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먼아프리카 Jul 12. 2022

두려움을 안고 아프리카로 떠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행동으로 옮기라는 뜻이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보수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당장 40대의 싱글 직장인이라고 가정해보자. 20대 시절보다는 훨씬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지켜야 하는 물건이나 재산이 많다는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변함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젊은 날의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세상을 향한 도전을 감행한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도전을 꿈꾸면서 살아갈 확률이 높다. 도전이 있는 삶을 추구하면 내가 꿈꾸는 직장에서 높은 보수를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물론 답은 ‘아니오’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게 된다. 


  나 또한 내가 아프리카에 관심을 가질 거라고는 전혀 상상해보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처럼 술 마시고 놀면서 삶의 재미를 축적해나가던 청춘이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고등학교 시절 지리 시간에 책으로 어렴풋이 배운 게 전부였다. 그러던 나에게 아프리카와의 만남은 세상에 대한 반항에서 우연히 시작되었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마주한 대학 생활은 취업시장을 준비하는 독서실과 같았다. IMF 외환위기라는 경제적 상황을 맞이했기에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현실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동안 갈 곳을 잃은 채 방황했다. 어느 날 문득, 나도 모르게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끝으로 내던지며 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세상과 마주한 시험장에 두 가지의 선택지가 내게 주어졌다. 그건 바로 동아프리카의 케냐와 남아시아의 인도였다. 당시, 내게 비추어진 두 국가의 이미지는 완전 극과 극이었다. 케냐는 미지의 세계나 마찬가지였다. 아프리카 대륙에 알고 있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 보니, 끝 모르는 어둠이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은 공포와 두려움의 이미지가 뇌리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반면, 인도에 대해서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생각과 지식을 뽐낼 줄 알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인도는 마치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안식처와 같은 곳이었다. 


  그들의 의견을 따라, 인도라는 선택지를 고르는 건 어쩌면 지극히도 정상적인 행동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미지의 세계인 아프리카였다. 선택의 순간까지 나를 붙잡고 있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두 곳 중 인생의 젊은 나이이기에 내가 도전적으로 가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였다. 인도는 우리나라와 같은 아시아권에 속한다. 지리적으로 인접해있기 때문에 나이 들어서도 재력이 뒷받침된다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청춘이란 무엇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청춘이기에 누릴 수 있는 청춘만의 특권이 있다. 아프리카를 향해 떠나기로 결정하고 나서 미지의 세상에 대한 공포심이 드리울 때마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불확실한 미래에 당당히 맞서자. 그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게 바로 청춘이 아니겠는가’라고 되뇌면서.

 

  항공료를 포함하여 여행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면 나의 선택은 몇 번이고 번복되었을지 모른다. 아프리카는 정말 생소한 곳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도 원하는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여행 전문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을 테지만, 당시는 정보가 별로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힘겹게 찾은 정보는 나를 자꾸만 공포로 밀어 넣었다. 아프리카 현지의 고급 정보는 우리나라의 해외 공관 대사관 홈페이지를 통해서였다. 고급 정보 중에서 온통 나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건 현지 국가의 불안한 치안 상황으로 인해 교민의 안전을 걱정하는 공지사항뿐이었다. 


  아프리카로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여행지를 향한 두려움이었다. 청춘의 객기였는지 몰라도 낯선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야 스스로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프리카로 떠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공포감에 사로잡혀 버렸다. 부모님께 차마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내 인생의 첫 번째 해외여행이지만 즐겁고 재밌는 여행길이 될 것이라고 말씀드리며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렸다. 아프리카를 간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두렵다는 감정은 숨긴 채로. 이 모든 계획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먼 곳까지 와버렸다. 떠날 채비를 하나씩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군대를 다녀온 후, 나는 어엿한 성인으로 탈바꿈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여행을 준비하면서 바라본 나의 정신세계는 철딱서니 없는 티를 못 벗어난 영락없는 고등학생이었다.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성인이 국내여행도 아니고 아프리카로 해외여행을 떠난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웃픈 현실이었다. 


  그래도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내릴 수 있었던 과감한 선택이고 용기이자 도전이었다. 언제 소멸할지 모르는 내 안의 두려움이야말로 미지의 세계를 향한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여행의 동기였다. 두려움은 막연한 불안감을 자극하고 올바른 생각을 방해하기도 한다. 한편으론 낯선 세계를 향해 달관의 자세를 유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청춘이기에 할 수 있는 고민이다. 청춘이라는 특권을 누리는 자만이 성취할 수 있는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청춘이라면 익숙한 ‘나’와 결별하고 불확실한 ‘너’와 만나는 기회를 자꾸 만들어가야 한다. 그 만남을 통해 ‘우리’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미성숙한 나를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시켜준 것은 어쩌면 팔할이 청춘 시절 내린 도전을 향한 선택이었다. 


  청춘이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이용하여 아프리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내 몸을 맡겼다. 그렇게 방황하던 나의 젊은 시절은 아프리카라는 낯선 땅에 발자취를 선명하게 찍으면서 부활을 꿈꾸고 있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