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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에서 살아남는 방법2 – 직접적인 대화는 피해라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다. 눈으로 한 번 보는 게 말로 백 번 듣는 것보다 낫다는 뜻이다. 입으로 백날 코끼리란 생명체를 설명해 봐야 그 전체적인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다. 눈으로 한 번 보면 코끼리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층간소음에 있어서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바로 위층이 자신들이 소음을 내지 않았다고 주장할 때이다.     


소음이 들린다는 건 어디에선가 소리가 난다는 의미다. 관리사무소를 통해 주변 모든 호수에 연락을 취해 봐도 범인이 나오지 않는다면 위층이 가장 의심이 간다. 특히 나처럼 아래층과 옆층이 없는 경우는 두 층 위에서 소음이 내려오지 않고서야 위층이 가장 유력한 범인이 된다. 이때 가장 많이 시도하는 방식이 층간소음 실험이다. 위층에 올라가 소음을 내보고 그 소음을 확인해 본다. 내가 들은 소음과 같다면 위층이 범인이 된다.   

  

먼저 나 같은 경우는 이 방법을 시도해 보지 못했다. 위층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위층은 얇은 카펫 하나 깔아두고 우리가 할 건 다 했으니 더는 층간소음 가지고 뭐라 하지 말라며 화를 냈다. 쓰면 쓸수록 참 답이 없는 집이다. 이런 위층 같은 경우가 아니고, 내가 층간소음을 냈다 생각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경우가 이 실험을 허용해준다. 헌데 이 실험은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키는 주범이 된다.     


아래층 입장에서는 범인을 찾았다는 생각에 환호를 느낀다. 드디어 위층이 범인이란 게 증명됐기 때문이다. 헌데 위층 입장에서는 ‘이게 뭐지’ 싶다. 아래층이 과장된 걸음걸이로 발망치를 찍는 모습에 ‘난 저렇게 안 걸었는데’라는 생각이 들고, 세게 문을 닫는 모습에 ‘난 저렇게 문을 닫은 적 없는데’라고 생각한다. 은연중에 그랬을 수 있지만 ‘그러면 걷지도 말고 문도 닫지 말라는 건가’라는 답답함을 느낀다.     


앞서 언급했듯 층간소음의 70%는 발걸음 소리와 뛰는 소리가 차지한다. 문 닫는 소리, 가구 끄는 소리 등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소리가 아래층에게는 소음처럼 들린다. 헌데 이 문제로 아래층이 직접 대면을 하고 항의하는 건 물론, 그 소리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보여준다면 위층 입장에서는 짜증이 난다. 내가 내 집에서 발뒤꿈치를 들고 다니고, 문 닫을 때도 신경을 써야 하나 라는 생각에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이렇게 한 번 실험을 하고 나면 상대의 존재를 알게 되고 직접적인 대화가 오간다. 그리고 감정적인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진다. 아래층은 ‘내가 다 보여주고 자기들이 낸 게 맞는데 배려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고, 위층은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예민하게 날 통제하려고 든다’는 점에서 고통을 받는다. 오해를 해결하려고 하다 감정의 골만 깊어지고 사이는 더 갈라진다.     


층간소음 문제에 있어 가장 강조하는 것이 직접적인 대면을 피하라는 것이다. 중간관리인을 두고 대화를 나눠야 감정적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허나 쉬운 일이 아니다. 양측 모두 서로가 오해하고 있다 여긴다. 아래층은 위층이 자기들이 시끄러운지 모르니 증명해줘야 한다고, 위층은 우리가 층간소음을 내는 게 아닌데 내고 있다고 착각한다 생각한다. 때문에 증명을 한다 하더라도 이는 해결이 아닌 더 극심한 갈등의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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