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연애: 나는 그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해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을 것이라는 불안

을의 연애를 반복한다면 상대방에게 맞추는 형태의 내가 발동한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모습, 바라는 모습만 보여줘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한없이 맞추는 나로 살아간다. 그러다 내가 바라는 사랑이 오지 않으면 좌절하고, 점점 나는 원래의 나를 잃어간다.


나는 누군가의 ‘호’를 맞추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나를 지워야하는 건 아니다.

심지어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포장한 나는 진짜 나도 아니다.


그렇게 인위적인 나를 만들어 찰나의 사랑을 얻는다 해도 진짜 나는 무의식 속에서 울 수밖에 없다. 애초에 조건적인 사랑으로 시작해서 조건적인 사랑만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라면 어차피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사랑도 아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자체를 통째로 사랑받는 것이니까.


내가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이란 걸 그가 알면 나를 떠나지 않을까 무서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냥 나는 또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며 자책한다. 상대방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상대방의 기분이 나쁜 것은 내가 문제이고 내가 원인이기 때문에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 사람의 감정이 오롯이 나의 책임일까?


그 사람의 감정은 그 사람의 것이고, 나는 그냥 나일뿐인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을 원하는 건 그 사람의 욕구이지, 내가 나를 버리면서까지 그 사람의 이상에 맞춰야하는 건 아니다. 내가 사랑받고 싶은 욕구 자체를 표현하지도 못한 채, 상대방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나를 숨기면서 연애를 지속한다면 그게 진짜 관계인 지 멈춰서 생각해보면 좋겠다. 그런 관계 지켜서 뭣에 쓴단 말인가. 결국 난 사람에게 나로서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건데. (지금껏 나도 모르게 정답이라고 생각해왔던) ‘무조건적으로 그에게 맞춰주기 전략’은 틀렸다. 그렇다면 그 전략은 당장 그만두는 게 맞겠다.




어차피 내가 그 사람에게 맞추려고 노력한다 해서 그 사람의 이상(ideal)에 닿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 애초에 그 이상에 닿을 필요도 없다. 그래서 그 노력은 오히려 나의 영혼을 갉아먹는 행위이다. 지금 내가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하느라 나를 지우고 있다면, 지금 당장 멈추길 바란다. 어차피 그 전략은 내가 원하는 사랑을 만드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을의 연애를 반복하는 사람의 속마음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나보고 늘 밝아서 좋겠다고 한다. 나도 밝은 내가 맘에 든다. 그런데 가끔은 좀 지친다. 특히 한껏 밝음을 세상에 뿌리고 집에 들어온 날이면, 정반대의 감정으로 숨고 싶어진다. 그렇게 남모를 충전을 하고나면 또 다시 밝음을 만들어 낼 에너지가 하루치는 생기는 것 같다.’


을의 연애를 자처한다면, 소개팅에서 분위기를 책임지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밝지 않으면 날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있는 힘껏 밝음을 만들어낸다. 혹은 내 안에 모든 ‘외향성’을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낸다. 마치 한 편의 쇼를 하듯. 그러고 있는 내가 부끄럽지만 나는 다른 방법을 모르겠다. 내 연애 상대가 될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는.


‘나는 그늘 따윈 없어요.’

‘나는 평온한 가정에서 사랑 많이 받고 자랐어요.’

‘이런 나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보이고 싶은 모습’을 만들어낸 후 고백 받음 혹은 사귐에 성공하더라도 나의 밝음 연기는 계속된다. 그 사람을 만나면서 같이 보내는 시간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가 진다. 이 데이트를 즐겁게 만드는 건 나의 몫, 만약 데이트가 실패하면(재미가 없으면) 그것도 내 탓. 만약 데이트 상대가 지루해하거나 기분 나쁜 표정이라도 짓는다면 나는 덜컥 겁이 난다.


‘이 사람, 내 말이(나랑 데이트하는 게) 재미없는 거 아닌가?’

‘나 또 혼자되면 어떡하지?’


이런 두려움이 느껴지면 이 사람이 괜히 더 소중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우리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나는 왜 늘 연애의 시작단계에서 이러는 걸까. 이런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 더 무섭다. 뭔가 나에게 이상이 있는 것 같아서. 내 연애가 매번 실패하는 이유가 나 때문인 것 같아서.


이런 상황에서 흔히 발행하는 인지적 왜곡은 다음과 같다.

<속단하기(Jumping to Conclusions)>
“그가 짜증나는 표정을 일삼은 건 내가 그에게 무언가를 잘못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상태(감정, 생각, 행동)를 논리적 근거 없이 결론내림


속단하기와 함께 자주 발생하는 인지적 왜곡은 다음과 같다.

<지나친 개인화(Over-Personalization)>
“오늘의 데이트가 재미없었던 건 내가 데이트 장소를 잘못 제안했기 때문이야”
상황에 대한 책임감을 과도하게 느낌.
상황이 만들어진 원인은 다양할 수 있는데,
자신이 기여한 비율이 절대적(100프로)인 것처럼 느껴 자책함


인지적 왜곡은 말 그대로 ‘왜곡’이다. 팩트가 아니다.


나의 뇌가 오해하는 것이다.


언어를 배우기도 전, 아동기 편도체계에 진하게 새겨진 정서적 기억이 자동적으로 만들어내는 공포 반응, 신체감각과 연합되어 발생하는 오류다. 오류라는 것을 이해하면, 인간은 자유 의지로 왜곡된 인지 도식에 대한 통제력을 키울 수가 있다. 우리 그 작업을 함께 하려는 것이다.


혼자인 것 같은 느낌은 너무 무섭다. 버려질 것 같은 느낌도 피하고 싶다. 무섭고 불안하다. 연애가 힘들 때도 그 관계를 유지하려는 나를 발견한다. 주위에서는 다 헤어지란다. 그런데 난 힘들어도 참는다. 이별이 무섭기 때문이다. 힘든 관계 속에서 계속해서 상처받는다. 그래도 그런 관계라도 유지하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연애하면 좋아야하는데 난 더 피곤하고 지친다.


사실 내가 원하는 건 오롯이 내편이 되어 줄 한 사람, 누군가가 날 좋아해준다는 느낌이다. 누군가와 같이 있고, 매일 연락할 사람이 있는 게 좋다. 그 사람이 좋은 것 보다는, 연애하는 기분이 좋다. 혼자가 아닌 것 같은 기분. 이 세상에 내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괴로운 관계 이면에는 사랑받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수치심이 숨어 있다. 수치심을 연구하는 심리상담가 달린 랜서는 그녀의 책 <관계 중독>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거절과 버림받음의 공포와 함께 수치심이 늘 나를 지배했던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적극 실천하기보다 나를 방어에 집중하는 방어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P.13)

“우리가 느끼는 수치심이 무엇이든, 그 바탕에는 열등하거나 거부당한다는 무의식적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즉 사랑 받지 못한다는 믿음이다.”(p.24)

버림받을까봐 두려운 마음 이면에는 내가 열등한 존재이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이 숨어있다.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 지금까지 결혼 못한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이 내가 문제 있다고 볼까봐 두려워’
‘뒤쳐졌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겠어.’


생각은 나지 않지만 아동기의 자신을 추정했을 때 어떤 모습이 그려지는지 찾아보는 작업은 진짜 나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 모든 과거를 다 파헤칠 필요는 없다. 현재에도 살아있는 과거, 현재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과거를 탐색하여 무의식적 영향력을 의식화하는 작업만이 필요하다. 그래서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언어라는 걸 습득하기 이전의 나, 내 감정을 울음으로, 웃음으로, 손짓 발짓으로 표현해야했던 나. 절대권력자가 나를 보살펴주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웠던 영유아기의 나. 첫 기억의 나는 성인이 된 나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동기 경험을 통해 편도체계에 새겨진 기억은 일생 동안 남아있다. 특히 두려웠던 기억은 결코 잊기 어렵다. 그 때는 생존을 위해 나의 뇌가 저장할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지심리학자들은 편도가 저장하고 있는 기억을 깨끗이 지우는 건 불가능하며, 도식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식을 조절하는 것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관계 내의 권력구조에 따라 행동패턴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연애에서 남녀가 서로 이기고 지는 구도를 우스갯소리처럼 얘기하는데, 실제로 남녀 관계에서 경쟁구도가 살아 숨쉬는 경우가 많다. 무의식적으로 내 연인과 나는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구조, 그리고 내 마음 상태에 따라 내가 익숙한 방식을 선택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1) 나를 학대하는 폭력적인 관계를 선택하고 유지하는 가스라이티 유형


가스라이티(가스라이팅을 당하는 피해자) 유형은 늘 혼자인 것 같아 괴롭다. 외로운 나에게 친절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생긴다면 빠르게 마음을 내준다. 왠지 나의 감정을 공감해주는 것 같은 사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에게 자기도 모르게 속 얘기를 다 해버린다. 문제는 관계가 점점 나에게 불리해지는 방향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그 사람은 가스라이티 유형이 터놓은 약점을 갖고 인질처럼 대하기 시작한다. 자기가 시키는 걸 해줘야하는 호구로 이용하는 사람들. 가스라이터(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에게 자주 엮이는 나를 발견한다면, 어느새 부턴가 내가 엮이는 사람들이 나에게 폭력적인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면 나는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심리적 용어를 최초로 규정한 심리치료사 로빈 스턴은 그의 저서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에서 가스라이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가스라이팅이란 정서적으로 누군가를 조종하려는 행위이다. 가스라이팅에는 항상 두 사람이 존재한다. 혼란과 의심의 씨앗을 뿌리는 가해자(가스라이터)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 자신의 지각력을 기꺼이 의심하는 피해자(가스라이티)다. 자신이 가스라이팅의 피해자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점점 스스로를 의심하게 됐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만 그 이유는 모른다. 도대체 왜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 줘야하는 사람이 나에게 끔찍한 기분이 들도록 만드는 지 알 수가 없다”

-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로빈 스턴(가스라이팅이라는 심리적 용어를 최초로 규정한 심리치료사)


그런데 문제는 한 번 가스라이팅에 빠져들게 되면 그 학대적인 관계를 매정하게 끊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가스라이터들은 그런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을 떠나지 못하도록 상대방을 조종한다. 가스라이티 유형들이 자신의 곁에서 복종하도록 교묘하게 이용한다. 가스라이티 유형은 아무리 힘들어도 무조건 참는 게 몸에 배어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착취에 익숙해지다 보면, 자신에게 헌신하지 않는 상대를 자꾸 선택하고 만남을 유지하는 관계패턴이 굳어질 수 있다. 나를 하대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반복적으로 나의 상처를 건드리고, 내 마음은 계속해서 사랑에 목이 마른다.


타인을 조종하는 관계인 가스라이팅은 연인 관계 뿐만아니라, 직장상사, 친구, 가족 관계에서도 발생한다.


(2) 나의 취약함을 드러내거나 타인을 신뢰하지 않으려고 방어하는 유형


가스라이티 유형이 방어하는 행동패턴을 보일 수도 있다. 사람들을 만날 때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특히 비밀(가족 혹은 나의 사생활)은 들켜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으로 많은 에너지를 기울인다. 사람을 쉽게 믿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타인을 믿지 않는 것이 내가 버림받거나 학대받는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킬 방법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 유형의 문제점은 자신에게 필요한 관계를 영영 맺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방어를 하는 동안 관계 맺기는 놓치는 결과가 만들어진다. 사실 출발은 그 누구에게도 다시는 상처 받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친밀한 관계를 만들 기회를 차단해버린 나에게는 누군가가 들어올 틈이 없다.



(3) 타인이 자신을 이용하기 전에 내가 먼저 타인을 이용하는 가스라이터 유형


가스라이티 유형이 늘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입장만 경험하지 않는다. 상대에 따라 가스라이터 유형이 되기도 한다. 즉, 내가 타인을 착취하고 학대하는 관계를 주도하는 행동유형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젠 내가 가스라이터 입장이 되는 것이다. 관계에서 권력, 경쟁구도에 취약하다면 누구나 가스라이티(피해자)와 가스라이터(가해자)를 오고가며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이렇게 누군가는 가해자,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는 연애를 반복해왔다면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나를 속이거나 해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즉, 타인이 자신을 이용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 사람을 이용해야겠다는 무의식적 추동을 지니고 살아가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의지할 수 있는 관계가 늘 그립다.


원치 않은 분리 경험 혹은 정서적으로 냉담한 가정에서 아동기를 보낸 개인이 성인이 될 경우, 친밀함을 원하는 대상과의 관계를 불안정하게 지각한다. 늘 상상 속의 헤어짐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상대가 도망갈 정도로 매달리며 집착하는 연애를 반복하게 된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나를 떠날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확신하기 때문에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만약에 내가 만나고 있는 이 사람이 날 안 떠날 거란 확신이 있었으면 달랐을까?


사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어떤 관계라도 그런 확신은 내릴 수 없다. 이 관계가 어떻게 될지는 미래에 일어날 일이며, 미래는 어느 누구도 알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 unknown인 것이다. 그 unknown값을 known값으로 바꾸는 것은 애초에 무모한 행동이며, 우리가 사랑 관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오롯이 현재 이 사람과의 관계에 충실한 것뿐이다.


또한 나는 누가 버리고 말고 할 대상이 아니다. 그가 날 버린다고 버려질 사람이 아니다. 나 또한 누구를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그냥 자기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지,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사람을 물건처럼 인식하지 말고 존재 그 자체에 집중해보기로 하자.


누군가에게 집착했다면, 누군가가 떠날 거라 두려움에 떨었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나이다. 나는 그 때 그에게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 때 나는 그에게 느낄 수 있는 친밀감, 따뜻함, 내편인 것 같은 느낌이 좋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든 행동을 했던 것이다. 비록 나의 불안정한 심리도식에 의해 발생된 감정이라도, 그것이 내 것이 아닌 건 아니니까.


나는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명제는 틀렸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나는 연애 상대방에게 잘 보여야 해”라고 나 자신의 목소리가 말한다면, 심플하게 말해주자. 그렇게 을이 되어 사귈 바엔 헤어지는 게 낫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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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Chloe Lee

그림: pinterest, apostrophe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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