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명진 Oct 11. 2018

수납할 곳은 있다

파리지앵 인테리어 14

수납할 곳은 있다


유럽이나 미국 부호들의 호화로운 집을 소개하는 것을 즐기는 인테리어 잡지들을 보다 보면, 서양인들은 다들 엄청나게 커다란 집에 살아서 수납보다는 청소부터 걱정해야 할 것 같다. 우리의 파리지앵들도 다들 4-50평대의 저택에 살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통계 자료를 엄밀히 들여다보면 서울의 1인당 평균 주거 면적은 30.1 제곱미터(약 10평), 파리는 31 제곱미터로 서로 0.9 제곱미터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실제로 파리의 중심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주거는 공동주거형태인 아파트먼트(우리나라로 치면 4-5층 규모의 ‘아주 예쁜’ 옛 주공아파트 형태라고 보면 될 듯) 가 대부분이다. 이 통계가 말 그대로 최대치와 최저치 사이의 평균값에 불과하다고 본다면, 파리지앵들의 공간은 사실 대부분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의 크기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파리지앵의 인테리어를 소개하는 책 속에는 작고 반가운(?) 공간의 모습들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


<파리의 작은 집 인테리어>, <파리의 모던 빈티지 인테리어> 두 책 속에 담긴 파리지앵의 작은 집들


작은 공간에 살게 될 때 필연적으로 직면하는 문제는 역시 ‘수납 공간의 부족’이다. 집은 작고,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산 것들은 점점 늘어나다 보면, 어느새 이 집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인지, 물건이 살고 있는 집에 내가 놓여 있는 것인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만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며 동시에 게으른 나 같은 사람이 그런 환경에 놓이게 되면, 이번 생에 인테리어는 글렀어 라고 여기며 점점 더 잡동사니 더미 속에 파묻히고 말 것이다. 실제로 연남동집에 이사 온 후 2년 정도가 흘렀을 때 그런 경지에 이르고 말았다. 싼 값의 빈티지 패션에 홀려 야금야금 사모은 옷가지와 언제 데려왔는지도 모를 잡동사니들, 그리고 무한히 수집되는 책들이 바닥 위로 쏟아져 나와 우리에게도 집을 달라고 시위를 하는 상황이었다.


수납은 모든 세계 인테리어피플의 고민거리다


그들을 수납할 곳이 필요했다. 서랍장이나 옷장, 책장 등을 더 사야 하나 떠올리면 가뜩이나 좁은 집이 더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메는 하이에나처럼 집을 둘러보다 띠링- 하고 머리 위에 전구를 켰다. 수납할 곳은 있었다. 아직 충분히 쓰여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weekly interior point | 화수분 침대 헤드



내가 발견한 공간은 아주 깨알 같은 공간이었다. 침대 아래에 25센티미터 정도 남은 공간, 나의 반려 인형들이 차지하고 있는 1.5 x 1미터 정도의 공간. 그 두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선 본문에서 언급한 대형 수납장이 아닌, 아주 깨알 같은 수납장이 필요했다. 기능성 소형 가구들이 아직 충분히 출시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내가 원하는 크기의 기성 제품을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 결국, 내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만들어버리자!


(이번 화에서는 ‘화수분 침대 헤드’를, 다음 화에서는 ‘비밀의 한옥 마루’를 소개)


쿠션 아래에 약간의 공간이 남아 있었다. 틈새를 노려라! 수납할 곳은 반드시 있다


다음 화에서 펼쳐질 미래를 예감하지 못한 채 떨고 있는(?) 반려인형들


빈 벽도 이런 빈티지 옷걸이를 하나 설치하는 것으로 매력적인 간이 옷장의 역할을
낡은 문도 선반을 설치하면 그럴싸한 책장이 된다



<화수분 침대 헤드> 만들기


일체형 침대를 구매한 탓에 침대 헤드가 없어서 왠지 모를 허전함을 마침 느끼던 차였다. 직사각형의 속이 빈 침대 헤드를 만들어 내부를 수납 공간으로 쓰자고 마음 먹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만들면 침실의 아름다움을 망치게 되니 가능한 목재 천연의 결을 살려서 마치 유서 깊은 전통 고가구처럼 보이도록 노력했다.


아주 단순한 구조이므로 설계는 크게 어렵지 않다


도착한 목재들. 여섯 개의 나무 판이면 특별한 수납장을 만들 수 있다.


설계도에 따라 여섯 개의 나무 판을 조립해주자.


색을 칠하기 전에 테스트 사용


목재의 결을 살리며 고재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테인’을 칠해야 한다. 페인트붓을 이용해도 되지만, 사진처럼 스펀지를 사용하면 좀 더 도료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 스테인 :  스테인은 페인트처럼 목재 표면을 색으로 덮는 것이 아니라, 목재 결을 따라 내부에 스며들어 속을 물들이는 방식의 도료. 덕분에 천연의 무늬를 살릴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속에 스며드는 방식이라 한 번 칠하면 색을 바꿀 수가 없으므로(더 진하게 만드는 것은 가능) 어떤 색을 연출할지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완성! 깊이가 80센티미터에 이르기에 장우산도 수납이 될 정도.


덕분에 예상외로 끝도 없이 물건을 수납할 수 있는 화수분 침대 헤드가 탄생. 이후 약 250권 가량의 만화책을 보관하는 용도로 썼다.


2018. 6. 15. 멀고느린구름.



* 이 칼럼은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HAGO와 함께 합니다.

이전 14화 두려움 없이 월세집 꾸미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