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즐거움 받는 기쁨
어른이 되어 달라진 것 중 하나는 가지고 싶은 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작은 것에도 신이 났던 어린 시절과 달리 별로 가지고 싶은 게 없다. 가지고 싶은 게 줄어든다는 건 작은 행복(소확행)이 줄어든다는 것과 같다. 소확행은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라는데 이건 당최 소소하게 행복할 일이 없다.
선물로 들어가면 문제가 한층 심화된다. 아무래도 선물이라는 게 예산제약이 있기 마련이고 정해진 예산 하에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선물을 고르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이 선물로 현금과 상품권을 1등으로 꼽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랑하는 이들의 생일이 되면 현금이나 상품권이 아닌 선물을 직접 고른다. 베스트가 아니더라도 선물을 고르는 시간만큼 선물 받을 사람을 생각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카카오톡 선물하기다 일상이 된 요즘도 선물을 직접 골라 택배로 집으로 직접 보낸다.
택배비는 조금 비싼 우편료라고 생각한다. 예상치 못한 택배상자를 받는 작은 기쁨이라도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손글씨로 쓴 편지를 동봉한다. 약간 유치할 수도 있지만 생일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사랑한다는 말을 꼭 덧붙인다. 1년에 한 번씩 글씨로 그 마음을 전하기 위해 선물하는 것처럼.
나는 이게 마음을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물은 주는 기쁨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고른 선물이 100퍼센트 유용하기란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나이가 먹고 잘 사는 친구들이 많아질수록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준 선물이 필요한 거긴 했을까?' 게다가 나이가 먹다 보니 사랑하는 친구들의 취향에 대해 점점 모르게 되는 느낌이었다. 매일 같이 밥을 먹던 사이에서 일 년에 한두 번 밥을 먹게 된 사이가 될수록 뭐가 필요한지 뭘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작은 선물이 받는 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이 없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사진을 찍던 지인이 이사를 가며 준 선물에 매우 좋아하는 나를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지인이 준 선물은 직접 만든 천으로 된 선글라스 케이스였다.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 천에 예쁘게 수가 놓여있었다. 이 선물을 받고 나는 함께 있던 사람들이 놀랄 만큼 엄청나게 기뻐했다.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우선 선글라스 케이스가 필요했다. 단단한 하드케이스 말고 휴대하기 좋은 천으로 만든 케이스인 점이 좋았다. 보라색인 것도 좋았다. 예쁘다. 수가 놓인 것도 좋았다 정성이 듬뿍 느껴져 고맙고 행복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며칠 전 만남에서 내가 그분의 작품들을 보다 선글라스 케이스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한 것을 기억해 줬다는 사실이다. 그 선물을 받자마자 알 수 있었다 왜 그 선물을 골랐는지.
그렇게나 좋아했던 내 모습이 생경하기까지 했던 그날로부터 몇 달 뒤, 글쓰기 동아리 모임 낭만살롱 멤버들로부터 생일선물을 받게 됐다. 낭만살롱에 가입한 지는 고작 두 달, 아직 서로를 잘 알지고 못하는데 생일이라고 선물을 받게 됐다. 이 동아리는 멤버들 생일에 1만 원 이하의 선물을 하는 전통이 있다고 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생일 선물을 받게 된 게 영 쑥스럽던 나는 막상 선물을 받으며 완전 신이 났다. 나도 모르게 연신 행복하고 신이 난다는 말도 계속해서 "솔직하고 잘 행복해하는 것 같다"는 말도 들었다. 아 아닌데... 솔직한 건 맞지만 나 되게 시크하고 쉽게 행복해하지 않는 까다로운 여잔데..."
이날도 나는 진짜 이상하리만치 좋았다. 뭐랄까 여러 명에게 선물을 받는 느낌이 좋았다. 평소에 돈 아깝다고 낭비라던 꽃을 받은 것이 가장 좋았고 취향에 맞는 녹색 펜도 겨울철 필요한 핸드크림과 필요했던 양말과 원래 좋아하는 초콜릿까지 모든 게 좋았다.
마지막으로 선물을 두고 멤버들과 사진을 찍은 것도 좋았다. 평소 사진 찍히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 나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신이 나고 즐거웠다. 그 자리에서 선물 받고 엄청 좋아했던 그 사람은 누구일까? 내가 맞긴 한 걸까? 아마도 나는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약간 시크하고 무심하며 냉정한 나는 어디로 간 걸까? 아니면 애초에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걸까? 하여튼 이렇게 무심결에 잃어버렸던 소확행을 되찾았다.
지금의 나는 다시 작은 선물에도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문득 내가 보낸 택배를 받았던 친구들 반응이 떠올랐다. 내가 보낸 선물 속 편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며 "엄마를 이렇게 아끼고 사랑해 주는 친구가 있다고 아들에게 자랑했다"던 너를. 지친 하루 끝에 내 택배를 받고 행복하다며 "고맙고 고맙다"며 연거푸 이야기했던 너를. 내가 보낸 꽃을 화병에 꽂은 사진을 보내며 "행복하다"라고 웃었던 너를.
내가 보낸 작은 선물에 행복해해 줬던 소중한 사람들, 선물은 주는 행복이 다가 아니었다. 마음을 담은 선물을 받는 기쁨은 주는 이의 마음이 더해져 더욱 커진다.
마흔, 선물을 받는 기쁨에 대해 다시 배우는 나이다.
나에게 받는 행복을 알려준 낭만살롱 멤버들과 명구언니에게 이 글을 바친다.
고마워요 예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