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용원 Apr 08. 2020

[보물섬](1883) - 로버트 스티븐슨

내 마음 속의 '어른들'

 마음 속의 '어른들'
- [보물섬], 로버트 스티븐슨, 김영선 옮김, <시공주니어>, 2006.



"트렐로니 지주와 리브시 판사를 비롯한 몇몇 양반들이 나에게 보물섬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쓰라고 요청했는데, 아직 가져오지 못한 보물이 남았으므로 보물섬의 위치만 빼고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기록하라고 했고 나는 17 몇년의 어느 때로 돌아가서 펜을 들어야 했다.  아버지가 남긴 '벤보우 제독' 여관 처마 아래로 뺨에  칼자국이 있는 늙은 선원이 처음 들어섰던 바로   말이다."
- [보물섬], 로버트 스티븐슨, <1, '벤보우 제독' 여관의 늙은 선원>, <Collins Classics>에서 번역.


 어릴적 가장 감명깊게 읽은 동화책을 꼽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 내놓는다.
초등학교  우리집 '세계명작동화전집' 있던 [보물섬]. 그러나 어렸을 당시에 책을 열심히 읽었던 것은 아니고 TV에서 방영하던 [보물섬] 만화를  후에야 비로소  전집을 뒤졌던  같다.
당시는 몰랐으나 1970년대 후반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방송되었던  .
주인공은  호킨스(Jim Hawkins),
바로  녀석이다.


내가 '최고의 동화' 기억하는 첫째 이유는 '악역'으로서 해적들의 개성들과 그들의 오랜 관계에 관한, 작가가 '침묵'하고 있는 그들의 추억이었다.
원래 스티븐슨이 처음  소설을 썼을  제목은 [바다의 요리사(The Sea Cook)] 정도였다고 하는데, '외다리  실버(John Silver)' 주인공이라는 것이리라.
화자인  호킨스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인물, 소설의 초반부에 등장한 무서운 해적들의 거대한 배후이자, 전설의 플린트 선장의 실질적 후계자.  장면에서 짐의 벤보우 제독' 여관에 들어선 칼자국의 빌리 본즈 부선장이 가장 두려워  인물 '외다리 실버' 실질적 '주인공'이니 만큼 부하들을 먼저   보내고는 한참 후인 < 2> 즈음 되어서야 등장한다.

나는 빌리 본즈(Billy Bones) 선장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는데, 전설의 플린트 선장의 해적단에서 '1 항해사'로서 2인자였으며, 플린트 사후 보물지도를 가로챈 도망자, 예전의 동료들로부터 쫓겨다니는 주정뱅이 늙은 선원이 등장한 소설의   장면이, 망상에 쫓기면서 '검은 동그라미' 받고 혼자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어갔을  허무함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1인자가 되지 못한 2인자의 최후가 내게는 그토록 애잔했다.

 외에 잘린 손가락의 검둥개, 말발굽에 비명을 다한 쇳소리의 장님 ... 이들은 빌리 본즈 부선장이 얼굴에 칼자국이 나고, 2 항해사 실버의 한쪽 다리가 날아갔던 오래전 '대전투'에서 함께 싸우다가 손가락을 잃고 눈을 잃었을 해적단의 '동지'였고, 보물지도를 둘러싼 '내부의 적들'이었다.
어린 내게는 히스파니올라호 선원들의 보물섬을 향한 모험보다는 소설이 '침묵'하는 이야기, 플린트 해적단의 아련한 '추억'  좋았다.
망원경을   석양을 비껴  빌리 본즈 선장의 외로운 넓은 어깨와 보물섬을 향한 이룰  없는 아련한 꿈은 오래된 해적 '동지'들의 최후를 미리 보여주고 있었다.


"실버에 관해서는  이상 소식을 들을  없었다.  어마어마했던 외다리 선원은  삶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어딘가에서 예전의 흑인 부인을 다시 만나고 앵무새 '플린트 선장' 평안히 지내고 있을 것만 같다. 물론  가능성이 적을 것이기에, 나의 바램에 불과하겠지만...
 아직도 악몽을 꾸며 한밤중에 깨어 일어난다. 어떤 날은  보물섬의 높은 파도소리가,  어떤 때는 "8센트! 8센트!" 외쳐대는 앵무새 플린트의 목소리가 귓속을 맴도는 채로."
- [보물섬], 로버트 스티븐슨, <34, 마지막 이야기>, <Collins Classics>에서 번역.

 번째 감동의 지점이 [보물섬] 핵심이다.
어린 화자  호킨스에게 크고 '어마어마했던' 어른들, 특히 믿음과 배신의  극단을 알게 해준 '외다리 실버' 대표되는  '어른들' 이야기다.
애초에 내겐 히스파니올라호나 대지주 트렐로니, 리브시 판사 등은 관심 밖이었고, 카리스마 넘치는 스몰레 선장의 위기극복 '리더십'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중에 글을 쓰는  호킨스는 예전의 빌리 본즈보다, 외다리 실버보다  힘이  청년이 되었을 테지만, 그의 마음은 잠시나마 '아버지' 같던 빌리 본즈와 오랜 시간 '삼촌' 같던  실버보다 언제까지나 여릴 것이다.

  나는 안다.
어릴  가장  보이던 '아버지' 사실은 얼마나 '초라'했을 때가 많았을지, 제일 힘세 보이던 '삼촌들' 사실은 힘없는 다수  하나에 불과했을 것인지, 믿음직했던 나의 '선배들' 속으로는 얼마나 여리게 고민했을지.
그럼에도,  '어른들'    마음 속에서 여전히   모습으로 살아 계속 불려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어른'  내가 그런 존재가 되어 있음을.
그리하여, 우리의 [보물섬] 달리 '고전 동화'  것이 아님을.


  가지가,  아들이 한글도 익히기도 , 잠자리에서 [보물섬]  백번 읽어준 이유다.

***

1. [보물섬](1883),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김영선 옮김, <시공주니어>, 2006.
2. [Treasure Island], Robert Louis Stevenson, <Collins classics>, 2010.
3. [보물섬], <교원 애니메이션 세계명작동화>, 2006.


이전 01화 [150회 기념 서문] '하이드 씨'를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