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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먼아프리카 Aug 01. 2022

사표를 던지고 다시 아프리카로

  돌고 돌아 또다시 아프리카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회사에 취직하고 나서는 아프리카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어떻게 하면 회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직원이 될 수 있는지만을 생각했다. 직장에서 사업 기획을 맡기면 사업을 기획했고 보고서 작성을 요청하면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저 직장인으로서의 생활에 충실할 뿐이었다.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보낸 회사생활이었다. 30대의 내 청춘을 고스란히 직장에 갖다 바쳤다. 팀워크를 다진다는 이유로 회사가 차린 저녁 밥상에서 술도 많이 마셨다. 그렇게 20대에 아프리카에서 배운 삶의 교훈과 소중한 추억들이 내 마음속에서 하나씩 흐릿해져 갔다. 회사생활에 진심이었던 나였기에 아프리카로 다시 돌아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10여 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나는 운명처럼 제2의 고향인 아프리카로 돌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게 되었다.


  되돌이켜보면 힘든 회사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아프리카에서 얻어온 긍정의 힘 덕분이었다. 고달픈 생활이 지속될 때마다 나는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그렇게 힘들다는 아프리카의 오지마을에서도 버텼는데, 이것쯤이야 별거 아니지.’라고 말하며 나를 위로했다. 물론 이런 위로가 매번 나를 긍정적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20대에 아프리카의 길 위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나의 스승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힘들고 상처받은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아프리카’는 지친 나를 일으켜 세워준 소중한 마법의 단어였다. 결국 아프리카에서 겪은 애환은 따뜻한 공감과 위로가 되어주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부족한 지식을 채우고자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당연히 직장에 도움이 되고 나의 전문역량을 발휘하는 방향에서 학문적 가치를 탐구했다. 하지만 어느 날 학교 전공 교수께서 내게 근원적인 질문을 연달아 던졌다. 


  “학위를 따려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당신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학문적 주제는 어떤 분야인가요?” 

  “현 직장에서 논문의 주제를 살려 계속 일할 생각인가요?”

  교수와의 짧고 깊은 대화를 마치고 나서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과연 지금의 내 삶에 행복감을 느끼는가? 그리고 회사생활에 만족하는가?’ 

  나의 대답은 “아니다.”였다. 


  ‘행복한 삶으로 나를 다시 이끌어가길 원하는가?’ 

  나의 대답은 당연히 “그렇다.”였다. 


  ‘그렇다면 지친 나의 정신과 육체를 달래줄 수 있는 건 무엇인가?’ 

  힘들 때마다 내가 떠올린 건 아프리카에서 현지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며 만들어간 소중한 추억이었다. 아프리카에서의 삶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공동체의 끈끈한 연대 의식과 정서적 친밀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의 심장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원동력이야말로 ‘아프리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학문적 호기심과 지식을 채울 수 있는 방향으로 공부 주제가 자연스레 정해졌다. 무엇이든 ‘아프리카’ 관련 공부를 하고 이를 활용하여 ‘아프리카’로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순간이었다.


  낮에는 직장에서, 밤에는 대학교에서 주경야독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그래도 아프리카 관련 공부를 하면서부터 오히려 나는 위로를 받게 되었다. 마음이 치유되어 가는 나를 발견한 것이었다. 회사생활과 연계된 주제를 공부했다면 아마 지금까지 학위를 끝마치지 못했을 듯싶다. 전공 교수와의 대화에서 튀어나온 ‘아프리카’라는 단어 하나가 학문적 성취를 달성하도록 만들어준 원동력이었다.


  직장에서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업무도 담당했었지만, 무엇보다도 현장에서 사람들과 직접 부딪히며 일하는 것에 대한 목마름이 가장 컸다. 힘겨운 공부를 마치고 나서 나는 아프리카로 떠나기 위한 기회를 호시탐탐 넘어다보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떠날 수는 없었다. 


  ‘내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프리카의 교육 분야에서 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국내에서 다양한 교육사업을 기획하고 젊은 친구들과 소통해오고 있었기에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아프리카는 내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주었다. 언젠가 아프리카에서 받은 만큼 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이 그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축적해온 경험과 역량을 총동원하여 아프리카의 청년 인재들을 지역사회의 미래 지도자로 육성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동아프리카(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등)는 내가 자원봉사와 인턴 활동을 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전혀 거리감이 없는 곳이었다.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알게 된 아프리카 친구들 대부분이 동아프리카 출신이었다. 그렇게 나는 동아프리카로 떠날 운명인가 보다 싶었다. 


  토종 글로벌 비영리기관인 굿네이버스에서 현지 프로젝트 관리자를 채용하고 있었다. 탄자니아 잔지바르 사무소에서 개발협력사업과 관련한 행정 실무를 담당하고 현지 인력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현지에서 한 개의 사업이 아니라 여러 개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굿네이버스의 해외사업에 지원하였고 현지 사업책임자로 채용되었다. 아프리카 땅을 생애 처음 밟았을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이 교차하였다. 처음으로 아프리카 땅을 밟았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다. 난생처음 겪는 일이라서 무엇보다 두려움이 나를 짓눌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려움보다 설레고 즐거운 마음이 더 컸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예전과 현재는 완전히 달랐다. 대학교 시절, 내가 아프리카로 떠난다는 소식을 접한 선배들은 나를 혼내느라 바빴다. 


  “네가 제정신이냐? 왜 미개한 아프리카로 떠나는 거냐?” 

  “동기들은 취업 준비하느라 정신없는데, 너는 아프리카로 여행을 간다고?”

  “부모님 생각은 전혀 안 하는구나. 네가 아프리카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하니? 아프리카 말고 유럽이나 미국을 가라. 그곳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들의 마음속 아프리카는 이미 부정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프리카를 가본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반면에 내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프리카로 떠난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내가 아프리카에 관심이 많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20년 전의 대학 선배들과는 달리 긍정적인 메시지를 통해 나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주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너의 도전을 응원한다.”

  “네가 사랑하는 아프리카로 떠나게 되어 축하한다.”

  “아프리카에서 주어진 임무를 잘 마치고 건강하게 귀국하기를 바란다.”

아프리카로 다시 향하는 그 길 위에서 과연 누구를 만나 어떤 삶의 스토리를 만들어갈지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세상 물정 몰랐던 20대 청년이, 세상의 때가 많이 묻은 40대 어른으로 성장해있었다. 오랫동안 잊혔던 아프리카와의 인연을 다시 이어 붙이려고 한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해가며 살아간다는 핑계로 아프리카를 잊고 살았다. 


  그렇지만 아프리카는 내 인생의 새로운 도전 위에서 어머니 품 같은 따뜻함으로 나를 반겨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다시 시작된 아프리카와의 인연, 처음보다는 적응을 잘할 수 있으리라 스스로 위로와 격려를 해본다. 이번에는 아프리카가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올지 희망과 설렘을 가득 안고 새로운 비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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