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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y 28. 2024

노잼도시 대전에 왜 간겨? (feat. 성심당)

성심당은 거들뿐인 1박 2일간의 대전 여행기

2024년에는 매월 한 가지씩 평생 안 해봤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프로젝트 중이다. 5월의 목표는 <성심당 가기>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보름 만에 대전으로 내려가 몇 년을 살다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워낙 어릴 때라 대전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하지만 언젠가 대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으며 살았다. 가끔 일이나 가족 혹은 지인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찍먹’ 수준으로 들린 적이 있을 뿐이다. 경기도민에게 대전은 두어 시간이면 닿는 곳이지만 ‘가고 싶은 여행지‘에 순위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심상치 않은 성심당 열풍에 스멀스멀 대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대전에 살아 본 적도 있고, 성심당 빵도 먹어 봤지만 정작 성심당에는 가본 적이 없다. 노잼 도시 대전을 떠올리면 성심당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가끔 선물 받은 성심당 빵을 씹으며 생각했다.


대전은 대체 어떤 곳일까?


대외적인 첫 번째 목적은 대전 외곽에 잠들어 계신 외할머니 산소에 가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평생 해 온 일을 정리하고 은퇴한 부모님의 코에 콧바람 좀 넣어 드릴 여행이었다. 간 김에  이맘때 절정이라는 한밭 수목원 장미 축제도 가면 좋겠다 생각했다. 집 근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한 버스는 2시간 30분 후 우리를 대전 복합터미널에 내려줬다. 한반도의 중심이라서일까? 어마어마하게 큰 버스 터미널 크기에 살짝 위축됐다. 일단 택시를 잡아타고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몇 년 전 갔을 때는 나무 덤불이 무성했던 것 같은데 말끔하게 정리되어 산소 가는 길이 한결 수월했다. 집에서부터 챙겨간 과일과 포로 상을 차리고, 술을 따라 놓고 절을 했다. 엄마, 아빠는 자주 오지 못해 죄송하다며 잡풀을 뽑고, 산소를 정리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기억이 없어서일까? 두 분을 보며 먼 훗날 두 분의 (산소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산소에 와서 잡풀을 뽑을 내 모습을 상상했다. 간단하게 인사를 드리고 정리하고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택시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추모공원에서 멀지 않은 장태산 휴양림. 굳이 등산을 하지 않아도 그림 같은 메타세콰이아 숲에서 산책을 할 수 있다기에 허리와 무릎이 온전하지 않은 두 분을 위해 택한 곳이다. 휴양림 근처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먹은 후 소화 시킬 겸 장태산 휴양림 산책을 했다. 정성스럽게 가꾼 나무들이 빽빽했고, 평일 오후임에도 도시락을 싸서 피크닉 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대전에 살았다면 시간이 될 때마다 오고 싶을 만큼 평화롭고 공기 좋은 곳이었다.      


다시 시내로 나와 부모님이 가보고 싶다 했던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40여 년 전 엄마 아빠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여행 가면 그 지역의 시장을 돌아보는 걸 좋아하는 여행자에게 필요한 코스였다. 중부권 최대의 시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시장을 한 바퀴 도는 데만 해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 큰 시장이었다. 대전을 떠나온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순대를 먹을 때마다 ’ 대전 중앙시장‘ 순대 맛을 극찬하던 부모님의 추억을 찾아 순대 골목으로 들어갔다. 수도권에서 흔한 당면 순대와는 달랐다. 채소와 선지가 듬뿍 들어간 채소 순대, 막창 순대와 부속 고기를 가득 담은 모둠 순대 한 접시를 비웠다. 순대 삶은 물(혹은 육수)에 양념 소금을 살짝 타서 종이컵에 내주는 게 이색적이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시내에서 살짝 떨어진 대전 컨벤션 센터 인근의 롯데 시티 호텔 대전. 그곳을 숙소로 잡은 이유는 단 하나, 성심당 때문이었다. 성심당 DCC점이 방에서 바로 보일 만큼 가까운 곳이다. 가족 중에 홀 케이크 하나를 온전히 다 먹을 대식가가 없어 화제의 인기템, 망고시루를 살 계획은 없지만 궁금했다. 성심당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멀지 않은 곳에서 편안하게 지켜보고 싶었다. 호텔에서 잠시 쉬다가 저녁을 먹은 후 근처 한빛탑에서 음악 분수쇼가 시작되기 전 성심당에 들렀다. 저녁 7시가 넘어 대부분 빵이 매진이었지만 튀김 소보로나 단팥빵처럼 유명템들은 여유가 있었다. 더 눈에 띄는 건 쓸어 담듯 많은 빵을 사 가는 사람들이었다. 왠지 조바심이 나서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야식으로 먹을 빵 몇 개를 집었다. 계산대 점원의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 어? 왜 이렇게 싸. 성심당의 은혜를 지갑이 먼저 체감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성심당 오픈 시간인 8시에 맞춰 숙소에서 나왔다. 호텔 조식 메뉴를 신청하지 않은 건 다 성심당 때문이다. 코앞에 성심당이 있는데 굳이 조식이 필요할까? 성심당 DCC점은 구매한 빵을 바로 먹을 수도 있고, 브런치 메뉴도 주문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숙소에서 지켜보니 7시 30분부터 슬슬 줄이 길어지고 있었다. 오픈 시간은 8시지만 망고시루를 사려는 사람들이었다. 어차피 나는 망고시루 케이크를 살 생각이 없으니 느긋하게 가도 되지만 그 분위기가 궁금해 미칠 거 같았다. 걸음이 느린 노년의 부모님을 재촉하며 성심당에 도착했다. 이제 막 오픈한 매장 안은 빠른 속도로 빵이 채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람들은 빵을 쓸어 가기 시작했다. 개별 포장된 대표 메뉴 부추 판타롱, 튀김 소보로, 고구마 튀소, 초코 튀소뿐만 아니라 케이스에 담긴 롤케이크, 순수 마들렌, 부르스 약과 등 단체 식사용인지, 선물용인지 모르겠지만 채우기 무섭게 빠졌다.      


그걸 보고 있자니 덩달아 마음이 급해졌다. 아침 식사용으로 밥덕후 아빠를 위한 김치찹쌀 주먹밥과 소금빵, 엄마와 나를 위한 애플 브리치즈 샌드위치와 이탈리안 샌드위치, 그리고 망고시루 미니 버전인 ’ 떠 망고‘ 골라 계산 후 브런치 카페로 향했다. 그곳에서 주문한 음료를 곁들여 아침 식사를 했다. 우리가 앉은 곳에서는 안쪽에서 직원들이 빵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빵을 사려는 사람들로 매장 안은 아침부터 전쟁이었고, 안쪽 주방에서도 빵 만들기 전쟁이 한창이었다. 평일 오전인데도 이 정도인데 주말에는 얼마나 아수라장이 될지 눈에 그려졌다. 몰리는 인파에 비해 직원들은 친절했고, 혼잡 방지를 위해 애쓰는 프로였다. 배를 두들기고 나오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많았다. 콘퍼런스 참석차 온 듯한 외국인도 빵이 가득 든 성심당 쇼핑백을 들고 매장 앞 꿈돌이와 함께 인증숏을 찍고 있었다. 대전에 오는 외국인들에게도 성심당의 존재가 얼만큼인지 체감했다.


배를 꺼뜨리기 위해 근처 갑천 산책 후 잠시 숙소에서 쉬다가 체크아웃했다. 그리고 한밭 수목원으로 향했다. 장미 축제가 한창이라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수목원의 규모는 어마어마했고, 그에 비해 장미 축제는 다소 소박했다. 대신 잘 가꿔진 수목원을 산책하며 엄마 아빠께 대전 살던 시절의 추억 이야기를 들었다. 몇 년 대전에 살았지만 그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은 개발로 거의 사라졌고, 대전은 그 사이 몰라보게 발전했다. 그 시절 엄마 아빠는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였다. 젊었지만 줄줄이 딸린 자식들 먹여 살리기 위해 고생이 가득했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엄마, 아빠의 눈에는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코스로 성심당 본점으로 향했다. 평일 낮이니까 줄이 길어 봤자 얼마나 길겠어? 이런 안일한 생각을 품고 택시를 탄 후 본점 근처에서 내렸다. 도롯가에 보이는 건 성심당 케이크 부티크. 이미 긴 줄이 건물을 둘러 서 있었다. 설마 하며 본점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지방 도시들이 그렇듯 대전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한산했는데 이곳의 인구 밀도가 가장 높았다. 땡볕에 서 있을 손님들을 위해 양산을 비치해 둔 세심함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부모님을 근처 성심당 옛맛 솜씨에 자리 잡게 하고 흑임자 빙수를 주문했다. 두 분이 그걸 드시는 동안 집으로 데려갈 빵을 사러 본점으로 향했다. 한참 줄을 선후 입장한 매장 안은 금요일 밤 홍대 클럽 안처럼 사람들로 빽빽했다. 느긋하게 빵을 둘러보는 건 사치였다. 빵 쟁반을 들고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내가 원하는 빵을 고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컨베이어 벨트를 도는 회전 초밥 접시처럼 사람들의 줄을 따라 이동하다가 내가 원하는 빵을 집을 뿐이다. 그마저도 호흡곤란이 와서 눈에 보이는 빵 몇 개만 집어 얼른 계산하고 나왔다. 빵 천국이라고 상상했던 성심당의 현실은 빵 지옥에 가까웠다. 매장을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충청도 바이브인가?‘ 공간은 좁고, 사람은 많아 짜증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인데 다들 ’ 그러려니 ‘ 하는 분위기였다. 직원들은 느긋하게 안내했고, 손님들도 차분히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빵 맛의 상향 평준화가 된 대한민국에서 성심당보다 맛있는 빵집은 흔하다. 최고의 빵을 찾는다면 굳이 대전까지 갈 필요는 없다. 사는 곳 근처에도 성심당만큼 하는 빵집이 없을 리 없다. 하지만 한 곳에서 그토록 많은 종류의 가! 성! 비! 좋은 빵을 파는 곳을 찾는다면 성심당이 제격이다. 수십억 들여도 힘들다는 지역 브랜딩을 ’ 빵‘ 하나로 이뤄낸 성심당은 대전의 자부심이 확실했다. 성심당에서 출발한 호기심이 전국의 관광객을 자석처럼 끌어모으고 있으니까.      


대전 여행의 마침표는 성심당으로 끝난다고 했던가? 나 역시 마지막 코스는 성심당이었고, 빵이 가득 든 성심당 쇼핑백을 손에 쥐고 집에 무사히 돌아왔다. 1박 2일의 여행 동안 총 3번 성심당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본 광경은 대전이란 도시 이미지를 새롭게 각인시켰다. 무수히 들어온 노잼 도시라는 별명과 달리 대전은 다이내믹했고, 다채로웠고, 흥미로웠다. 1박 2일 동안 대전의 곳곳과 사람을 만났다. 택시 기사, 식당 점원, 시장 상인, 호텔 프런트 직원, 성심당 직원, 관광 안내소 직원 등 여유와 낭만을 아는 풍류 넘치는 사람들이 대전에 살고 있었다. 물론 특유의 충청도식 화법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고비만 넘긴다면 유이무이한 대전만의 바이브를 만끽하는 여행은 충분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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