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리 가정 지키기의 탑이 되겠습니다
동료들과 티타임 중에 유명 스포츠 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한 동료의 궁금증.
"한 분야의 탑이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또 뚱딴지같은 대답을 하는 나.
"저는 우리 가정 지키기의 탑이 되려고요."
맥락을 너무 건너뛴 대답임에도 그 의미와 평소의 내 언행을 아는 사람들은 공감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무슨 소린가 하는 반응이다. 그러고 나서는 왜 이런 대답을 했는지 설명을 했다. 이 글은 그 설명의 재정리다.
한 분야의 탑이 되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은 탑이 되어보지 못하고 산다. (꼭 그렇게 살 필요도 없다.) 그런데 가끔은 저명한 사람들을 보면 때로는 대단하다,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어릴 때는 나도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청운의 꿈을 꿨던 것 같기도 하다.
(아직도 충분히 어리다거나, 탑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 봤냐는 다른 논의다.)
쭉 자리에 앉아 둘러본다. 회사원으로서 한 분야의 탑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회사 대표이사? 또는 본부장급 임원? 아니면 팀장? '한 분야'는 무엇으로 누가 정할 수 있을까? 또 '탑'은? 그게 되기는 쉬울까?
1. '한 분야'의 대상
영역에 제한이 없이 단순히 한 분야라고 하면, 그 분야는 내가 정해도 무방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분야에 한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분야에서 탑을 차지해야 의미가 있지, 열심히 노력해서 성과를 얻었는데 나 혼자만 알고 마는 분야라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2. '탑'의 범위
정말 그 분야 내에서 1등을 찍어야만 탑일까? 아니면 포디움에만 올라도 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과의 비교 속에서 등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세운 기준에 의해서 거기에만 만족해도 충분히 탑이라고 할 수는 없을까? 그럼에도 보통은 1등, 금메달의 의미일 것이다.
3.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지는 것들에 대하여
나도 처음부터 우리 가정 지키기의 탑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을 바라진 않았다. 사회적으로 알아주는 분야에서 탑이 될 수 있도록 나를 갈고닦아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진 않다. 하물며 신입사원 시절, 회사의 가장 높은 자리인 회장까지 되려면 몇 년을 회사 근무해야 하나 계산도 해본 적은 있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대졸 사원으로 회사 커리어를 시작한 뒤에 대단한 사업성과를 내거나, 유학을 다녀오거나, 특이한 경력을 쌓지 않은 이상은 회사 업계 내 유명인사가 되기는 어렵다. 현재 근무 중인 업계 내 회사들의 사장이 아닌 유명인사는 떠오르지도 않을뿐더러, 더더욱 진정한 1등인 탑은 어렵다. 누가 탑인가?
나이도 점점 먹어간다. 건강 유지하며 꾸준히 회사를 열심히 착실히 다니는 것도 중요하다. 박사를 따고, 유학을 다녀오는 선택을 지금부터 새로 하기엔 고려할 것들이 너무 많다. 이런 식으로 커리어 패스를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은 이상 회사에 관련한 탑은 어려워 보인다.
지금부터 노력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기 싫어서 이 글로 열심히 합리화해 보는 중이다. 단순히 싫은 걸 넘어서, 열심히 노력한다고 내가 탑이 될 수 있는 지도 불확실하고 그게 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가령 1915년 생인 정주영 스토리는 지금엔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다.)
4. 내가 원했던 것을 얻어낸 경험으로도 충분하다
그렇다고 해서 한 분야의 탑이 되기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계속 한 분야의 탑이 되는 느낌은 어떨까라고 부러워만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소소한 목표는 세워두고 달성하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추구하는 건? 물론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한 분야의 탑'은 분명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만족하는 수준까지도 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삶의 동력이 되기에 충분하다. 오히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보다는 더 현실적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지금의 나는, 결론적으로 우리 가정 지키기의 탑이 되겠다는 말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저도 그 느낌이 어떨까 고민해 봤는데, 쉽지 않은 목표더라고요. 제가 세운 나만의 '한 분야'에서 ‘탑’이 되려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 탑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시나요?"
"글쎄요? (비밀)"
진정으로 한 분야의 탑이 되기 위해 에너지를 쏟는 사람을 보면, 나와는 참 다르다고 느끼면서 동시에 그 에너지와 열정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