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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Nov 01. 2020

얼이 어린 날들

여덟 살 엄마의 받아쓰기.


얼이 어린 날들.


1. 아이 '얼이'의 어린 시절.

2. 영혼이 스며든 나날.




-



오랜 습관이 하나 있다. 선명한 첫 기억은 여덟, 아홉 살 즈음이다. 일상이 뒤죽박죽 해도 거르지 않고, 아무리 바빠도 건너뛰지 않는 습관. 그것은 바로 일기를 쓰는 것이다. 근사한 일기장에 쓰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이야기를 적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 매일 쓴다.

어릴 적부터 무엇이든 기록하고 모으기를 좋아했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을 적어두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을 모았다. 다른 규칙이나 기준은 없다. 온갖 자잘한 문장과 단어를 적어 넣었다. 갈피에는 아끼던 스티커와 갖고 싶던 운동화의 가격표, 길가에 떨어져 있던 낙엽을 한데 어울려 끼워놓았다. 매일 나의 생각과 감정이 거기에 담겼다. 어린아이가 작은 보물상자를 자기만의 소중한 물건으로 채우는 것처럼 일기는 지금까지도 나에게 납작한 보물상자가 되어준다.


학생일 때는 학교 얘기가, 직장생활을 할 때는 업무 관련 내용이, 여행 중에는 일정과 감상이 빼곡하게 채워졌다. 내가 머무는 세상이 달라질 때마다 언어도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새로운 언어가 그 안에 담기기 시작했다. 얼이를 낳고 엄마가 된 이후의 일이다. 아이는 착실하게 이 세상의 말을 배워나갔고, 나는 아이의 말을 매일 받아 적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나의 언어였으나 이제는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말들이었다.

얼이는 말이 느렸다. 음마, 아빠. 아이가 처음 입 밖으로 꺼내놓은 단어들이 너무 신기하고 귀해서 나는 그 조각을 들어 올려 하나하나 일기에 적어두었다. 받아쓰기가 시작되었다. 꽤 오랫동안 한 음절이었던 말은 아주 천천히 조금씩 길어지더니 마침내 문장이 되었다.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알아듣지 못하던 소리의 조각들은 점차 이해할 수 있는 형태가 되었다.


아이는 자라 올해 여덟 살이 되었다. 우리는 유치원 졸업식이 끝나고 학교에 입학하기 전 짧은 여행을 계획했다. 그러나 그 여행은 가지 못했다. 아이의 첫 사회를 떠나보내는 졸업식은 부모가 지켜보지 못하는 가운데 치러졌고, 입학식은 계속 미뤄졌다. 그럼에도 아이의 매일은 흘러갔다. 얼이는 한글을 배우고 글씨 쓰는 것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우리는 함께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고, 자연히 나는 여행에 관한 글을 썼다. 그 이야기는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지루한 여행을 떠났으면 해.' 일상 같은 여행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올해는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왔다. 얼이와 나는 날마다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있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나의 받아쓰기는 계속되었다. 그때 내 글에 나의 관심과 일상이 담겼듯, 이제는 우리 대화가 내 글의 질료가 되었다.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의 언어를 빚어 감동과 공감을 주는 것이 좋은 글이라 생각해왔다. 그것이 '시'라고.

사람 안에 우주가 있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겠다. 날마다 아이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고 그 세상을 들여다보며 지루하지 않았다. 모든 순간이 새롭고 재밌고 놀라웠다. 얼이에게, 얼이와 함께 배웠다. 아이는 미완의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낯선 곳에 간다고 해서 존재가치가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아이를 기르는 것은 어린 시절을 다시 사는 특권을 누리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이 특별한 기회를 감사히 누렸다. 날마다 서툴게 시를 받아 적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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