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단비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던 이야기 중 하나가 갑갑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원래 집에 있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1년이 넘어가니 그제야 답답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즈음 친구와 함께 저녁마다 가벼운 밤 산책을 나갔다. 로스앤젤레스는 평소에도 저녁 8시면 문을 닫는 상점이 대부분인데 코로나19가 심해지니 아예 식당이 많이 없어졌고 밖에 나가 밥을 먹으려고 해도 대부분 테이크아웃만 가능했다. 가게들이 모조리 문을 닫으니 마땅히 갈 곳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황하던 때 우리가 찾은 대안은 마켓이었다. 생필품을 판매하는 마켓은 그나마 늦은 시간까지 열려있었고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때우기에도 적격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는 기분과 상황에 따라 골라서 갈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마켓이 있다. 마켓마다 분위기나 특징이 다르고, 주로 파는 물건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언니는 로스앤젤레스에 올 때마다 그 점을 흥미로워하며 이 물건을 사려면 어느 마켓에 가면 좋은지 현지인이 느끼는 각 마켓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묻곤 했다.
쇼핑을 하고 싶을 때는 타겟 Target, 식자재를 살 때는 홀푸드 Whole foods 혹은 갤슨스 Gelson’s, 생필품을 살 때는 가까운 랄프스 Ralphs나 본즈 Vons를 이용한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자주 가는 마켓은 타겟이다. 타겟은 미국 어느 지역을 가도 만날 수 있는 대형마켓 체인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뿐만 아니라 언니와 얼이랑 포틀랜드로 여행을 떠났을 때도 숙소에 짐을 풀고 제일 먼저 간 곳은 타겟이었다. 어느 도시에 가도 커다랗고 동그란 빨간 점이 눈에 띄면 그곳에 타겟이 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타겟에서는 식자재부터 옷까지 모든 종류의 생필품을 판매한다. 이사를 하고 간단한 가구가 필요할 때도 나는 이케아보다 타겟에 먼저 갔고 친구들의 생일에는 타겟에서 파티용품과 간단한 선물을 사기도 한다. 가끔 해리포터 레고 피규어를 사는 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기분 좋은 쇼핑이다. 가족들이 여행을 왔을 때도 타겟에 종종 들러 필요한 물건을 유용하게 구입했다. 가격이 합리적이고 퀄리티 역시 무난해서 누구나 만족할만한 쇼핑을 할 수 있다.
식자재를 구입할 때는 주로 홀푸드에 간다. 홀푸드는 유기농 제품을 판매해서 비싸다는 인식이 있고 그래서 처음에는 잘 가지 않았다. 실제로 유기농 식재료가 많이 갖춰져 있다 보니 가격대가 조금 높은 것은 사실이다. 예전에는 물건을 구입할 때 기준이 가격 우선이었지만 이제는 나도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한국도 점차 그렇듯 미국에서도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무엇보다 나는 혼자 살다 보니 식재료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이제 대부분 식자재는 홀푸드에서 유기농 제품을 구입한다. 집에 가서 밥을 차려먹기 귀찮은 날에는 퇴근길에 홀푸드 샐러드바를 이용한다. 각종 샐러드와 피자, 조리된 음식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고 종이 박스에 담아 무게로 계산한다. 취향껏 원하는 만큼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 물론 맛도 훌륭하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꽃을 한 다발 산다. 미국의 마켓에서는 규모와 상관없이 대부분 꽃을 판매한다. 그것도 주로 입구에, 밀가루와 과일만큼 중요하고 눈에 띄는 자리에 놓여있다. 꽃을 좋아해서 마켓에 가면 꼭 살펴보는데 홀푸드는 항상 싱싱하고 다양한 꽃을 가져다 놓는다. 한 다발에 5불부터 10불을 넘지 않는 게 대부분이라 그날의 기분과 날씨에 따라 꽃을 고른다. 꽃다발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벌써 기분이 좋아진다.
물이나 휴지, 세제 같은 기본적인 생필품을 살 때는 랄프스나 본즈 같은 로컬마켓을 주로 이용한다. 기본 생필품은 품질이나 가격이 비슷하니 굳이 집에서 먼 다른 마켓에 가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간다. 이런 생필품은 오히려 로컬마켓이 더 저렴할 때도 많다. 혼자 생활하면서 불편한 것 중 하나는 식수를 구입하는 일인데, 차가 없을 때는 5분 거리를 24개짜리 물 한팩을 들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20분이 넘게 걸어오곤 했다. 그래도 차를 산 후에는 귀찮고 힘들던 물 사는 일이 조금이나마 수월해졌다. 그보다 더 좋아진 건 요즘은 마켓에서도 배달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순기능이라고 할까. 코로나19 이후 미국에서도 배달 서비스가 굉장히 많아졌다. 특히 비대면 배달 서비스가 가능해져서 마켓에서 물을 구입하면 정해진 시간에 집 앞에 물을 두고 간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린 기분이다.
언니는 미국에 오면 거의 매일 다른 마트에 간다. 마트를 구경하는 게 제일 재미있다고 했다. 각종 물건과 패키지를 구경하다 보면 관광지나 박물관보다 생생하고 다채로운 지금 이 순간의 로스앤젤레스가 보인다고 했다. 굳이 나처럼 마켓을 구분해서 다니지 않아도 된다. 어디를 가도 필요한 물건은 대부분 있고 가격도 별반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이곳을 잘 몰랐고 어디를 가야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차도 없고 여기저기 돌아다니지도 못할 때 자주 찾아갔던 곳이 집 주변 마켓들이었다. 나에게는 마켓은 놀이터였다. 오늘은 랄프스를 갔다가, 내일은 본즈에 가보고, 다음 주에는 조금 더 먼 타겟과 홀푸드를 구경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여기가 싼 지 저기가 더 싼 지 계산하고 고심하며 골랐다. 그렇게 쇼핑을 하면서 조금씩 이 도시를 마음에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