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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Oct 24. 2021

코로나 시대의 여행과 일상


글. 이지나



모든 것은 한순간에 달라졌다. 갑자기 몰려온 구름이 하늘을 덮듯 우리 삶의 모든 일상에 짙은 그늘이 드리웠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완전히 달라진 세상을 살게 될 것이라고. 나를 지키고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멈추고 물러섰고 간격을 두었다. 이제는 얼굴을 가리지 않고 여행하던 몇 년 전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낯설고 어색하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많은 것이 사라졌다. 이제 낯선 사람과 맨얼굴을 맞대는 일은 없다. 우리는 여행을 잃어버렸다.


2019년 겨울. 우리 가족은 집에서 연말을 보냈다. 매년 12월 끝자락이면 남은 연차로 생긴 휴가에 가족여행을 떠났는데 그해에는 어쩌다 보니 아무 데도 가지 않게 되었다. 오래 탔던 차를 바꾸면서 큰 지출이 있기도 했고 기간에 딱 맞는 특가 항공권을 놓쳤으며 무엇보다 다음 해에 여러 여행 계획이 있었다. 우리는 숨을 고르기로 했다. 2020년은 잠잠하게 왔다. 얼이는 여덟 살이 되었고 유치원 졸업과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겨울은 길고 봄은 더뎌보였다. 우리는 이내 짧은 여행을 궁리했다. 봄이 되기 전 아주 잠깐 가까운 곳으로 다녀올 생각이었다. 고민 끝에 홍콩행 항공권을 예약했다. 항공권을 검색하다 중국 일부 지역에서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병이 발생하고 있다는 짤막한 기사를 처음 보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매일 새로운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점점  많은 기사가 뜨더니 나중에는 찾아보지 않아도 소식이 전해졌다. 지역명으로 불리던 증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름이 붙여졌다. 기사에 첨부된 지도  일부 지역은 마치 까맣게 불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저기 불티가 튀는가 싶더니 마른 들불 같은 속도로 주위를 태우듯 번져갔다. 초반에는 중국 해당 지역으로 향하는 항공편이 하나둘 취소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태의 심각성이 크게 와닿지 않았고 그저 다른 나라 일처럼 느껴졌다. 홍콩행 항공편도 시간이 조정되었을  아직 그대로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 여행은 취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불이 불가한 항공권이었던 터라 항공사와 통화를 하고 상황과 사정을 설명하는 장문의 이메일을 적어 보냈다. 그때는 이것이 세계적인 염병의 전조인  알지 못했다. 1 말이 되자 국내에서도 확진자가   명씩 발생했다. 1, 2... 숫자로 명명된 확진자의 거주지와 동선은 언론을 통해 낱낱이 공개되었다.


2월이 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우리는 이전과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유치원 아이들의 인생 첫 졸업식은 엄마 아빠가 참석하지 못한 채로 진행됐다. 단비는 얼이의 입학 선물로 빳빳한 책가방을 사서 집으로 보냈다. 그러나 입학식은 계속 미뤄졌다. 5월이 끝날 무렵에야 얼이는 처음 학교에 갔다. 날은 초여름에 접어들고 있었다. 겨울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여름이었다. 희나가 얼이에게 사준 실내화는 그동안 작아져서 새로 사야 했다. 그나마도 작년에는 거의 학교에 가지 못했다.

기억 속 작년의 배경은 대부분 집이다. 연초 홍콩행 항공권을 시작으로 우리는 계획한 여행을 차례로 모두 취소했다. 여행은 커녕 단비와는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2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일상은 빠른 속도로 바뀌었고 우리는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얼이와 매일같이 집에 있었지만 마음껏 나갈 수도 없었다. 확진자가 늘어나고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가면서 놀이터와 공원에도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적힌 가림줄이 둘러졌다. 우리는 집에 갇혔다.


그 틈에 여러 뉴스를 보았다. 초반 마스크 부족으로 인한 혼란,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타격, 텅 빈 거리와 닫은 가게, 한강변의 붐비는 술자리, 마스크로 입모양이 보이지 않아 아이들의 언어발달이 지연되고 있다는 얘기와 청각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 타격을 입은 업계와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혐오범죄, 선진국들의 백신 공급 선점과 백신 거부 시위 소식이 동시에 들려온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넘어가도록 우리를 덮친 구름은 아직 걷히지 않았고 그 그늘은 곳곳에서 균열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틈에서 빛이 비치는 것을 본다. 땀을 쏟아내며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의 모습에서, 도시 전체가 락다운 되고 모두가 집 밖으로 나올 수 없을 때 발코니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사람들을 보며, 호황을 맞은 업계와 현시대로 인해 빠르게 개발되고 공급되는 기술, 사회 전반적으로 나아진 위생, 전 세계가 멈춰있는 동안 환경오염이 개선되고 있다는 소식에서. 우리는 침몰하던 타이타닉호에서도 울려 퍼졌다는 아름다움을 듣는다.


우리가 지금 잃어버린 것은 당장 전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얼마나 잃어버린 것인지 다시 되찾을 수 있을지 아니면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 그것 또한 알 수 없다. 코로나19 이전 여행에 대한 기억은 이미 아득하다. 비행기가 지상을 벗어나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순간을 좋아했다. 이륙을 기다리는 창밖으로 비가 쏟아지다가 비행기가 날아오르고 구름을 벗어나는 순간 거짓말처럼 개이던 하늘이 펼쳐지던 장면이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난봄, 이제 이전의 세상으로 복귀하는 것은 어렵다는 내용의 브리핑을 듣던 날이 생각난다.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둔중한 소리가 났다. 여행의 풍경이 달라지는 것을 봐왔다. 종이 지도와 얇게 잘라낸 가이드북을 들고 다니다 스마트폰으로 순식간에 옮겨왔고, 항공 보안도 시간 위에 찍힌 어떤 점들을 기준으로 많은 것이 제한되고 엄격해졌다. 코로나19 역시 어떤 면에서 우리를 영원히 바꾸어 놓을 것이다.


손원평 작가의 소설 ‘아몬드’를 보면 주인공 소년이 ‘엄마는 어지러운 벽지 무늬 속에서도 별자리를 찾아내는 사람이었다’는 표현을 한다.* 나는 그 문장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 문장의 위치가 이야기의 결말을 알 수도 없고 희망도 보이지 않는 책의 한가운데여서 더 좋았다. 사람들은 끝을 모르는 어두움 속에서도 낙담과 좌절을 엮어 시를 짓고 수를 놓는다. 드리운 구름 아래 서서 그 위에 분명히 있을 맑은 하늘을 나는 다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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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몬드> 손원평, 창비. 16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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