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행복에 대한 입장이 매우 다른 두 사람이 산다. 그 두 사람은 내 나이만큼이나 긴 시간을 함께 해 왔지만 행복을 느끼는 빈도가 현격히 차이가 난다.
일단 이 중 한 사람인 아빠는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빠가 행복을 느낄 때는 가족과 함께 맛있게 식사를 했을 때, 엄마와 운동을 다녀왔을 때, 그냥 하루가 무사히 끝났을 때 등 대부분 소소한 순간들이다.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는 다른 한 사람인 엄마는 특별히 행복한 적이 없단다.
사실 어릴 적 나는 이게 큰 고민이었다. 아빠는 자주 행복하다 말하는데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니 엄마가 불행한 것 같아 걱정이 됐다. 어린아이들이 그렇듯 어린 시절 나는 사랑하는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원대한 소망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냥 평범한 어른이 된 내게는 엄마를 행복하게 해 줄 특별한 재주가 없었고 스스로 행복하기도 힘에 겨웠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나를 위해 이 원대한 꿈을 포기했다. 그리고 인정했다. 나는 사랑하는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역부족이라는 걸...
아마 이 무렵 행복을 남에게 자랑할 만한 일이 많은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를 위해 성공하고 싶었고 노력했지만 성공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고시에 네댓 번 떨어졌을 때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좀 더 편안해졌다.
이때 가장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이는 구 남자 친구이자 현 남편이었는데 그는 다행히도 내 불합격 소식에 타격이 없었다. 그는 내 실패에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에게 미안하지 않았으며 내 실패가 그를 아프게 하지 않아 좋았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성공하고 싶던 중학교 시절, 엄마의 나이가 됐다. 어버이날을 맞아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다 또다시 행복 이야기가 나왔다. 서로 언제 가장 행복한지가 주제였다. 행복꾼 아빠는 항상 행복하지만 하루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냉정한 독수리(?)인 엄마는 행복을 느낄 때는 없지만 청소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실 때 기분이 좋다고 했다. 아빠와 엄마는 비슷한 순간에 한 사람은 행복하다 느끼고 한 사람은 기분이 좋다고 느꼈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엄마, 사람들은 그런 걸 행복이라고 부르는 거야.” 행복을 사전에 검색하면 두 가지가 나온다. 하나는 복된 좋은 운수, 하나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를 말한다. 아마도 아빠는 후자를 엄마는 전자를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와 돌아보니 엄마와 아빠는 모두 옳았다. 다만 엄마는 아빠의 행복을 ‘기분이 좋다’ 정도이지 ‘행복’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약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어떠한가? 나는 행복이 성공이라고 믿었다.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거리가 많은 상태, 그런 게 행복인 줄 알았다. 얼레벌레 마흔이 되어 버린 지금 나는 부끄러울 일도 없지만 남에게 딱히 자랑할 만한 대단한 일도 없다. 그렇지만 행복하다.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남편과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할 때이다. 하루를 마치고 잠이 들기 전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순간은 행복하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다는 행복감과 오늘 하루도 잘 살아냈다는 생각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행복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을 뿐, 과거에는 엄마처럼 행복을 특별한 무언가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행복을 흐뭇함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뭐가 더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는 지금 행복하다. 문득 어린 시절 유명했던 영화 제목이 떠오른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행복은 정말 성적순이 아니었다.
행복은 그냥 마음속에 있는 거였다.
와 이걸 깨닫는데 25년이 걸리다니... 세상에는 시간이 많이 지나야 알 수 있는 일들이 있다. 25년 전의 나를 만난다면 아마도 꼰대처럼 이야기해 주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행복은 절대 성적순이 아니야’라고 말이다.
그리고 또 못 깨달으면 어떠랴? 환갑이 넘도록 ‘기분이 좋다’는 느끼지만 행복함은 별로 느껴 본 적이 없다는 우리 엄마는 아빠와 나의 행복 바이러스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 가정의 행복지킴이 엄마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