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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년

가난한 너를 위하여 [번외편]

by 성냥팔이 소년


이른 새벽부터 바지런을 떨었건만 역시나 허탕이었다. 동이 트자 인력 시장에 모였던 허다한 무리는 각자의 깜냥대로 흩어졌다. 남겨진 사내는 꺼져가는 불씨만 들쑤시다 기어이 죄스러운 아침을 맞이한다.


전철역으로 뛰어가는 직장인들 사이에 끼어들어 종류별로 무가지를 챙긴다. 때로는 우산이 되고, 때로는 베개가 되는 커다란 배낭에 쑤셔 넣는다.


하필 무료 배식이 없는 날. 공사장을 오가다 못쓰게 된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제집처럼 드나드는 공원을 찾는다. 재개발을 앞두고 폐허가 된 쉼터. 변변한 의자조차 없어, 흉물스레 칠이 벗겨진 낡은 시소에 걸터앉는다. 기울어지는 삐걱 소리에 맞춰 달라붙은 뱃속도 꼬르륵 아우성을 친다.


주위를 살피니 누군가 마시고 난 커피 캔이 누워 있다. 잽싸게 낚아채 혀 위에 털어보지만,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다. 제기랄. 덧없이 바닥에 내던진다.


일어나 쓰레기통 주변을 기웃거린다. 떨어진 꽁초를 발견하고는 냉큼 줍는다. 툭툭 먼지를 털고 불을 붙인다.


후후, 맛 좋네.


어미젖을 찾듯, 애송이들이 버린 반쪽짜리 담배 하나를 쪽쪽 거리며 한참 동안 태운다.


그때였다. 무대 위 조명이 켜지듯 먹음직스러운 떡 한 덩이가 시야에 들어온다. 휘둥그레진 동공은 찢어지기 일보 직전. 근처에 잔치가 있었나. 부리나케 뛰어간다. 갓 쪄낸 것 마냥, 밤과 콩이 한가득 박힌 설기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고 있었다. 누가 볼 새라 급히 떡을 집어 들었다. 따질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목구멍에 쑤셔 넣는다.


으- 퉤퉤.


씹힌 것은 말랑한 떡이 아니라 모래가 뒤섞인 눈 뭉치였다. 가을부터 쌓인 낙엽 더미 위로 밤사이 내린 눈이 범벅이 되어.


하, 하하.


어이없는 상황에 사내는 폭소를 터트리고 만다.


하, 하하.

하, 하하.

하, 하하.

하, 하하.

흐흑, 하하.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애끓는 짐승 소리에, 귀먹은 체 꿈쩍도 않던 닭둘기 떼가 후드득 달아난다.


삶에게 속은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살아야만 하는, 지긋지긋한 숙명을 탓하며 사내는 황급히 얼굴을 훔친다. 분명 아무 일도 없던 것이다. 그래, 오늘도 일이 없으니- 바닥에 주저앉아 가져온 신문을 꺼내 펼친다. 인쇄된 세상 이야기에서 끈적한 기름 냄새가 폭죽처럼 터진다.




2-2.©Jef Bourgeau.jpg

image_©Jef Bourg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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