요하다. 원인 분석이 없이 또 연애를 시작한다면 동일한 패턴의 괴로운 연애로 이어질 것이며, 이 때 나는 ‘역시 연애는 힘들어’라는 결론을 반복해서 만들게 되는 악순환을 유지한다. 그러니 '혼자 vs. 같이'를 구분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나는 혼자여도 괜찮아야 해’ 이면에 존재하는 도식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삶을 설계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진짜로 나의 삶을 응원할 수 있는 존재로서 온전히 기능하게 된다.


‘나는 어차피 혼자다.’ 라는 생각에 기반한 행동패턴도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내가 지각하는 권력의 크기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인간은 다 다르며, 다양한 조합으로 변신할 수 있다. 나는 권력자 앞에서 어떤 모습인지, 최근의 연애에서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집에서 엄마나 가족 사이에서는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자. 내가 특정 상황에서 어떤 도식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 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나는 그 누구와도 똑같지 않다. 비슷해보여도 다 다르다. 그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름을 알려면 내가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예컨대, 지도교수님 앞에서는 적극적으로 인정을 추구하는 유형이 되는 사람이 연인이나 친구들과 있을 때는 거리를 두는 행동을 보일 수 있고, 엄마와의 관계에서는 엄마의 반대를 유발하는 청개구리로 살아갈 수 있으며, 일에 있어서는 일중독자로 살아갈 수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패턴이 반복되는지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한 단계 더 들어가 나는 그 상황에서(그 사람과 있을 때) 이러한 행동패턴을 유지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는 것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인정 욕구>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다. 인간이라는 종(spices)은 공동체를 생존의 본질로 한다. 이러한 인간에게 인정 욕구가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인정 욕구의 강도에는 개인차가 있다. 1만큼만 인정 욕구가 충족되어도 충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인정 욕구가 0인 사람은 없다.

이 세상 누구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구호가 허황된 이유가 이것이다. 최소한 지구상에 한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을 때 자기 자신을 인정할 수 있다.

인정받고자 하는 대상 중요한 타인(significant other, 많은 경우 절대권력자)이 나를 인정해줄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나의 존재를 인정해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운명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나를 인정해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중요한 타인(significant other)의 인정을 갈구하면서 불행이 시작된다.

“나는 인정 욕구가 0이야,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해”라는 자기기만은 가혹하다. 그 대신, 나의 존재를 인정해줄 대상을 새롭게 찾아보자. 중요한 타인(significant other)에서 다른 존재로 바꾸어 보는 것이다.

나는 어차피 혼자라는 명제는 틀렸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나는 혼자여도 괜찮아야 해”라고 나 자신의 목소리가 말한다면, 심플하게 말해주자. 나는 혼자일 때도 있겠지만, 함께일 때도 행복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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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Chloe Lee

그림: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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