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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유럽자동차여행] Day 66

그를 대노하게 만든 "다꽝있읍니다"

2019년 6월 21일


아버지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신다.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아버지가 더 젊고 더 기력이 넘치셨을 때도 화를 내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잘 없다. 내가 초등학생 때 누나와 치고받고 싸운 뒤가 아버지가 화내시는 걸 본 마지막 기억인 듯하다. 

    

부모님이 여행 오신 지 이틀째부터 아버지는 어깨가 아프다고 하셨다. 며칠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차도가 없으셨다. 여행올 때 두 짐 가득 한식을 담아온 것이 화근이었다. 젊은 성인 남자가 들기에도 아주 무거웠던 23kg이 넘었던 캐리어 2개를 갑자기 들어 올리다가 어깨 근육이 놀란듯했다. 어깨 때문인지 아버지는 여행 중에 늘 컨디션이 좋았다 나빴다가를 반복하셨다. 

    

로텐부르크를 여행한 오늘은 다행히 아버지 컨디션이 나쁘지 않으신 듯했다. 부모님이 예전 패키지여행으로 한 번 와본 곳이기도 해서 더 반가워도 하셨다. 예전에 찍은 사진이 핸드폰에 남아 있어 그 장소에서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어드리기도 했다.     


로텐부르크가 아름다운 건 마을 전체를 둘러싼 이 성벽이 잘 보존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로텐부르크를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중세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하다.
호위무사 도깨비 파고. 본디 가이드 앞으로 걸어가면 안된다고 하지만 부모님은 늘 직진하셨다.
로텐부르크 마을 전체의 모습이 잘 담겨있던 마을 축소판.


차를 주차하고 마을로 걸어가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일식집에서 한글로 크게 "다꽝있읍니다"를 광고하는 글을 봤을 때 아버지의 컨디션은 최고조였다. 점심으로 먹을 다꽝 생각에 힘이 나신 듯했다.     


그렇게 시내 구경을 마치고 점 찍어둔 일식집으로 향했다. 각자의 취향대로 아버지는 우동, 어머니는 라면 그리고 나와 아내는 덮밥을 골랐다. 조금 기다린 끝에 식사가 나왔다. 한국의 치킨이 생각날 정도로 내가 시킨 치킨돈부리는 정말 맛있었고, 아내가 시킨 연어덮밥도, 어머니가 시킨 미소라멘도 일품이었다.     


그런데 메인 메뉴가 다 나오고 나서도 아버지가 고대하던 '다꽝'만은 나오지 않았다. 조금 기다려보았지만 우리의 '다꽝'은 깜깜무소식이었다. 기다리면 안 될 것 같아 일본인 주인에게 '다꽝'이 안 나왔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일본인 아주머니는 서툰 영어로 "노 닥꽝 투데이"라고 이야기하시고 자리를 떠나셨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의 아버지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내 맞은편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는 비록 말로 화를 내시지는 않았지만, 표정으로 "다꽝이 없다고? '다꽝입읍니다'라는 광고때문에 이곳에 와서 우동을 시킨건데?"라고 말하고 계셨다.     


맛보고 싶던 다꽝이 없다는 허탈함 때문일까. 아버지는 급속도로 컨디션이 안 좋아지셨다. 이 모든 게 다꽝떄문이다.


"다꽝 있읍니다" 라는 광고판 때문에 들어갔던 일식집이었는데
아버지의 컨디션이 안좋아진 건 다 '다꽝'때문이다. 그는 정종으로 컨디션을 조금 달랬다고 한다.


부모님은 3년전 우리의 결혼식이 있으신 직후 독일 여행을 다녀 오셨다. 3년 뒤 아들내외와 함께 다시 방문해서 비포,에프터를 찍어보았다.
크리스마스에 로텐부르크에 온다면 더 느낌이 날 것 같다. 이곳에는 아주 유명하고 큰 크리스마스용품 가게가 있기 때문.
로텐부르크를 아름답게 만드는 건 무엇보다도 서로가 조화로우면서도 다른 색을 지닌 가옥이다.
한국에서도 한 때 유행했던 독일 전통빵 '슈니발렌'
뉘른베르크로 돌아가는 길, 아름다운 남부 독일의 풍경.
<90일 유럽자동차여행> 서른여섯번째 도시. 독일 로텐부르크(Rote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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