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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Nov 07. 2020

[의식의 기원](1976) - 줄리언 제인스

'신의 음성'을 들었던 흔적을 찾아서

'신의 음성'을 들었던 흔적을 찾아서
- [의식의 기원](1976), 줄리언 제인스, 김득룡/박주용 옮김, <연암서가>, 2017.





"의식은 문화적으로 학습된 사건이고 초기 심리상태('양원적 정신')의 억압된 흔적이다."
- [의식의 기원], 줄리언 제인스, 1976.


'의식(Consciousness)'은 주체가 객체를 인식하는 행위로서 인간의 주관적 정신의 영역이다. '의식'의 기원을 추적한다는 것은 얼핏 인간의 '주관'이 우선한다는 '관념론'과 '정신'이나 '의식' 조차도 뇌라는 '물질'이 생산한 "최고의 산물(레닌)"이라는 극단적 '유물론' 간의 철학적 투쟁을 예고하는 듯 하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의 심리학자 줄리언 제인스(Julian Jaynes)는 '철학'적 고찰 대신 '역사'적이고 '고고학'적이며 '문화'적 접근방식으로 '의식'의 기원을 파헤친다.


"본래 의식의 본성 탐구는 장황한 철학적 해답들로 가득차 있는 심신관계의 문제로 알려졌다. 그러나 진화론이 등장한 이래, 이 문제는 더욱 과학적인 문제가 되어 버렸다. 정신의 기원 문제, 좀더 세부적으로 말하면 '진화 상에서의 의식의 기원'이라는 게 문제가 된 것이다."
- [의식의 기원], <서론 - 의식의 문제>, 줄리언 제인스, 1976.


'의식'이라는 철학적 주제는 오랜 동안 신화적이고 종교적이며 신비의 영역에 있었다. 근대에 들어 과학이 발전하고 특히 '진화론'의 영향으로 인해 '의식'이 인간의 생물학적인 요소라는 견해가 우세해 지기도 했다. 그러나 줄리언 제인스는 "뇌 지식만으로는 그 뇌가 우리와 같은 '의식'이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다"(같은책, 서론)며 우리의 '의식'이 무엇인지의 개념부터 서술하면서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그리하여 [의식의 기원]의 독해에서 가장 주요 개념은 '양원적 정신(Bicameral mind)'과 '내성(Introspect)'다.

[의식의 기원]의 원제는 '양원적 정신의 붕괴과정에서 의식의 기원(The Origin of Consciousness in the Breakdown of the Bicameral Mind)'이다.


"... '의식의 기원' 문제... 의식이 (은유적) 언어에 근거를 둔 것이라면, 그 말은 곧 의식은 이제까지 주장되어 온 것보다 훨씬 더 최근에야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는..."
- [의식의 기원], <1권 인간의 정신 - 2장 의식>, 줄리언 제인스.


'양원적 정신'은 인간의 정신 또는 마음이 '신'의 영역인 '집행부'와 '인간'의 영역인 '실행부'로 나뉘어진 시기의 개념이다(같은책, 1권-4장). 즉, 인류가 '신'으로부터 매개 없이 직접 지시를 받고 고민 없이 실행하던 기원전 2000년 전 이야기다. 이 시기를 지나면 인간은 '사제'나 '영매', '무당' 등의 매개자를 통해 신을 접하게 되는데, 이 때는 이미 주관적 '정신'이 생기고 이것이 은유적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소통되면서 비로소 '의식'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면, 고대의 인류는 '어린 아이'와 같아서 의사결정의 스트레스를 신의 지시로 직접 들었는데, 인류가 성장하면서 '어른'처럼 '자기 주관'이 생긴다는 것이다. '신'에 직접 의지하는 '양원적 정신'이 붕괴하면서 그 자리를 '스스로 자기성찰'하는 '내성(Introspect)'을 특성으로 하는 '의식'이 생겨났다는 말이다.
줄리언 제인스가 말하는 '의식'은 넓은 의미의 인간 정신, 관념이 아니라 '내성'하는 언어적 정신의 좁은 의미이다.

고대 그리스 '트로이 전쟁' 이야기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의식은 은유적 언어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줄리언 제인스의 가설을 평가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확실하게 번역할 수 있는 "최초의 언어기록(1권-3장)"이다.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 헥토르 등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에게는 개념도, 자유의지도 없다. 그저 '신'들이 '의식'의 자리를 대신한다. 이 고대 미케네인들의 정신구조 자체가 '양원적 정신'이다. 그들에게 '신'은 '유일신'도 아니고 천상에 있지도 않다. 모든 만물에 깃든 '신'들이 '의식' 대신 차지하고 있다. 미케네인들은 '신'들이 조종하는 꼭두각시들이었다. 물론, '어린 아이' 같았던 고대인들이 만든 '신'들이었지만, 그들에게 철저히 지배당하면서 의사결정의 스트레스를 견뎠다.
인간 개인으로 봐도 3~7세에는 '상상의 친구'와 논다. 8~10세에는 '최면' 감수성이 절정, 즉 최면에 잘 걸린다고 하는데, '정신분열'과 함께 '양원적 정신'의 현대적 흔적인 '최면'은 '신'과 '나'를 매개하는 단계와 같다고 한다. '양원적 정신', '상상의 친구' 따위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양원적 정신은 사회적 통제양식으로, 이는 인류에게 소규모 수렵-채취 집단에서부터 대단위 농경공동체로 이행하게 한 사회통제 양식인 것이다. (자체 내에) 자신을 통제하는 신을 갖고 있던 양원정신은 진화하여 최종단계의 언어 진화에 이른다. 그리고 문명의 기원은 바로 이 (언어의) 발달에서 비롯된다."
- [의식의 기원], <1권 - 6장 문명의 기원>, 줄리언 제인스.


'양원적 정신' 구조를 갖고 있던 고대 인류는 주로 '신의 목소리'를 '청각'적으로 들었다. [일리아드]에서 번역하기 모호한 '투모스'는 '신'이 불어 넣어주는 '충동질', '용기' 등을 의미한다는데, 신체적으로는 아드레날린 같은 호르몬을 조절하는 간이나 부신 등으로 볼 수 있다. 그 다음 많이 나온다는 '프레네스'는 '호흡'이자 복수형으로서 허파, '크라디'는 심장, '에토르'는 위장, '누스'는 지각, '사이키'는 생명 등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이처럼 '양원적' 고대인에게 '신'은 신체기관과 직접 연결되어 지시를 내리고 인간은 청각으로 전달받은 지시를 그대로 이행한다. 그냥 '어린이' 자체다.

기원전 2000년경이 되면 인류는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 등으로 나타나듯 사회조직을 '문자'로 표현하고 유지한다. 어찌보면 '정신분열' 환자 같던 '양원적' 고대인들은 그냥 '미친놈들'이 아니었다. 거대한 사회조직의 '집단적 규범'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제 문자와 같은 '문명'은 그 자체로 인간 개인의 '의식'을 발생시켰고, 거대한 사회를 조직하는 '사회통제' 기제로서 인간은 한단계 성장하여 '내성'을 하게 된다.
청각적인 '양원적 정신'이 붕괴된 자리에 문자를 시각적으로 보는 '의식'이 들어선다.



줄리언 제인스가 주요 근거로 삼지는 않으나 우리의 뇌구조와 비교하면 '양원적 정신'의 이해가 더 쉽다. 우리 뇌의 좌반구는 언어와 말, 우반구는 종합적 사고와 노래 등의 감성적 영역일 텐데 '의식'이 우세한 현재 인류는 좌반구가 우세하나, '신의 음성'을 직접 들었던 고대인들에게는 우반구도 활발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반구는 '신'의 영역, 좌반구는 '인간'의 영역. 이 '2중 뇌(1권-5장)'는 '양원적 정신'의 흔적이다.


"진정한 양원 시대에서는 그 어떤 '신'도 인간의 입술을 통해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원전 400년에 이르렀을 때 요즈음 우리 주위에 많은 교회가 있듯이, 신들림은 그리스 전역에 흩어져 있는 신탁들과 개개인에게 빈번히 나타났다. 양원적 정신은 사라지고 신들림이 그 흔적으로 남았던 것이다... 양원적 정신에서는 환상이 우반구에서 만들어져 그것에서 들리고, 신들린 상태에서 하는 말은 정상적인 경우에서처럼 좌반구에서 생성되지만 우반구에 의해 조종된다... 우반구의 베르니케 영역에 대응하는 영역이 좌반구의 브로카 영역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 [의식의 기원], <3권 - 2장>, 줄리언 제인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좌우 표정은 다르다.")



1권 '인간의 정신'에서 '의식'의 개념을 정의하고, 2권 '역사의 증언'에서 그리스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와 '카비루(히브루)'의 구약 등을 통해 역사적 사례를 소개한 후, 저자는 3권 '현대세계에서의 양원정신의 흔적'으로 시와 음악, 최면과 정신분열 등의 흔적들을 일별하는데 3권은 불필요한 장광설에 불과한 듯 하나 마지막 '과학'에 관한 장은 이 책의 결론에 해당한다.

'양원적 정신'의 붕괴에 대한 직접적 결과로서 '과학 혁명'은 그 자체로 '사실'에 기반한다 해도 근본적으로는 '신의 의지'를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과학'도 '종교'도 모두 '종교적'이라는 것이다(3권-6장).
미국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종교는 그 시대의 '과학'이었으므로 '종교'와 '과학'의 대립은 "예전의 과학과 지금의 과학이 대립"하는 것이라 규정했듯, 심리학자 줄리언 제인스는 양자 모두 '종교'라 규정한다.
결국, 성장한 현대 인류의 '의식'은 이러한 '종교적' 행위로써 아서왕과 기사들이 성배를 찾듯 '우주의 안정성'과 '총체성', '잃어버린 신의 음성'을 끊임없이 찾는다고 한다.
고대에 '신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던 인류는 이제 현대에 이르면서 '의식'을 통해 '과학'적으로 '신의 음성'을 끊임없이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적대적인 것은 교회와 과학이지 종교와 과학이 아니다. 종교와 과학은 서로 경쟁관계에 있지 상반되는 관계가 아니다. 둘 다 '종교적'이다... 진정한 문제는 우리가 잃어버린 권한위임을 '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고대 예언자에서부터 지속되어 온 사제들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지, 아니면 사제의 매개 없이 객관적 세계에서 우리의 현재 경험을 통해 '천국'을 찾을 수 있는지였다."
- [의식의 기원], <3권 - 6장 과학이라는 복신술>, 줄리언 제인스.


***

- [의식의 기원](1976), 줄리언 제인스, 김득룡/박주용 옮김, <연암서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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