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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먼아프리카 Jul 24. 2022

장례식, 나를 해방으로 이끌다

  시골길을 걷다가 종종 술에 취해 쓰러져있는 마을 사람들을 목격하곤 했다. 삼삼오오 모여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드는 의문은 ‘술을 파는 곳이 없는데 어디서 술을 마시고 취한 걸까?’였다. 홈스테이 가족의 둘째 아들이자 초등학교 교사인 마크 또한 주말에 집에 올 때마다 맥주를 사 와서 혼술을 즐겼다.


  마크에 따르면, 마을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기에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니까 집에서 직접 술을 담가 마신다고 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옥수수 또는 사탕수수를 발효시킨 후 증류해서 직접 술을 담그는 것이었다. 대량으로 제조한 술은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맥주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빠른 속도로 소진되었다.


  대부분의 집안일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심지어 여자들은 밤낮으로 술에 취한 남자들을 대신해서 농사일을 돌보기까지 했다. 실질적인 가장의 역할뿐만 아니라 집안일까지 책임져야 하는 여자들에게 하루가 너무 짧아 보였다. 반면, 사갈라 마을의 남자들은 딱히 할 일이 많지 않아 보였다. 누군가와 술 마시거나 노가리를 까는 걸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짧은 이유 중의 하나로 열악한 의료시설과 시스템을 꼽을 수 있다. 더욱이 전기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학교에서 주로 했던 일도 상처투성이인 아이들 다리를 소독해주고 연고를 발라주는 것이었다. 험한 산길을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에게 다리의 상처는 배움을 향한 의지를 보여주는 훈장과도 같았다. 한국에서 챙겨간 약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 행세도 딱 두 달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일부 마을 사람들이 가벼운 질환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에 이르는 안타까운 일이 자주 발생했다. 감기와 비슷한 초기 증상을 보이는 말라리아 또한 약품을 구하지 못해서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남자들의 경우는 과도한 음주 섭취가 반복되다 보니 면역력이 떨어져 여자들보다 외부의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했다. 그런 잘못된 음주 습관이 더욱 빨리 그들을 죽음의 길로 내몰았다.


  홈스테이 양부모께서는 주말이면 가까운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외출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의 장례식에 참석하느라 집을 비우는 경우가 더 많았다. 마을에서 자주 들리는 소식 또한 안타깝게도 누군가의 죽음이었다.


  다소 굵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어느 토요일 오전이었다. 여느 때처럼 양아버지께서 옷을 단정히 차려입고 왼손에는 지팡이, 오른손에는 카우보이 모자를 챙기셨다. 그의 옷차림은 마을 장례식에 참석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날따라 거센 빗방울 소리는 지붕의 슬레이트를 뚫고 나와 집안 곳곳을 울려댔다. 이상하리만큼 시끄러운 빗소리가 집안의 고요함과 동시에 내 마음의 침묵마저 거두어 갔다.


  그동안은 마을공동체의 일원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고인이 된 마을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리는 굵은 빗줄기를 보면서, 백발의 양아버지 옆에서 힘이 되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찾아왔다.


  “장례식에 따라가고 싶어요.”라고 양아버지께 요청을 드렸다.

  “비도 오고 날씨도 추우니까 장례식에 따라오지 말고 집에서 쉬도록 해라.”

  양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나의 요청을 완곡히 거절하셨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고집을 피웠다. 왠지 마을의 장례 예식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들었다. 결국 양아버지를 따라서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통해 상갓집에 다다랐음을 직감했다. 이미 상갓집은 마을 사람들로 붐볐다. 모두가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마을 여성들은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었고 젊은 청년들은 장지를 마련하고 있었다.


  집 안에 모셔져 있는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줄을 섰다. 양아버지를 따라 나도 그 행렬에 합류했다. 앞쪽에 모여 있던 마을 여성들의 입에서 장송곡이 울려 퍼졌다. 노랫소리와 함께 차례차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죽음을 실체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했다. 시신이 눕혀져 있는 나무관은 고인을 볼 수 있도록 머리맡 쪽에 유리창이 달려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일상생활이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모든 게 너무나도 생경한 모습이었다. 고인과 마주할 생각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로 너무 무서웠다.

사갈라 마을에서는 고인을 집 앞 마당에 묻는다.

  낯선 땅에서 나는 하루하루 생존의 문제에 부딪혔다. 그런 나에게 죽음은 초현실 세계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낯선 환경에서 생존과 적응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싸워나가야만 했다. 모든 장례 절차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낯선 공동체에서 이방인이 꼭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나를 멀리했던 마을 사람들조차 장례식에서만큼은 나의 등장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나를 향한 경계심의 눈초리마저 거두건 아니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순간에도 마을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순서를 바꿔가며 나에게 눈을 흘겼다.


  고인의 얼굴을 인생 처음으로 마주한 데다가, 비까지 내리는 상황이다 보니 나 또한 정신적, 육체적으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양아버지는 그런 나를 옆에서 계속 챙겨주셨다. 장례식 중간에도 나에게 “집에 돌아가 휴식을 취해라”라고 말해주셨다. 그렇지만 나는 장례가 진행되고 있는 중간에 홀연히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


  장례식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망자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냈다. 밖에 나와 있던 마을 청년들은 한 사람씩 교대로 삽을 주고받으면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장례 절차가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 나는 이 모든 순간을 행렬의 맨 앞줄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땅을 한창 파고 나서 잔뜩 구부린 허리를 펴던 마을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그 친구는 손에 쥐고 있던 삽을 갑작스레 내게 건네주었다. 다른 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그 삽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제법 깊게 파인 구멍 안으로 뛰어들었다. 나도 몇 분 정도 마을 청년들처럼 땅을 팠다. 또 다른 청년에게 삽을 넘겨주고 나서 구멍 밖으로 나왔다. 하관이 끝난 뒤 흙을 채우고 땅을 다졌다. 그렇게 봉분을 다듬는 과정까지 마을에서 진행된 장례식 전 과정을 함께했다.


  모든 장례 절차가 마무리됐다. 나는 마을 청년들과 한 곳에 둘러앉아 휴식을 취했다. 마을 아낙들은 정성스레 준비한 염소탕을 우리에게 대접했다. 국그릇을 받아 들자, 염소 특유의 비린내가 진동했고 나는 헛구역질을 계속했다. 하지만 내게 할당된 염소탕을 남길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한 소중한 시간을 염소탕 때문에 망치고 싶지 않았다. 배가 너무 고팠다. 그렇지만 음식이 목구멍을 넘어가지 못했다.


  나는 먹는 시늉만 계속했다. 동시에 곁눈질로 조금 전에 나에게 삽을 건네준 친구를 찾고 있었다. 그 친구에게 다가가 친근함을 표시했다.


  “정말 고생했어. 힘들게 일한 너에게 내 염소탕을 더 나눠주고 싶었어. 나는 배가 그렇게까지 고프지는 않거든.”

  이 말과 함께 내 국그릇에 담긴 염소고기와 내장을 나눠주었다. 사실 나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투명 인간 취급을 받던 나는 마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다. 마을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일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번 장례식이 그 매개체 역할을 해주었다. 장례식 다음 날부터 나를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행동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걸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나를 향한 경계의 눈빛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을 길을 걸을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랄 것 없이 따뜻한 말을 내게 먼저 걸어왔다. 똑같은 마을 길이었지만, 오고 가는 대화에서 사랑의 향기가 묻어났다. 사람 냄새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다가가니 ‘너’와 ‘우리’를 경계 짓던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렇게 나는 동양에서 온 이방인에서, 사갈라 마을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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