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고비

캄보디아에 가다 2

by 빈땅

아이가 캄보디아에서 어린이집을 다니던 시절, 아이 영어교육에 있어 두 번의 고비가 있었다.


첫 번째 고비는 어린이집을 다닌 지 3개월 즈음되었을 때 찾아왔다. 수줍음이 많은 탓에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말도 잘하지 않고 낯을 가리는 편이지만 집에서는 누구보다 잘 웃고 활달한 아이인데, 어느새 아이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싫다는 표현을 하거나 울지는 않았지만 어린이집을 갈 때 표정이 너무 어두웠고 집에 와서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담임도 이를 이상히 여겨 오히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냐고 물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말을 하지도 않고, 노래도 따라 부르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아직 아이가 한국어로도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할 때이다 보니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상황은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아무래도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가 문제겠다 싶어 어린이집에서 동요(nursery rhymes)라도 신나게 따라 부르라고 때마침 다가온 겨울방학 기간 동안 동영상을 많이 틀어주었는데, 어라? 방학을 끝내고 어린이집에 돌아가서는 곧잘 동요를 따라 하며 아주 신나 하더란다.


역시 아이가 우울했던 건 '언어'가 문제였다. 어리면 어릴수록 영어를 쉽게 습득할 수 있다고 들었고 나조차 그렇게 믿었는데, 현실은 어린아이에게도 외국에 살며 외국어를 배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간 아이가 받았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니 미안하고 많이 안쓰러웠다.


당시 애용한 사이트는 바로 Mother Goose Club. 알록달록 각양각색의 의상으로 분장한 친구들이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동요를 들려준다.


Mother-Goose-Club-Main.png


두 번째 고비는 1년쯤 지나 4세 반으로 올라갈 무렵 찾아왔다. 아이를 다국적 어린이집에 보내기는 했지만 2년이 지나면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 모국어 발달이 중요하단 생각에 집에선 '영어'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어린이집 담임이 틈만 나면 나연이가 1년이 지나도 말을 하지 않는다고 걱정스러운 맘을 전해왔다.


그제야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아내와 현지 서점에 가서 아이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영어책도 사고 애니메이션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엄마와 아빠도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영어에 노출되는 환경을 늘리니 아이도 자연스레 반응하기 시작했다.


당시 아이가 영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줬던 책이 바로 'Bubble Trouble (비눗방울 대소동)'이란 책.

Bubble_trouble.jpg

닥 맥스터핀(Doc McStuffins)이란 애니메이션의 여러 에피소드 중 하나를 책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대부분의 내용은 흰 가운을 걸친 주인공 닥이 장난감과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요술 청진기를 가지고 여러 다양한 상황에서 고장 난 장난감들을 고쳐준다는 이야기. 책을 읽어준 후 같은 내용의 에피소드를 포함해 닥 맥스터핀 전체 시리즈를 구해 보여줬더니, 그 효과는 배가 되었다.


이후 아이는 아빠가 회사에 가고 나면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를 안방 침대로 불러 토끼 베개를 앉혀 놓고는 청진기 장난감을 들고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닥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주제가이다시피 한 "Time for your check up(진찰할 시간이에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침대에서 방방 뛰었고, 집 안에 있는 장난감들을 하나하나 가져와 여기저기 검사를 한 후 다 낳았다고 판단되면 'I feel better (다 나았어요).' 노래를 연이어 부르는 식으로.


그래서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말을 하기 시작했냐? 아쉽지만, 대답은 아니요;


아이는 집에서 엄마, 아빠와 영어로 곧잘 대화하면서도 어린이집에서는 돌아오는 그 날까지도 끝내 입을 거의 열지 않았다. 아무래도 외국인으로만 둘러싸인 다국적 어린이집이란 환경이 아이에겐 많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모든 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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