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맞추기
2019년 6월 7일
아침 여덟 시에 겨우 일어나는 우리와 달리 부모님은 여행 첫날부터 새벽 다섯 시 아니 정확히는 새벽 네 시에 눈을 뜨셨다고 한다. 거실 침대에서 자고 있던 우리가 부엌에서 들려오는 요리 소리에 일어날 때 즈음엔 부모님은 이미 동네산책을 끝낸 건 물론이거니와 당장이라도 시내 관광을 갈 채비가 되어 계셨다. 그렇게 우리 기준에는 굉장히 이른 아침 열시부터 시작된 프라하 관광은 오전, 오후, 그리고 야경투어까지 하루를 꽉 채워서 끝이 났다.
빡빡하게 여행일정을 짜지 않는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매력으로 가득 찬 프라하를 하루 만에 돌아보려니 욕심이 체력을 앞섰다. 오전에는 까를교와 천문시계, 하벨 시장을 포함한 시내 관광을, 오후에는 프라하성을 구경했다. 이때 이미 모두가 지쳐있었지만, 프라하 야경을 못 보고 떠나자니 아쉬운 마음에 숙소에서 저녁을 먹고는 다시 시내로 나갔다. 유럽여행이 일상화된 우리에게도 힘들었던 하루였으니 어제 막 프라하에 도착한 부모님은 오죽하셨을까. 야경을 보러 시내를 걸을 때 즈음엔 아버지는 이미 꿈나라를 걷고 계신 듯했다.
그렇게 숙소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돌아와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서는 아침형 여행자인 부모님의 속도와 늦은 오후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우리의 속도를 잘 맞춰야겠다고. 길지 않은 일정으로 유럽여행을 오신 부모님에게 장기여행자인 우리의 '느린 여행'을 추천해 드릴 순 없으니 말이다. 여행 중에 피곤하거나 날씨가 좋지 않으면 온종일 숙소에서 쉴 수도 있다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 드려도 부모님은 농담으로 받아들이시는 걸 보니 우리가 이번 여행에 '느리게' 여행할 일은 없을 듯하다.
알차게 짜인 여행일정도, 몸과 마음을 편하게 휴식할 수 있는 좋은 숙소도 중요하지만, 여행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행의 속도'다. 아무리 좋은 관광지도 어떤 여행속도에 맞추어 보느냐에 따라 그곳에서의 기억이 의미 없는 사진으로 남을 수도, 평생 기억이 나는 여행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여행에서도 속도를 맞추는 일은 중요하다. 특히 같이 여행을 떠난 적이 많지 않다면 더욱 그렇다. 해외에서 부모님과 여행을 같이 한 건 8년 전 미국여행이 마지막이었다. 8년이 지나 아내와 함께 이렇게 넷이서 길게 여행을 떠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속도를 맞추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그럴수록 부모님과 더 자주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여행을 함께하면 서로의 속도에 더 많이 적응되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