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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istgon May 20. 2020

낯선 남자에게서 낯선 냄새가 난다

멜로와 스릴러 그 어디쯤

'할 수 있다!'

거울을 보며 스코키에 있는 낯선 남자를 만나러 떠나는 나 난다신은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실상은 내 머릿속은 '그것이 알고 싶다'의 수많은 미궁 속 범죄 장면들이 떠올랐다. 뭐 집 하나 보러 가는 거 가지고 그렇게 겁을 먹고 비장하냐 물을 수 있겠지만 아무것도 의지 할 것이 없는 나로선 오만가지 잡생각이 밀물처럼 몰려오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내가 의지 할 것이라곤 가족도 친구도 아닌 아이폰뿐이었다.


휴대폰! 지금 휴대폰이 나에겐 가족이요 친구였다.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여 하고 싶은 말을 번역할 수 있으며, 구글 지도를 이용해 가야 할 곳을 찾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 나에게는 내 손안에 작은 세상이 들어있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이런 것일까?


'스코키'를 가기 위한 환승은 CTA를 처음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복잡한 일이었다. 심지어 시카고 사는 사람이 죽을 때까지 가보지 못 한 길일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하자면 서울에서  분당으로 가기 위해 분당선으로 갈아타는 경험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고 말하면 설명이 될 까? 일단 배차간격이 엄청 길 때가 있어 한 번 놓치면 몇십 분을 기다려야 하며, 선로를 따라 목적지를 잘 파악하고 전동차에 적혀있는 행선지를 잘 읽어야 한다. 첫 도전에서 집중력이 상당히 필요한 관문이다.

서울에선 그나마 행선지가 '한글'로 적혀있거나 전광판 및 성우의 안내 역시 굉장히 친절하였지만 시카고 CTA에서 그런 환경을 기대하기란 어렵고 모든것이 내겐 낯설었다.

웃음으로 무장한 난다신의 스코키 방문

일단 구글 지도에서 알려주는 역까지 가서 다음 환승을 위해 하차하였다.

'여기서 갈아타라고 했는데?' 일단 계단을 올라 다른 플랫폼으로 향했다.

'여기가 맞는 건가?' 싶은 약간 똥 싸고 똥 덜 닦은듯한 찜찜한 맘으로 '스코키'라고 적혀있는 '플랫폼'을 향해 용감하게 갔다. 내가 타고 온 전동차가 달리던 철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철로가 펼쳐졌고 나는 그 옛날 이휘재 주연의 TV 프로그램 'MBC인생극장'에서 중요한 결정을 앞에 둔 두 갈림길에 선 사람처럼 두 전동차 사이 통로에 서있었다. 과연, 나는 어느 방향 전동차를 타야 하는 걸까? 실수로 올라탄다면 왕창 지각은 물론, 얼핏 듣기로 실수로 지하철 탔다가 '총기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난다는 시카고 '남부'까지도 가기도 한다는데... (그곳은 보통 성인 남자도 가기를 꺼려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운전을 할 때도 고개를 숙이고 운전을 한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이 자자한 곳!)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을까 두리번거렸다. 참... 그런 와중에도 내 눈은 질문 할 대상으로 잘생긴 외국인을 찾고 있었다. 아마도 인간 생식 본능 때문인 걸까? '이왕이면! 영화배우 같은 사람한테 물어보자!' 싶었던 것이다. 그때 눈 앞에 좀 잘생겨 보이는 백인 남성이 보였다! '한 번 보고 말 사람인데... 혹시 잘 되면 또... 모르지...' 용기를 내 "익스큐즈미! 웨얼 이즈 더 스코..." "디스원"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본인 코앞에 있는 전동차를 가리키며 쌩 하니 전동차로 향했다. 잠깐의 로맨스를 꿈꿨지만 신이 ‘까불지 말라!'는 계시라도 내리는것 처럼 단호박이었다. 외국인과 말을 섞어 본 첫 경험에 스스로 뿌듯해하며 전동차에 몸을 싣고 '스코키'를 향했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창가 자리에 앉아 창 밖 선로를 따라 예쁘게 핀 꽃들을 감상하기도 하면서도 휴대폰 구글맵에서 나의 매의 눈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스코키'에 도착했다.


광고를 낸 남성에게 도착했다고 연락을 하자 역에서 내려 '스타벅스'로 오라고 하였다.

'아마 건대입구나 홍대입구처럼 역 바로 앞에 스타벅스가 있나 보구나.' 하지만 역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맞이한 곳은 황량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느낌상 미국이 아닌 경기도 가평군 어디쯤에 내린 것 같았다. '스타벅스'가 아니라 '역전 다방' 이 어울릴 것 같은 이 동네에서 있을 거 같지 않은 '스타벅스'를 찾느라 똥줄이 탔다. 날이 습하고 더웠는데 역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곳까지 나가 두리번거리다 보니 '스타벅스'가 보였다.

우리나라 '스타벅스'와는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 스타벅스를 찾았겠다 이번엔 '낯선 남성'을 찾는 게 일이었다. 도대체 어떤 남성일까? <남자 셋 여자 셋>에 나오는 '송승헌' 같은 룸메이트는 아닐까? 목소리는 나쁘지 않았는데... 은근히 심장이 쫄깃했다.


"안녕하세요!"

'저 사람이구나!' 그 매장 안에 검은 머리라고는 그 사람 뿐이었다. 키는 컸고 얼굴은 하얀 호감형의 남성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에 들어갔다. '음... 나보다 어린 거 같군. 안심이야.'

"오시느라 고생하셨네요."

서글서글 웃는 첫인상이 나쁘진 않았다.

"생각보다 머네요! 그럼 지금 룸메이트 찾으시는 분이신 건가요?"

너무 당연한 질문인가 싶었지만 할 말이 없어서 던졌다.

"아, 제가 아니고요 제가 살다가 이사를 가서 주인 대신 글을 낸 거예요. 같이 살게 되실 분은 따로 있어요. 여기 살면서 친해진 형인데 오늘 바비큐 파티를 해서 지금 고기 굽고 있어요. 가시면 보실 수 있으세요."

왜 살짝궁 아쉬웠을까... 그건 그렇고! 미국에 와서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 영화에서 보는 그런 바비큐 파티까지 즐기게 된단 말인가? 조금 신나기 시작했다. 청년을 졸졸 따라가 보니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저층 빌라단지가 나왔다. 어느 정도 걷다 보니 건물 들어가는 입구에 서서 작은 바비큐 장치에서 땀을 흘리며 열심히 소시지를 굽고 있는 동양 남성이 보였다.


"여기에요. 형! 연락하신 분 오셨어요."

'스타벅스'에서 만난 청년이 그 앞에 멈췄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손님이 오기로 해서 좀 바쁘네요."

"아. 네 천천히 하세요."

"잠시만요!"

내가 상상한 바비큐 파티의 모습도  룸메이트의 모습도 아니었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집 컨디션이 중요한 거다! 정신 차렷!'

왠지 기운이 빠진 스스로에게 단단히 일러뒀다.

"자. 이제 방을 좀 보여드릴게요."

집주인을 따라 방으로 향했다.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강아지랑 함께 살아도 괜찮냐고 물었다. 화장실은 한 개고 방은 두 개였다. 그러니까 내가 이 곳에 산다면 이 낯선 남성과 화장실을 같이 사용해야 했다. 부엌도 공용 사용이었다. 내가 살게 될 방은 꽤 넓었고 침대도 널찍했으며 해도 잘 들었다. 거실도 큼직했고 휴대용 노래방 기계와 미러볼도 있었다. 흥미로웠다! 하지만 슬슬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낯선 남자와 잘 살 수 있을까?' 지금껏 가족이 아닌 타인과 함께 살아본 적이 없었으며 더러운 공간을 청소하는 일은 전부 엄마의 몫이었다. 강아지도 키웠으나 강아지가 실수로 대소변을 집에 볼 때도 뒤처리는 모두 엄마 담당이었고 나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청결함을 누리고 살았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청소를 하거나 청소를 하라고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될 텐데... 갑자기 스트레스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집주인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나보다 어린 남성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나처럼 어학연수로 시카고에 왔다가 지금은 어떤 사업체의 대표로 있다고 하였다. 나도 원한다면 고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다른 것보다 어학연수생으로 이 곳에 와서 자리를 잡아 대표까지 됐다니 대단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는지 묻는 나에게 웃으며 지금은 말해줄 수 없다고 하자 덜컥 겁이 났다.


"형 00이 왔다네요? 데리러 다녀올게요!"

나를 마중 나왔던 룸메이트가 파티 손님이 왔다며 집을 비웠다. 앞으로 살게 될 낯선 남자와 둘이 공간에 있는데 불편했다. 잠시 후 마중 나왔던 청년이 잘 구워진 소시지와 함께 늘씬한 백인 여자를 데리고 왔다.

파티라고 했는데 초대손님은 저 백인 여성 한 명뿐이었다. 셋은 원래 알던 사이인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테이블엔 핫도그 빵과 감자칩 그리고 소시지가 놓여 있었고 백인 여성 손님이 가져온 맥주를 하나씩 따서 마시며 파티가 시작되었다.

마음이 어려워서 였을까? 어색하던 미국의 비비큐 파티 자리

이미 이들은 나에게는 관심 조차 없었다.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셋은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살짝 취기가 오른 것도 같았다. 주인 남성이 백인 여성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다 슬슬 스킨십을 하면서 여성의 뺨을 어루만졌다. 넋 놓고 구경하던 나도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남의 파티에 껴서 뭐 하는 거야.' 시계를 보니 내가 머무는 동네를 가기 위해서는 지금 나서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구경 잘했다며 다시 연락을 드리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다시 한번 '이 곳에 살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하루빨리 집을 구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극 보수파 한국인 신고은이 살 곳은 이 곳이 아닌 거 같았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집으로 향하는 동안 언니와 엄마와 통화를 하였는데 괜스레 강한 척하면서 살지도 않을 거면서 혹시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 곳에서 남녀가 같이 룸메이트 하는 건 이상한 게 아니야!" 라며 짜증을 냈다.


왔던 길을 터덜터덜 되돌아 가는 내내 앞날이 깜깜하고 막막했다. 이 곳 말고도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사람들 중 내 조건에 맞는 사람들에게 꽤 연락을 돌렸는데 휴대폰은 울리지 않고 있었다... 하루빨리 민폐 생활의 마침표를 찍고 싶었는데 쉽지가 않았다. 그래. 온 지 7일도 안 됐는데 너무 급했나 보다.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면 재미없지!


'카톡!'

그 순간 카톡이 왔다!

'방 아직 안 나갔어요...'

내가 연락했던 곳 중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카톡 아이디와 적어 둔 메모를 대조해 보니 방 한 칸을 사용하는데 한 달에 800불을 내고 살 수 있던 집이었다. 집 주소를 검색해보니 인 오빠의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였다! 이 집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침착하게 심호흡을 하며,

'집 보러 가도 되나요?'

카톡을 보냈다.

'지금은 제가 일 해서 안 돼요... 내일 오세요....'


나는 이 사람의 <....>이 거슬렸다.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도 들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카톡에서 느껴지는 문체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유추할 수밖에 없었는데 문장 끝마다... 을 남기는 것이 영 눈에 거슬렸다.

'왜 마침표를 찍지 않고... 을 찍는 걸까? 우울한 사람인 걸까? 내가 탐탁지 않아서 그런 걸까?'


'아! 그럼 제가 내일 아침 일찍 집 보러 갈게요! 몇 시쯤이 좋을까요?'

'9시 전이요...'

'네! 알겠습니다! 평안한 주말 보내세요! 참! 혹시 여성이신가요 남성이신가요?'

'여성이에요.... 님은요?'

'저도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 ^^'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하여 마지막에 눈웃음 표시까지 빼먹지 않았다.


2시간 정도 소요 끝에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시카고 오자마자 혼자 겁도 없이 나가 돌아다닌 나를 보며 대단하다며 인오빠 가족들은 혀를 내둘렀다. 저녁을 먹겠냐고 물었지만 아까 허겁지겁 주워 먹은 핫도그가 아직 소화가 덜 됐는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대로 방에 들어가서 씻고 침대에 누워 하루를 떠올려 봤다. 힘든 하루지만 모두가 겪는 일이라고 생각해보니 힘들어하는 것도 사치 같았다. 한국에서도 내 친구 중에 어떤 이는  고등학교 때 서울로 상경해 하숙집을 찾아다니며 고생을 했다고 하였다. 그렇게 서울 정착을 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르면서 나는 그저 조금 늦게 겪는 일일 뿐이며 내가 선택한 일이니 기쁨으로 감내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혈혈단신으로 타국에 와서 내가 해내는구나!' 스스로가 대견했다. 물론, 멜로와 스릴러를 정신없이 오갔던 집 구하기 대소동은 허무하게 끝났지만 그날 난 분명 한 뼘 더 자랐다.

동네에 도착하자 어두운 밤이 되었다.

슬슬 난 헐리웃 영화와 미국 생활의 현실은 생각지도 못 할 만큼 크게 다를것이라는 체감을 하게 됐다.


'하나님. 내일은 부디 좋은 집을 만나게 해주세요.'

그날 밤 내가 할 수 있는것은 간절한 기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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