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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Oct 24. 2021

도시가 이방인을 대하는 또 다른 방법


글. 이단비



퇴근 후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한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 아빠와 통화를 하며 전철에서 내려 집으로 향했다. 매일 걷던 길이었다. 그날따라 유독 사람이 없다거나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모든 게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똑같았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저 멀리서 한 사람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이 지나가기에 좁은 길은 아니었지만 길을 내줘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자연스레 옆으로 살짝 비껴 걸었다. 그렇게 그 사람을 지나치려는 순간. 무언가 엄청난 충격이 내 머리를 내리쳤다. 나는 그대로 머리를 감싸 쥐며 거리에 주저앉았다. 스쳐가던 사람이 나를 때린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무엇인지 모를 둔기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았고 쓰러진 나를 향해 그 사람은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퍼붓다 이내 사라졌다. 고통과 공포에 떨던 나는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며 더 맞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일을 엄마 아빠에게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참지 않고 아빠는 마음 아파할 것 같았다. 나는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엄마 아빠가 슬퍼하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언니들과 동생에게만 얘기했는데 다들 크게 걱정하고 분노했다. 특히 언니는 나만큼 아프고 속상해했다. 내게 벌어진 일은 코로나19 이전이었지만 그 후로 서구권에서 아시아인을 향한 폭력 범죄가 있을 때마다 넌지시 염려를 비추며 내게 조심하라고 했다. 하지만 언니도 나도 안다. 이것은 ‘조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그날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엄청난 고통과 충격에 머리를 감싸고 넘어져있던 그때 한가족이 나에게 다가왔다. 지나가는 차에 타고 있다가 그 상황을 처음부터 본 듯했다. 그 가족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내게 손을 내밀며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고 해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던 차는 이미 만석이었는데도 부인은 부랴부랴 뒷좌석으로 옮겨가며 나를 차 안으로 인도했다. 카시트에 앉아있는 작은 아이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괜찮아요?". 아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괜찮다고 대답했다. 아이 아버지는 본인 핸드폰으로 경찰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격양된 목소리로 지금 매우 심각한 상황을 목격했으며 안전을 위해 나를 이동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분들은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경찰이 올 때까지 내 옆을 지켜주었다.


그 일은 내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나는 한동안 매일 우버로 출퇴근을 하다가 결국 차를 샀다. 그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하지만 그날이 내게 악몽으로 남지는 않았다. 낯선 사람에게 이유 없이 맞았지만 낯선 이들에게 이유 없는 도움도 받았다. 그날을 생각하면 이제 나는 먼저 다가와 선뜻 본인의 자리를 내어주던 부인과 경찰에게 상세하게 상황을 설명하던 아버지, 그리고 내게 괜찮냐고 물어봐주던 아이. 나는 이들을 더 오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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